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간 '전세사기 특별법'... "피해자 원하면 무조건 공공매입"

김동욱 2024. 5. 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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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통과하면 한 달 뒤 바로 시행
기존 전세사기 피해자도 소급 적용
피해 주택 공공매입 신청 바로 가능
정부 "제대로 작동 어려워" 반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표결을 지켜보고 있다. 뉴스1

22대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면서 현실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 후 한 달 뒤부터 바로 시행된다. 하지만 핵심 조항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데다 개정안에 모호한 부분도 많아 법이 개정되면 적잖은 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보증금 신청하면 무조건 선반환"

그래픽=박구원 기자

지난 2일 국회 본회의 부의 안건으로 상정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담은 28조의 2~12항을 신설한 게 골자다. 민주당이 특별법 강행 처리를 공언하고 있는 터라 법안을 거세게 반발하는 정부도 21대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정안은 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경우라면 공공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자신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 조항은 법 개정 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에게도 소급된다. 지난달 중순 기준 총 1만5,433명이 정부 산하 전세사기피해자지원위원회 심의를 통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정부는 내년까지 누적 피해자가 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이들은 현재 특별법에 따라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아 경매 절차를 밟거나 기존 고금리 전세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는 대환대출 혜택 등을 받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신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해 곧바로 공공매입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피해자가 원하면 채권 대금을 바로 지급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신청만 하면 무조건 사들여야 하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 가격을 얼마로 매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개정안엔 대통령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공정한 가치 평가를 거쳐 매입하되,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우선변제보증금 이상을 하한으로 둔다는 기준만 나와 있다. 우선변제금은 서울 5,500만 원, 과밀억제권역 4,800만 원, 광역시 2,800만 원 등이다. 서울 전세사기 피해자가 공공매입을 신청하면 채권 가격을 최소 5,500만 원 이상으로 쳐주겠다는 뜻이다.

기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선순위 임차인이라면 기존 절차(경매 등)를 밟지 않고 곧바로 국가에 공공매입을 신청할 수 있다. 개정안 기준대로면 이들은 보증금을 전액 가까운 수준에서 바로 돌려받는 것도 가능하다.

금융권 대출 같은 선순위 근저당이 많아 경매에 가더라도 남는 게 한 푼도 없는 후순위 임차인도 보증금을 상당 부분 건질 수 있다. 피해자가 신청하면 공공기관(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이 선순위 저당 채권을 매입하도록 하는 조항이 개정안에 담겼기 때문이다. 선순위 근저당권을 보유한 금융사는 캠코가 요청하면 반드시 할인해 채권을 팔아야 한다. 이후 캠코는 추후 채권 회수를 위해 법원에 배당금을 신청하더라도 세입자에게 더 많은 배당금이 돌아가도록 조치해야 한다. 금융사나 캠코 모두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다.


"보증금 채권 가치 0원 수두룩"

개정안이 '선구제 후회수' 원칙을 담고 있지만, 회수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중 후순위 임차인은 60~70% 수준이다. 이들 중엔 임차보증금반환채권 가치가 0원에 가까운 이들도 수두룩하다는 게 국토부 추산이다. 실제 전세보증보험 가입자에게 HUG가 보증금을 먼저 내주고 집주인에게 추후 청구해 받는 대위변제 회수율도 10%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별로 제각각인 임차보증금반환채권 가치를 평가하는 데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점,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환 대출, 경매 유예 등으로 피해를 구제받는 기존 특별법 조항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핵심 조항에 대해 그간 제대로 된 검토가 없었고 실제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며 "우선 세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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