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기금 2년새 21조 급감... 비상금도 3분의 1토막

정순우 기자 2024. 5.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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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대출·공공주택 확대 등 사용처 늘어 기금 고갈 우려

서민들의 내 집 마련과 임대주택 공급 등 주거 안정 정책 지원을 위해 조성하는 주택도시기금이 최근 2년 사이 21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계획된 사용처 외에 긴급한 정책 수행을 위해 곧바로 지출할 수 있는 ‘비상금’ 성격의 자금 규모는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서민과 젊은 층 주거 안정을 위한 각종 특례 대출 시행과 공공 주택 공급 확대, 침체한 건설 경기 회복을 위해 기금에서 지출하는 돈이 급증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야권에서 추진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의 전세 사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택도시기금에서 수조 원의 자금이 추가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주택도시기금이 방만하게 운영되다가 나중에 정작 필요한 분야에 쓸 돈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지금부터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픽=박상훈

◇주택도시기금 자금 여력, 2년 새 3분의 1토막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주택도시기금 조성액은 95조4377억원으로 2021년 말(116조9141억원)보다 21조4764억원(18.4%) 줄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2년 만에 기금이 10% 넘게 줄어든 것은 금융 위기 충격으로 주택 시장 침체가 심각했던 2010년대 초반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택도시기금은 청약 저축 가입자의 저축액과 집을 살 때 의무적으로 사는 국민주택채권 발행액, 재건축 부담금, 복권 수익금, 정부 출연·예수금 등을 더해 조성된다. 이렇게 모은 돈은 공공 주택 건설이나 서민층의 내 집 마련에 필요한 돈을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데 주로 쓰인다.

최근 주택도시기금 조성액이 감소한 것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기금의 주요 재원인 청약 저축 납입액과 국민주택채권 발행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청약 저축 납입액과 국민주택채권 발행액 합계는 28조4000억원으로,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39조9000억원)이나 2021년(41조9000억원)보다 30%가량 줄었다.

반면, 주택도시기금 지출은 2020년 30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33조3000억원으로 2조원 넘게 늘었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기금의 규모도 2021년 말 49조원에서 작년 말 18조원으로 급감했다.

◇돈 쓸 곳은 더 늘어… ”기금 고갈 우려”

더 큰 문제는 주택도시기금을 필요로 하는 사용처가 계속 늘어나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주택도시기금을 이용해 출산 2년 이내 신생아 자녀를 둔 가구에 특례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개발 부지에 공공 지원 민간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경우에도 주택도시기금으로 저리 대출을 제공한다. 지난 3월 발표된 노후 저층 주거지 정비 사업 ‘뉴빌리지’도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올해 국토부가 계획한 주택도시기금 지출액은 37조2000억원으로 작년보다 3조9000억원 많다.

민주당 주도로 입법 추진 중인 전세 사기 특별법도 주택도시기금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전세 사기 피해자의 주택을 주택도시기금으로 우선 사들여야 하는데, 국토부는 3조~4조원 정도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확보된 대기 자금의 약 5분의 1에 달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과거 무분별한 실업 급여 지급으로 고갈 위기에 처했던 고용기금처럼 주택도시기금도 지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곳에 못 쓰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기금의 조성 목적에 맞는 분야로 지출 분야를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도시기금

주택 건설시장에 원활하게 자금을 공급하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1981년 ‘국민주택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청약저축 납입액과 국민주택채권 발행액이 주요 재원이다. 건설사나 개인 주택 수요자에게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고, 공공주택 조성 등에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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