"아파트 완공 후에 원하는 동·호수 선택".. 목소리 커지는 후분양제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인프라정책연구부 연구위원 2017. 11.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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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분양·후분양제, 뭐가 좋을까]
- 주택보급 이끈 선분양제
자본 부족했던 70년대 건설사.. 공사비 미리 받아 자금난 덜어
미분양, 청약과열 등은 문제
- 소비자 중심 후분양제
부실시공 막는 등 장점에도 수억원대 목돈 한번에 내야해
'내집 마련' 발목잡을 수도

최근 아파트 분양 방식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아파트가 완공되기 이전 30개월 전에 미리 구매 계약을 마치는 '아파트 선분양제(先分讓制)'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완공된 후 소비자가 아파트를 사들이는 이른바 '아파트 후분양제(後分讓制)' 도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선분양제가 분양 대금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파트 공급자인 건설사에 유리한 제도고, 후분양제는 소비자인 아파트 청약자를 위한 제도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과연 어떤 게 좋은 제도일까요?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인프라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선분양제, 풍부하게 주택 공급했지만 건설사 배 불렸다는 비판도

선분양제는 1977년에 도입돼, 40여년간 우리나라 주택시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주택금융이 발전하지 않았고, 건설사도 자기자본이 부족했습니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집 지을 돈을 어딘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선분양제가 도입되면서 건설사는 가계로부터 공급되는 자금을 바탕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분양제 덕분에 주택 공급은 빠르게 늘어났고, 지금은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을 정도로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선분양제가 정착되면서 소비자는 공급자 중심의 주택 공급 논리를 관습적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수억원에 달하는 주택을 구입하면서 품질이나 가격이 적정한지, 공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파악하지 못하고, 공급자인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대로 아파트를 사야 했던 것입니다.

후분양제, 기호에 따라 층수 고를 수 있어

후분양제는 선분양제가 가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선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소비자는 아파트 층수와 전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분양제하에서 소비자는 몇 층에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로또처럼 층수와 전망을 추첨을 통해 배정받습니다. 만일 운 좋게 전망 좋은 이른바 '로열층'이 배정되면 그 순간 수억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행운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아파트의 층과 조망에 따라 집값은 차이 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자금 사정과 기호에 맞춰서 집을 살 수 있게 돼, 분양권 프리미엄 거래나 청약 과열이라는 말은 사라지게 됩니다.

20~30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선 세종시 주거 지역의 모습. /신현종 기자

또 후분양제는 건설사의 부실시공도 차단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분양제가 오랜 기간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건설사들이 미리 소비자로부터 분양 금액을 조달받아, 그 돈으로 분양가를 낮춰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논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소비자 상당수가 미리 집단 중도금 대출을 받고 대출이자와 금리를 부담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건설사는 선분양제하에서 마감재와 공사비를 낮추고 자신들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품질 낮은 재료를 쓰기도 합니다. 온돌 마루 대신에 강화 마루, 세면 선반의 경우 천연 석재 대신에 인조 석재, 벽지의 경우 친환경 대신 일반 마감재를 사용해서 비용을 낮추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이 밖에 같은 마감재라도 원재료에 따라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인데도 건설사는 소비자에게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억원의 모델하우스 설치 비용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분양 가격에 포함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대규모 미분양 막을 수도 있지만, 목돈 마련으로 가계 부담 증가 우려도

후분양제는 건설사에도 적잖은 혜택을 줍니다.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을 일시에 대량으로 내놓는 밀어내기 공급으로 정작 준공 시점에는 주택시장이 왜곡되고 건설 산업이 침체되는 후유증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이에 해당합니다.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 주택시장은 밀어내기 때문에 큰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2007년 한 해에만 약 80만호에 달하는 착공 물량이 건설사의 밀어내기로 공급됐습니다. 2010년과 2011년 준공 시점이 되자 입주 물량이 쏟아졌습니다. 건설사는 초기 분양에는 완벽하게 성공했음에도 불구, 준공 시점인 2010~2011년 입주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거 미입주 사태를 겪었습니다. 당시 건설사는 할인 분양이나 할인 매각과 같은 각종 자구책을 내놨지만,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일부 건설사는 파산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2010~2013년에도 미입주 등에 따른 분양 미수금(분양을 했지만 중도금이나 잔금을 건설사가 받지 못한 금액)이 증가하면서, 아파트를 공급하는 대부분의 건설사(상장법인 25개사와 자산이 120억원이 넘는 건설사 428개사)가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후분양제하에서는 건설사가 아파트 준공 이후의 수요 예측을 잘해서 사업 계획을 수립하면 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됩니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이뤄지면,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만 아파트가 공급돼 분양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분양제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선분양제에서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을 시차를 두고 차분히 내면 됐는데, 후분양제에서는 이를 한 번에 지급해야 합니다. 대출 여건이 좋지 않으면, 자칫 집 마련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주택담보대출시장이 더욱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과거와는 다른 환경과 사회구조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미 2015년 기준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어섰고(102.3%), 저성장, 저금리, 인구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저출산, 1인 가구 증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작동되는 시장 기능에 따라 소비자 중심으로 주택시장 관련 제도가 개편될 필요가 있습니다.

'선분양제' 10년마다 공급과잉 반복 2015년 말, 우리나라 건설사가 착공한 주택 물량이 73만호에 이르면서 공급과잉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도 66만호나 되는 주택 공사가 새로 시작됐습니다. 2년간 140만호나 되는 주택 공급을 위해 공사가 이뤄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적절한 공급 수준을 훨씬 초과한 것입니다.

올 1월 경북 포항시 흥해읍 초곡지구 내에 건설 중인 미분양 아파트를 파격적인 조건으로 분양한다는 홍보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김종호 기자

시장 기능에 따라 적절한 주택 착공 물량은 새로 증가하는 가구 수와 오래된 집의 멸실(滅失) 수를 더한 값으로 산출됩니다. 예를 들어 새로 증가하는 가구 수는 20만호인데, 멸실 수가 10만호라면 적절한 물량은 30만호라는 얘기입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이후 2014년까지 새로 증가하는 가구 수는 연평균 27만~29만가구였고, 주택 멸실 수가 연평균 8만호였던 점을 고려하면 연 35만~37만호를 새로 짓는 게 적절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2014년 이전까지 착공된 주택 물량은 연평균 약 46만호였습니다. 수요와 공급 간 격차는 10만호였습니다만, 이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2015년부터 2년간은 약 140만호나 공급될 동안 새로 증가하는 가구 수와 멸실 수는 총 73만호였습니다. 적절한 공급 물량을 67만호(140만-73만호)나 초과한 것입니다. 67만호를 실제 입주하는 인구수로 환산해보면, 약 180만명(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 2.7명으로 가정)이 내년에 수요를 초과한 67만호를 채우기 위해서 추가로 유입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대전광역시 전체 인구(150만명)를 30만명 웃도는 수치입니다.

이 같은 초과 공급은 몇 차례 반복해 나타난 바 있습니다. 20년 전인 1997년과 10년 전인 2007년에도 주택 착공 물량이 갑자기 급증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또다시 10년이 지나 분양 물량이 급증한 것입니다. 이처럼 분양 물량이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는 시장 기능으로 조정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주요한 요인은 우리 주택시장의 분양 구조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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