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지으세요”…재개발 규제 확 푸는데 주민들 안 반긴다고?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4. 4. 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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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26]
정부, 노후도 요건 낮춰주고
서울시 도로 기준 완화 추진
중랑 중화·강서 화곡동 수혜
재개발 가능 면적 2.5배 늘어
서울의 한 재개발 추진 지역 전경 [매경DB]
올해 들어 서울에서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는 게 훨씬 쉬워졌습니다. 낡은 동네를 전반적으로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 사업은 주민들이 원한다고 해서 바로 할 순 없습니다. 노후도와 접도율 같은 여러 요건을 채워야만 재개발 사업 추진이 가능합니다. 요건에 맞지 않으면 사업 추진이 안 되는 겁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는 이 요건들을 기존보다 풀어주고 있습니다. 정부는 노후도 요건을 낮췄고, 서울시는 접도율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덕분에 서울의 재개발 가능 지역은 484만㎡에서 1190만㎡로 대폭 늘어나게 됐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대표적인 수혜지역은 어디일지 함께 살펴볼까요.

정부, 노후도 요건 67%→60%로 낮춰
재개발은 주변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한데다, 너무 낡아 불량한 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이뤄집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동네가 전반적으로 얼마나 낙후됐는지를 먼저 따지곤 합니다. 지금까진 오래된 불량 건축물이 전체 건축물의 3분의 2 이상(약 67%)인 지역은 재개발 대상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노후도 요건이라고 부릅니다.
노후 주거지 실태 [사진출처=서울시]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재개발 노후도 요건을 현행 3분의 2 이상에서 60%로 완화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시행령이 바뀌어 이제 노후도 요건은 67%가 아닌 60%가 됐습니다. 뉴타운과 같은 촉진지구로 지정이 되면 노후도 요건을 50%로 한차례 더 낮춰줄 예정입니다. 기존 뉴타운에선 이미 재개발이 한창이라 신규 촉진지구부터 적용될 듯합니다.
서울시, 접도율 기준 4m→6m로 완화
서울시도 규제 완화에 나섰습니다. 지난 3월 재개발 사업의 접도율 요건을 기존보다 풀어주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접도율은 재개발을 진행하려는 동네 안에 4m 이상 도로에 접한 건축물이 얼마나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입니다. 4m면 소방차 한 대가 들어가 겨우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도로입니다. 4m 이상이면 좀 더 넓고 쾌적한 도로란 뜻이겠죠.

결국 접도율은 높을수록 괜찮은 도로에 접한 집이 많다는 뜻입니다. 접도율이 낮을수록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이 많은 동네란 의미죠. 이렇게 접도율은 동네의 기반시설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가늠하는 수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4m 이상 도로에 접한 건물 비율이 40% 이하여야만 재개발이 가능했습니다. 바꿔 말해 4m 미만 좁은 도로와 맞닿은 건물이 전체의 60%를 넘어야 재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반시설이 그만큼 열악한 거니까요.

[사진출처=서울시]
하지만 서울시는 앞으로 접도율의 도로 기준을 4m 미만이 아닌 6m 미만으로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6m 도로라고 해도 갓길 주차나 불법 주차가 돼 있으면 소방차 한 대가 들어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봤습니다. 다만 이 기준을 고치려면 서울시 조례를 바꿔야 합니다. 서울시는 5월 안에는 조례를 바꿔 새로운 요건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예정대로 조례가 바뀌면 그때부턴 6m 이상 도로에 접한 비율이 40% 이하일 때 재개발이 가능해집니다. 서울시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재개발이 가능해지는 면적이 1190만㎡로 대폭 늘어난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서울의 재개발 가능 면적이 484만㎡란 점을 고려하면 약 2.5배 늘어나는 셈입니다.

광진구 중곡동 등 노후 빌라촌 ‘수혜’
부동산업계에선 1960~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뤄졌던 지역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봤습니다. 이 사업은 과거 무질서하게 개발된 도시를 좀 정비하기 위해 진행됐습니다. 이때 사업이 이뤄진 동네는 도로 여건이 좋아진 바 있습니다. 문제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발생했습니다.
서울 중랑구 중화동 중랑역 인근 전경 [사진출처=연합뉴스]
건물이 무척 낡아 노후도 요건은 충족했지만, 4m 이상 도로에 많이 닿아 접도율 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동네가 생겨난 겁니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랑구 중화·면목동, 강서구 화곡동의 노후 빌라촌들 얘기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접도율 요건을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번에 실제 완화가 이뤄지는 만큼 해당 지역들이 새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할지 주목됩니다.
주민 갈등과 치솟는 공사비 ‘변수’
물론 주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재개발 요건을 맞추지 못한 동네에선 최근 몇 년 사이 ‘모아타운·모아주택’ 사업이 많이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모아타운은 재개발이 어려운 10만㎡ 이내 노후 저층 주거지를 모아 하나의 아파트 단지처럼 만드는 제도입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이번 요건 완화로 당초 모아타운을 추진하겠다고 한 곳들 중 상당수가 재개발도 가능한 곳이 됐다”며 “사실 기존에 모아타운을 하던 곳들 중에선 재개발을 하고 싶은데 요건이 안돼서 모아타운 사업을 택한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모아타운이 아닌 재개발을 하자는 곳도 생길 것 같다”며 “주민들이 정말 유리한 게 무엇인지 따져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누군가는 모아타운을, 누군가는 재개발을 추진하자고 주장하면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겠지요.

서울 12개동 단독·다가구주택·상가 소유주 500여명이 지난 3월 서울시청 앞에서 재개발·모아타운 반대 연합 집회를 열었다. [사진출처=독자제공]
넓은 땅을 가진 단독주택 소유주라면 재개발을 썩 반기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현행 도시정비법 76조에 따르면 단독주택 소유주이든 소형 빌라 소유주이든 재개발 이후 아파트 입주권은 1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지지분이 아주 넓으면 1채를 추가로 더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60㎡ 이하만 분양 가능합니다.

상가나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 소득으로 노후 생계를 이어가는 소유주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겠죠. 미래의 아파트 한 채보다 매달 들어오는 임대 소득이 더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주민 갈등이 생기면 재개발이 어렵게 됩니다. 아울러 최근 높은 금리가 계속되고 공사비가 크게 오른 것도 변수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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