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다주택자들은 뭘 믿고 꿈쩍도 안할까?

CBS노컷뉴스 윤석제 기자 2018. 1. 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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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강남불패, 어쩔 수 없나?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참사로 철거민과 경찰 6명이 숨진 서울 한강로 남일당 건물이 1일 오전 철거를 위한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사진=자료사진)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9주년이 다가왔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에서 충돌해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한 엄청난 사건이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뒤 참사 현장인 '남일당'에는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한 동안 나붙었다.

9년이 지난 지금 '남일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용산 일대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부동산 투자 지역으로 변모했고 현수막에 적힌 '집'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우리 사회 '난제(難題)'로 남아있다.

◇ 강남, 미나리 밭에서 불패신화로

사방이 '미나리 밭'과 '배추 밭'으로 둘러싸였던 강남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대 들어서다.

지금은 '한남대교'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1969년 크리스마스에 개통한 '제3한강교'와 이듬해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강남불패' 신화의 서막은 올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서울로 밀려드는 인구 분산 등을 위한 대체지로 강남을 선택했고, 정부 재정만으로는 부담이 커 각종 행정 편의를 제공하며 민간에 강남 아파트 건설을 맡겼다.

여기에 정부는 강남입주를 유도하기 위해 명문 고등학교를 대거 강남으로 이주시켰고, 학맥과 인맥 등으로 연결된 강남 명문고 출신들이 오랜 세월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됐다.

이후 '빨간 바지 아줌마'로 상징되는 강남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일면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강남 집값은 '불패신화' 반열에 올라 웬만한 월급쟁이가 범접할 수 없는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됐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강남불패' 신화에 도전했으나 치솟는 부동산 값과 종합부동산세 논란 등 거센 저항과 역풍에 휘말려 실패했고, 보수 정권 10년 동안 강남을 겨냥한 눈에 띄는 대책은 없었다.

◇ 강남집값, 잡으려면 오히려 치솟는 괴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지난해 8월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촛불혁명'의 힘으로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후 불안했던 정국이 해소되면서 강남을 비롯한 집값이 들썩이자 부동산 투기 근절을 담은 '8.2 대책'을 비롯해 고강도 정책을 잇따라서 내놨다.

정부는 강남을 비롯한 집값 상승이 투기세력 때문이라며 주요 '타깃'으로 강남 재건축과 다주택자를 겨냥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발표된 직후 잠시 동안 반짝 긴장할 뿐 강남 집값은 다시 재반등을 거듭하며 요지부동 상태다.

특히, 2018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강남 집값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이미 강남 집값은 8.2대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추후 상승 기대감에 평균가격이 8억 원이 넘었는데도 사려는 수요자들은 줄을 서고 있다.

당초 1월부터 정부의 각종 규제가 본격화 될 경우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강남 집값 요지부동…왜?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강남 집값이 요지부동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정부는 동의하지 않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을 꼽는다.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강남 재건축 단지 등 현황을 살펴볼 때 결코 공급물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살고 싶은 집'과 '투자가치'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와는 괴리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강남지역 주변을 중심으로 수십 년 이뤄져 온 각종 개발 혜택과 대학입시 1번지가 된 유명학원들의 밀집 등 강남 진입을 유혹하는 요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시장에서는 정부의 집중적인 규제가 오히려 '똘똘한 집' 한 채에 대한 선호도를 심화시키는 반작용을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가 오는 4월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는 물론 새해 들어 보유세 강화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정작 한강변과 강남 주택 보유자들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그 이상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물량 내놓기를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니다.

오히려, 다주택자들이 지방에 보유하고 있는 '덜 똘똘한 집'을 내놓는데다 지난 2015년 경 분양된 물량이 올해부터 입주물량으로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서울과 인접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입주폭탄'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강남의 몫 좋은 아파트를 보유한 이들은 다주택자이든 아니든 일반 서민들과 달리 대출의존도가 낮아 금리인상 등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압박이 효과를 보기도 쉽지 않다.

또, 오랜 세월 '강남불패'를 지켜봤고 특별히 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풍부한 유동 자금은 여전히 투기성 자본으로 부동산 시장을 맴돌고 있다.

◇ 그들만의 리그 '강남불패' 어쩔 수 없나?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은 시장경제이고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인한 '강남불패'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강남과 비강남의 집값차이를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는 전제로 단기적인 충격요법 대책보다는 편법이나 불법 등 시장 자체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꾸준한 단속 등을 실행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또, 강남집값이 비상식적으로 뛰는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고강도 단속이나 규제도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공급 측면에서는 서울의 공공택지개발 구체화를 통해 강남 안에서도 안정적인 주택공급이 가능하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줘야하고, 수요 측면에서는 양극화 심화를 줄이기 위해 단기적인 규제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소득격차 해결이나 교육 및 지역 인프라 구축 등 큰 그림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5일 강남만을 '타깃'으로 한 부동산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고, 집값이 오른다고 일기 쓰듯이 추가대책을 내놓지도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동안 강남 집값이 오르면 깜짝 놀라 대책을 내 놓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집값이 오르면서 주변 지역까지 가격 급등을 가져오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놔둬서도 안 된다.

아무리 시장 경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장이 왜곡 된 상황이라면 정부가 조정자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다만, 지난 5월 출범이후 8개월 여 동안 문재인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부동산 대책들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시장 상황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대책마련을 위한 심도 깊은 고민이 요구된다.

9년 전 '남일당' 건물에 내걸렸던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라는 현수막 내용처럼 집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큰 그림이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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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윤석제 기자] yoonthoma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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