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도, 세입자도, LH도 불편한 ‘전세임대주택’

공성윤 기자 2024. 5. 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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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가 전대하는 공공임대주택인데 “명도소송 책임·비용 다 집주인에게 떠넘겨”
세입자는 지원금 한도 탓에 집 구하기 힘들고, LH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 노출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유지애씨(가명)는 2020년 8월 60대 세입자 A씨가 살고 있는 경기 광명시의 한 빌라를 매입했다. A씨의 계약 유형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고 이를 세입자에게 싸게 빌려주는 '전세임대'였다. A씨가 유씨에게 내야 할 임차료는 시세보다 저렴한 월 15만원이었다. 그런데 유씨는 2022년 8월 계약 종료 시까지 9개월치 임차료를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계약이 끝났는데도 집을 비우지 않았다. 유씨는 LH에 도움을 요청했고, LH는 A씨를 상대로 한 명도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 A씨는 여전히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유씨가 LH에 문의하자 "우리는 명도 집행권한이 없으니 LH와 A씨에게 모두 명도소송을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21년 3월1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 앞 ⓒ연합뉴스

LH, 세입자 미퇴거에 "우리에게 소송 걸라"

저소득층과 전세사기 피해자 등을 위해 LH가 마련한 전세임대주택이 주거 리스크를 집주인에게 떠넘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05년부터 시행돼온 전세임대주택은 지난해 12월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임대인의 범위를 경매 낙찰자로 넓혔다. 전세 제도의 폐단을 전세 제도의 이점을 활용해 막는 셈이다.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하려는 세입자는 먼저 공인중개사를 통해 살 집을 구한 후 LH에 요청한다. 그러면 LH가 계약서를 대신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LH는 수도권 기준 1억3000만원 한도로 전세금을 지원하고, 세입자는 이 중 5%를 보증금으로 내게 된다. 월 임차료는 전세지원금에서 보증금을 뺀 금액에 대한 연 1~2% 수준이다.

문제는 집주인이 전세임대주택으로 집을 공급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우선 공공기관이 끼어있는 3자 계약이다 보니 일반 임대차계약에 비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다. 또 계약서 작성에 앞서 LH가 지정한 법무사가 물건 권리분석을 하는데, 계약 가능 여부를 통보하기까지 3~5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더 좋은 조건에 세입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유지애씨의 경우처럼 계약상 문제가 생겼을 때 LH가 발을 뺀다는 불만도 나온다. 시사저널과 만난 유씨는 "결국 직접 LH와 A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해서 승소했지만 명도 집행과 변호사 선임 등에 1000만원 넘는 돈이 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소송 전에는 LH가 변호사 비용을 전부 대준다고 했는데 실제 보상받은 금액은 37만원뿐"이라고 토로했다. LH 본사 전세임대공급운영팀 관계자는 "명도소송을 하게 되면 책임은 LH가 지는 게 원칙이고, 임대인이 소송을 할 경우 쓴 비용은 전액 보상해 준다"며 "다만 공금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상 구체적인 내역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LH 전세임대는 세입자가 아무래도 사정이 어렵다 보니 임대인 입장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회원 수 204만 명의 국내 최대 부동산 커뮤니티인 '부동산 스터디'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이용자는 "입주 전부터 입주자의 폭언과 무리한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 LH 전세임대계약을 해지했다"며 "LH가 말한 대로 배상금까지 지급했는데 (세입자로부터) 소송이 들어왔다"고 호소했다.

유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입자 A씨로부터 받은 욕설 문자와 함께 참을 인(忍)자가 온통 낙서된 전셋집 사진을 보여줬다. 유씨는 "사정이 딱한 A씨를 탓할 생각은 없다. 전세임대주택의 취지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LH가 중재 역할을 하지 않는 마당에 어떤 집주인이 전세임대를 주려고 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임대주택이 지니는 한계는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선미 종로·성북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전세임대주택에 대한 LH의 전세지원금이 꾸준히 늘긴 했지만 수도권에서 최대 지원액인 1억3000만원으로는 양질의 집을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 4월 수도권 전체 주택의 평균 전세가격은 3억4352만원이다. 빌라 등 연립주택만 추려도 1억6936만원으로 LH 지원 한도액보다 높다.

LH 전세임대포털을 통해 서울시청으로부터 반경 6km 이내에서 '공급면적 33㎡ 이상·전세보증금 1억3000만원 이하' 주택을 검색해 봤다. 계약 가능한 주택은 30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사용승인일 25년 이내의 비교적 깨끗한 물건은 5곳뿐이었다. 김선미 센터장은 "하자 발생 시 세입자가 집주인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부분도 부담"이라고 했다. 전세임대주택은 시세가 저렴하다는 특성상 노후 주택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그렇다 보니 하자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LH도 피해자…미반환 보증금 345억

전세임대주택의 단점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쪽은 집주인과 세입자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LH도 금전적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LH가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8월 LH 전세임대주택에서 602건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했다. 미반환 보증금 액수는 총 345억원이다. 8개월치만 따져도 역대 최대 규모다. 전세임대주택 미반환 보증금 액수는 2020년 27억9000만원, 2021년 97억원, 2022년 331억원으로 점점 증가했다.

LH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만 전세임대로 운영하기 때문에 보증금을 떼이는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증금 반환 지연에 따라 자금 회전율이 낮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피해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또 세입자도 LH 전세지원금의 5%를 보증금으로 내기 때문에,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LH에 반환하지 않으면 세입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구조다. 결국 전세임대주택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LH와 세입자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취약계층은 전세임대주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선미 센터장은 "주거 안정 차원에서 LH가 직접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이 유리하지만 물량이 너무 부족해 전세임대주택이 차선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의 최근 통계인 2022년 기준 전국 전세임대주택 재고는 30만9000호다. 공공임대 유형 가운데 국민임대(60만 호) 다음으로 많다. 정부는 지난해 매입임대주택 2만476호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실제 LH가 사들인 주택은 4610호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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