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월 26일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두 달 동안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값이 대폭 떨어졌다. 주택 임대소득 과세 방침이 일반 아파트보다 전·월세 수익이 많지 않은 재건축시장에 찬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닥터아파트가 2·26 대책 이후 이달 22일까지 약 2개월 간 강남 3개 구(강남·서초·송파구)와 강동구의 재건축 아파트 값 변동률을 조사한 결과 1.95%가 떨어졌다. 이는 2·26 대책이 발표되기 이전 2개월 간(1~2월) 2.62%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2·26 대책 발표 이후 강남권에서는 재건축과 일반 아파트 값이 상반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 값은 대책 발표 직후 3월 말까지 한 달 간 1.58% 하락했고, 이어 3월 말 이후 지난 22일 현재까지 한 달 간 0.33% 내렸다.
이에 반해 강남권 일반 아파트는 대책 발표 이후 한 달 간은 1.01% 떨어졌다가 지난 한 달 간은 다시 0.13% 올랐다. 이는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급매물이 팔려나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재건축 아파트 값만 급락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값은 올해 초부터 강한 상승 기류를 탔다. 강남구만 해도 1~2월 두 달 간 6.31%나 급등했고, 송파구는 3.79% 뛰었다. 지난해 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가 폐지된 데 이어, 국토교통부가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 재건축 규제를 폐지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2·26 대책이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2·26 대책 이후 서초구는 한신3차 등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이 내림세를 주도하며 2.42% 내렸다. 강남구는 1만2000여 가구에 이르는 개포주공 및 개포시영에 대한 관망세가 확산되면서 2개월 간 1.74% 하락했다.
전·월세용 주택이 많은 일반 중소형 아파트나 다세대·연립주택 등이 아니라 재건축 아파트 값이 2·26 대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왜 일까. 전문가들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거나 잠재 수요 상당수는 다주택자들이다. 전·월세 수익이 아니라 재건축 사업으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이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임대소득 양성화를 골자로 한 2·26 대책 이후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의 부동산팀장은 “보유하고 있는 다른 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의 임대소득 노출을 꺼리는 다주택자들의 경계심리가 재건축 아파트 거래 위축을 불러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의 한 재건축 추진 단지.
시장 안팎 악재로 울상 내부 악재도 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이 2008년 송파구청이 인가한 가락시영 아파트의 재건축 결의 취소 판결이 나왔다. 이미 이주까지 이뤄졌는데 이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계획안을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선례가 돼 혹시 다른 재건축 단지에도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관망세로 돌아선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가락시영은 재건축 결의 취소 판결 악재까지 겹치면서 두 달 새 2.87% 하락했다.
여기에 추가분담금 파동까지 겹쳤다. 애초 가락시영아파트 51㎡를 소유한 조합원이 84㎡를 배정받을 경우 발생하는 추가분담금이 5000만원 정도로 예상됐지만 실제 분담금은 최고 1억원을 넘었다.
장기간에 걸친 부동산 경기 침체로 금융비용과 공사대금이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강남권 일대 다른 재건축 단지들도 상당기간 재건축 사업이 멈춰 서 있었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번 추가분담금 문제는 가락시영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대부분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분간 재건축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2·26 대책이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당분간 재건축 시장이 살아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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