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날릴 걱정이 없는 안전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집주인의 대출 여부입니다. 하지만 임차하려는 집이 다가구 주택일 경우엔 집주인의 대출 외에도 다른 세입자들의 보증금도 함께 알아봐야 합니다.
다가구주택이란 분양 목적이 아닌 임대 목적으로 지어진 주택의 한 형태입니다. 외관은 3층 이하의 일반적인 주택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단독주택과 다른 점은 한 주택 안에 소유자 가구 외에 여러 명의 세입자가 함께 거주한다는 점입니다.
다가구 주택 내에는 2~19가구가 지어집니다. 많게는 19가구가 모여 살지만 분양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각 가구가 개별적으로 등기가 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입자가 여러 명인 집을 임차할 때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세입자의 전입신고일자나 확정일자, 보증금액을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입자 내역 서류상으론 확인 어려워 임대인의 구두상 설명만 믿고 계약해야 하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보증금액 규모를 숨기거나 낮추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다가구주택에 후순위 전세입자로 들어갔다가 보증금을 모두 날리게 된 사건입니다.
세입자 A씨는 2003년 9월 29일, 대구 남구에 위치한 다가구 주택(12가구 거주) 301호에 보증금 5000만원으로 전세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 후 전세권설정 등기까지 마쳤습니다.
계약 당시 이 집에는 2건의 근저당권이 설정돼있고 9명의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상세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세 계약 후 2달도 안된 2003년 11월 26일 우리은행의 경매신청으로 매각 절차가 개시됐습니다. 해당 주택의 감정가는 4억370여 만원이었고 3억1535만8216원에 낙찰됐습니다.
경매비용을 제외하고 실제 배당된 금액은 총 3억1106만6216원입니다.
1순위 배당은 소액임차인에게 각각 1400만원씩 배당됐습니다. A씨를 제외한 9명의 세입자가 모두 소액임차인에 해당돼 이들에게 총 1억2600만원이 배당됐습니다. (1순위 근저당권설정일 2002년 11월 12일 기준 광역시 소액임차인의 보증금 범위는 3500만원 이하, 최우선변제 보증금은 1400만원)
2순위로 대구 남구청장에게 당해세 30만4120만원이 배당됐습니다. 당해세는 해당물건에 부과된 국세,지방세 및 그 가산금을 뜻합니다. 배당 순위는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 임금채권 다음으로 배당됩니다.
나머지 1억8476만2096원은 근저당권자인 우리은행에게 모두 돌아갔고 후순위 전세입자 A씨는 보증금 5000만원 중 한 푼도 배당 받지 못했습니다.
중개업자·임대인에게 적극적으로 정보 요구해야 이 주택의 소유자는 계약 당시 우리은행의 근저당권이 설정돼있고 경매가 진행되면 A씨가 배당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유자는 임차인 A씨에게 해당 주택의 시가가 5~6억원 정도이고 임차인 중 1명만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머지 세입자는 모두 보증금 없이 월세만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임차인 A씨의 보증금을 모두 배당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집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등기부상 권리인 근저당권에 대한 내역만 확인하고 세입자 내역은 소유자의 설명만 듣고 중개했습니다.
이 사건은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 의무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판례 역시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의 말이 맞는지 적극적으로 검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합니다.
선순위임차인의 보증금액·전입신고·확정일자 서면으로 받아놔야 안전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 내역의 경우 임대인 말을 믿고 그대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네요. “세입자 내역을 하나씩 다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증금 총액 정보만 주인한테 물어봐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세입자 내역에 대한 확인·설명 책임이 중개업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전셋집을 알아볼 땐 중개업자와 임대인에게 적극적으로 정보 요구를 해야 합니다.
이때 요구해야 할 내역은 선순위임차인들의 보증금 액수, 전입신고일자, 확정일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확인된 사항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꼭 포함시켜야 추후 다툼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인이 다른 세입자들의 정보 공개에 적극적이지 않고 선순위 세입자가 많아 불안하다면 차라리 다른 집을 알아보는 것이 안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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