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안평대군도 사랑한 절경"..조용히 뜬 부암동 단독주택

민경진 2018. 5. 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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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저렴한 땅 값에 단독주택 신축 활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정비 계획"
부암동 전경. 사진=민경진 기자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 주택가. 토사가 가득 실린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파른 골목 도로를 올라간다. 산 중턱 주택가 곳곳에서 굴착기가 굉음을 내며 땅을 판다. 낡은 주택을 헐고 지상 2~3층 규모의 단독주택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 중이다. 공사장 주변으로 1~2년 새 멋지게 들어선 단독주택들은 육중한 철문을 굳게 닫은 채 비탈 아래를 응시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고 인부들이 잠시 떠난 인왕산 자락은 다시 조용한 주택가로 돌아온다. 신축 주택이 활발히 들어서고 있는 부암동의 모습이다.

부암동 인근 단독주택 공사현장. 사진=민경진 기자

◆단독주택 신축 활발

23일 종로구청에 따르면 부암동 단독주택 착공 건수는 지난해 상반기 3건에서 하반기 7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착공한 단독주택도 6건에 이른다. 부암동 인왕공인 관계자는 “이 지역에선 좀처럼 나오지 않던 택지 매물이 지난해부터 나오고 있다”며 “이를 매입한 새 주인이 기존 주택을 헐고 새집을 짓고 있다“고 전했다.

 공사현장은 대부분 자하문로 서편 인왕산 자락에 모여있다. 자하문로 동편 북악산 아래 동네에 비해 노후화된 건물이 많았던 곳이다. 인왕산과 인접해 평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자하문로에서 인왕산 숲길까지 도보로 15분 이내면 닿을 정도로 숲과 가깝고 앞으로는 북악산 자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경사가 가팔라 조망권을 침해받을 일도 거의 없다. 

◆땅값 상대적으로 저렴

부암동 일대 대지의 3.3㎡당 가격은 1400만~2000만원 수준이다. 3.3㎡당 4000만원 안팎을 호가하는 신문로 등의 단독주택 용지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북한산이나 북악산 쪽 산비탈로 올라가면 면적당 가격이 800만~900만원 대로 내려간다. 인왕공인 관계자는 “5년 전 부암동 주택용지 3.3㎡당 가격이 1000만원 정도였는데 몇 년 동안 꾸준히 올랐다”며 “오랫동안 고급 주택가로 주목받던 평창동과 비슷한 가격대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부암동 일대는 인왕산과 북악산으로 둘러싸여 주거 환경이 쾌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네 곳곳에 갤러리, 문학관 등 문화시설과 특색 있는 카페, 음식점 등이 있어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박창규 굿모닝공인 대표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공기 좋은 곳에서 쾌적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꾸준히 오고 있다”며 “자금력을 갖춘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30대도 집 지을 자리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암동 전경. 사진=민경진 기자

◆몽유도원도 배경이 된 절경
부암동을 품은 인왕산은 1392년 조선왕조 창업 당시 좌청룡인 종로구 낙산과 함께 우백호로 여겨지던 산이다. 해발 339m로 야트막한 산이지만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위세가 당당하다. 듬성듬성 드러난 바위 덩이는 주변 녹지와 잘 어우러졌다. 예부터 인왕산이 화폭에 곧잘 오른 것도 나무, 바위, 산 중턱 민가가 어우러져 번잡하지 않은 호젓함을 자아낸 덕분이다.
 
조선시대 세종의 셋째 왕자인 안평대군 이용은 꿈속에서 본 도원과 풍광이 비슷한 부암동 일대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터 앞 바위에는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다. 안평대군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활을 쐈다고 한다.
 
화가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려냈다. 조선시대 산수화 중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화폭에 담긴 절경과 지금 인왕산 일대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대 사람들이 이 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세대화되지 않는 단독주택촌

서울 강남 논현동 학동공원 일원은 문화콘텐츠촌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은 지 20~30년 된 단독주택을 허물고 연애기획사, 영화사, 스튜디오 등이 들어설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상황이다. 그동안 인근 지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주택의 노후화가 많이 진행된 데다 청담·압구정 등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피스를 찾는 임대 수요가 몰리면서다. 종로구 신문로 일대 역시 답답한 빌딩 숲을 떠나온 중소·중견기업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다. 두 장소 모두 ‘조용한 고급 주택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암동은 트렌드를 거스르고 있다.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용도를 바꿔 오피스를 들이는 곳들과 달리 단독주택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서다. 부암동 일대는 2004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된 뒤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묶였다. 건물을 지으려면 개별 필지별로 지구단위계획에서 정한 높이, 외관 등을 따라야 해 새 주택을 짓기 까다롭다. 

 하지만 개발이 제한된 덕분에 자연경관과 주거시설이 조화된 지역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부암동 일대 지구단위계획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종로구청 관계자는 “10년 앞을 내다보고 주변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정비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앞으로 서울 내엔 부암동 같은 주거 환경을 갖춘 대체 공간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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