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계 불법 카르텔에.. 신규 업소 '눈물의 반값수수료'

경계영 입력 2018. 7. 6.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물 공유하는 '친목회'의 갑질
기존 업소들 "정보 못줘" 신규회원 거부
개포·목동 매물확보 위해 할인 현수막
국토부 "직접 감독할수 있게 입법 검토"

[이데일리 경계영 성문재 기자] ‘개포주공 5·6·7단지 아파트 및 상가, 매매 200만원·전세 100만원·월세 50만원.’

지난달 초부터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5~7단지 인근 몇몇 부동산 중개업소에 이같은 파격적인 문구가 적힌 입간판과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다. 이 지역 집값이 10억원이 넘는 것을 감안할 때 법정 최고 중개수수료율인 0.9%에서 다소 할인해 0.5%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해도 500여만원 이상의 수입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내려 받겠다는 것이다. 중개 수수료 인하 안내문을 써붙인 중개업소들은 “거래가 안돼 그렇다”며 얼버무렸다.

실제 사정은 달랐다.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사업이 시작되면서 영업이 어려워진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개포주공5~7단지 근처로 옮겼는데 기존 중개업소들이 매물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른바 ‘친목단체회원’에 끼지 못한 신규 이주 중개업소는 수수료 인하라는 극단적인 선택 말고는 매물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B중개업소는 “하나의 상에서 먹을 몫은 한정돼있는데 여럿이 숟가락을 얹다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한탄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목동서도 비회원 업소들 “반값 수수료”…협회·감독당국 수수방관

이는 개포동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도 지난 3월부터 중개업소 대여섯곳이 중개수수료를 0.2%만 받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목동도 기존 중개업소들이 비회원 업소에 매물정보 공유를 거부하자 궁여지책으로 수수료 인하책을 들고 나온 것.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통상 40~50명 규모로 구성된 친목회에선 회원들 단속이 철저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친목회에서는 자신들의 부동산정보거래망을 이용해 회원들의 매물정보를 공유한다. 목동 C중개업소 관계자는 “친목회장이 ‘비(非)회원과는 절대 거래하지 말라’고 회원들에 강요한다”며 “만약 비회원과 거래한 것이 적발되면 제재를 가하거나 최악의 경우 친목회에서 내쫓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일종의 카르텔이 현행법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26조와 ‘공인중개사법’ 24·39조 등을 보면 친목단체 회원이 매물정보를 비회원에게 공유하지 않는 등 차별적으로 공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행위 적발 시 중개업소의 업무 정지 등 처벌 규정도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각 동네 중개업소의 친목회가 쳐놓은 울타리는 견고하다는 것이 비회원업소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신규 중개업소가 친목회에 가입하려면 500만원가량이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최고 수천만원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공인중개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공식적으로는 카르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안내하지만, 협회 지부장과 지회장 등이 사실상 친목회장 역할을 하며 활동지역 내에서 이같은 카르텔을 되레 주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 적발에도 관행 근절 안돼

수십년 이어진 관행을 단번에 뿌리뽑기는 쉽지 않지만 감독당국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 일산·분당 등에서 신규 중개업소에 정보를 차별 제공하거나 차단한 사례, 용인 죽전동에서 친목회 간 일요일 영업금지, 비회원과의 매물 정보 공유 금지 등을 담합한 사례 등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기도 했지만 친목회가 쌓아둔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D중개업소는 “담합 행위를 해당 구청에 신고해 실태조사가 진행되면 친목회와 회원들은 발뺌하기 일쑤”라며 “한 친목회는 담합의 증거를 없애려 연초 쌓아뒀던 회비를 다시 나눠주기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개업소가 수십년간 쌓아놓은 카르텔은 신규 중개업소엔 높은 문턱으로 작용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작년 공인중개사 합격자는 2만3698명에 달했다. 지난 2005년 3만680명을 기록한 이후 13년만에 최대치다. 합격자가 급증한 2016~2017년을 제외하더라도 매년 1만명 수준의 공인중개사가 배출되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신규 개업한 중개업소는 2650개, 폐업 업체는 1946개다. 공인중개업소는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한데도 기존 카르텔에 막혀 3000개 가까운 중개업소가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수천만원 권리금을 주고 기존 중개업소를 인수하거나 거액의 가입비를 내고 친목회에 들어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입비를 내겠다고 해도 가입을 승인하지 않는 상황이다. E중개업소 관계자는 “친목회라는 울타리에 못들어가면 중개업소로서 생존이 위태로워진다”며 “영업하려 허가를 받는 업종이 아닌데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거래정보망을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법적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를 적발해 처분하면 이를 근거로 국토부가 자격 정지 등 처분하도록 돼있다”며 “공인중개사법 내 관련 조항을 입법해 국토부가 직접 조치할 수 있도록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계영 (kyung@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