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건설협회 상왕과 마리오네트

김노향 기자 2024. 3. 2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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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머니S 건설부동산부장
그래픽=김은옥 디자인 기자
대한민국에서 이권이 있는 곳에 협·단체가 빠질 수 없다.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업 활동은 물론 시민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분야에도 각 협회가 존재하고 이들은 구성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협회의 대표자에게 과도한 권한과 보상이 부여될 경우 본래의 의무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대한건설협회'(이하 건설협회)다. 국토교통부 산하 31개 국토 관련 협·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가진 건설협회는 '건설산업기본법'에 의거해 설립된 법정단체다.

자체 공개 기준 1만2862개 회원사가 건설협회에 연회비를 납부한다. 대부분의 협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운영된다. 억대의 활동비가 지급되지만 건설회사 총수나 고연봉의 전문경영인 등에게 보수의 메리트는 크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건설협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때로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 등 이전투구 양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금전 이득이 아니라도 많은 이권이 있기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건설협회는 한국의 경제성장 역사에서 해외 인프라 공사와 정부 차관을 위한 정책 로비 등 굵직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위상이 하락했다는 저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산업의 다변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건설협회는 여러 회원사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대표자가 선출되지 못하고 개인 회사의 이권에만 이용됐다는 비판이 20년째 끊이질 않는다.

올 초 퇴임한 김상수 전 건설협회장(한림건설 회장)은 이러한 논란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취임해 4년 동안 협회장직을 수행하는 과정에 업계 현안보다 유관기관과의 이권 다툼, 셀프 연임 시도, 차기 회장 선거 개입 등의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건설공제조합(이하 공제조합)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 '공제조합 조합원 이사장제' 추진이 논란의 대표 사례다. 공제조합은 건설협회 회원사의 상당수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사업자금 대출과 보증 등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다. 공제조합이 공시한 2023년 영업·영업외수익은 5232억9400만원이다. 2022년 기준 공제조합 자산은 7조6459억원을 넘는다.

건설협회는 이전까지 협회장의 당연직 운영위원을 앞세워 공제조합 경영에 관여하고 운영비 등 예산과 인사에 입김을 행사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과 전문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장을 겸직하며 개인 사업에 투자한 이른바 '박덕흠 골프장 투자' 사건을 계기로 2021년 이후 건설협회장의 공제조합 당연직 운영위원 겸임이 금지됐다.

이에 김 전 회장은 공제조합 조합원 이사장제를 추진해 조합원인 건설업체 대표가 이사장을 맡겠다고 밝혔다. 공제조합의 방만경영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사실 공제조합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지난 3월5일 열린 제28·29대 건설협회장 이·취임식에서 김 전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임기 동안 공제조합 조합원 이사장제를 완수하지 못해 아쉽다"며 "신임 회장이 반드시 이뤄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은 건설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기업이든 협·단체든 퇴직 임원에 대한 전관예우가 존재하고 고문 역할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게 건설협회의 입장이지만 공제조합 조합원 이사장제를 달성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대목이다. 이는 건설업체 대표가 금융회사 대표를 맡는 격이어서 건설협회와 공제조합의 분리경영 취지가 훼손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전 회장은 한승구 신임 회장의 선거 운동 과정에 당선을 위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한 회장의 상대 후보 측은 김 전 회장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선거 방해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고 김 전 회장은 이를 해명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선거의 공정성이나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제 가릴 수가 없게 됐지만 건설협회의 사유화 논란을 더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기업이 출자한 거대 자본으로 운영되는 단체들이 이권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행위다.

건설협회장이 유관기관 운영의 가장 핵심 권한인 예산과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보니 특정 후보와 결탁하거나 힘을 실어준다는 식의 의혹도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협회가 업계의 권익을 보호하는 목적보다 사익만을 추구하는 데서 명분을 찾으려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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