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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큰 불편 없는데, 재건축 하면 주민들 분란만 커질 텐데···
올해 상반기 분양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블래스티지 등 강남·서초구의 재건축 단지들이 3.3㎡(평)당 4000만원을 넘어서는 고분양가임에도 7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나타낼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재건축단지인 압구정동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는 원래부터 정·재계 유력인사가 많이 거주하는 부촌 이미지가강한데다 실용적 측면에서도 강남북 모두 가까운 교통의 요지라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요인을 감안할 때 재건축을 하기만 하면 강남권 다른 신규 재건축 단지를 뛰어넘어 소위 ‘대박’을 칠 것이란 게 부동산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작 이곳 토박이들은 재건축 추진에 뜨뜻미지근한 반응들이다. 재건축을 망설이는 주민들의 속내는 대체 뭘까.


장기 입주자 중엔 사회 지도층 인사 다수

지난달 21일 오후 8시 압구정교회 2층 본당. 구현대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올바른재건축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가 마련한 설명회(위 작은 사진)에 주민 400여명이 모였다. 재건축 이후의 단지 예상도를 화면으로 보여주자 일부 참석자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45층 타워형 아파트 동과 동 사이의 여유로운 공용공간 지하에 럭셔리한 분위기의 쇼핑몰이 들어선 모습이 지금의 낡은 아파트 단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보인다.

사실 이런 설명회는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재건축 관련 주민 대상 설명회는 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지난 2월에는 또 다른 재건축추진단체인 압구정구현대주민소통협의회(이하 소통협)가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6월에는 일부 주민 주도로 또 다른 재건축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여기서는 신탁회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35층 이하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대신 사업을 빨리 진행하자는 게 요지였다.

다음달 서울시가 압구정지구 정비계획변경안을 발표하기 전에 재건축 사업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러 단체가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주민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관심까지 집중되며 압구정동 아파트 호가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 2월만 해도 144.7㎡(44평)인 6단지 내 아파트가 19억3000만원에 거래됐는데 7월에는 똑같은 크기 아파트가 20억7000만원에 팔렸다. 4개월 만에 1억4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골드웰공인중개사무소의 김종도 차장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겠다는 문의는 꾸준한데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물밑 상황만 보면 구현대의 재건축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것 같지만 정작 주민들을 만나보면 반응이 전혀 다르다. 김인용(65)씨는 “사는 데 큰 불편도 없는데 재건축 한답시고 주민들간에 분란만 커지는 것 같다”며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다.

이런 정서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초 소통협이 재건축 사업 진행시 적절한 공공기여 비율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3130세대 중 15%에 불과한 488세대만 답했다.

2014년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재건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4979명 중 3076명이 응답, 61.8%의 응답률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응답률은 사실상 재건축에 적극적인 세대 비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재건축은 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확보해야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는 걸 감안하면 구현대의 재건축 추진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 압구정 현대아파트 13동에서 내려다 본 전경.

 
‘압구정 주민’이라는 자부심·소속감 강해

그리 노후하지 않은 단지들도 재건축을 못해 안달인데 이곳 주민들은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느긋한 것일까. 오래된 아파트지만 새 아파트만큼 살기 편하고 아무 불편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197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압구정 구현대 단지는 완공 40년이 지나 재건축이 시급한 지역으로 꼽힌다. 최고 부촌이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시설이 노후해 주민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압구정 구현대를 떠나 대치동 래미안 대치팰리스(※청실아파트 재건축단지)로 옮겼다는 이창우(43)씨는 “현대아파트 살 때 배수관에서 하수구 악취가 올라와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지하주차장이 없고 지상주차장 역시 공간이 부족해 주차난이 심하다는 점도 주민들이 토로하는 큰 불편 중 하나다. 일부 동은 놀이터 공간 가장자리 턱을 깎아 자동차가 빠져나가도록 공사한 곳도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 이곳 경비원의 주업무는 주민들 차를 발렛파킹 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건축을 반기지 않는 이유는 뭘까. 많은 전문가들은 주민 대다수가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들이라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소통협이 주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집계해보니 응답자(462명)들은 평균 거주기간이 18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주민의 평균 거주기간이 16년(2013년 강남구 사회조사)인 것과 비교해봐도 압구정동이 유독 장기 거주자가 많은 동네라는 걸 알 수 있다. 30·40대에 입주해 70·80대가 될때까지 40년 가까이 쭉 거주한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이런 장기 거주자 중에 교수·정치인·기업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많다보니 압구정주민이라는 자부심과 소속감이 유달리 강하고, 이게 재건축 추진에 걸림돌이라는 해석이다.

『강남의 탄생』을 쓴 한종수 세종시 도시재생센터 사업지원팀장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중대형 평형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분양 당시 중·상류층이 대거 입주했다”며 “교육 여건도 좋다보니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강남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리얼투데이 김광석 센터장도 “강남 최북단이라 도심에 가깝고 학군도 좋아 입주 지금까지 쭉 눌러 산 세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노령층 많고 보수적 “이사 갈 엄두 안나”

그렇다보니 동네 문화가 점점 보수적으로 흐른다. 주민 김모(39)씨는 “아파트 외관 페인트 색깔도 40년 동안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며 “성향을 떠나 넓은 평형대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 집에 가보면 짐이 어마어마해 아마 이사갈 엄두가 안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경숙(73)씨는 “짐이 많아 이사할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고령층은 대부분 이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70대 이상 고령의 거주자들끼리는 “재건축한답시고 다른 데로 이사 나가면 솔직히 새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나 있겠느냐”며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한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주택 보유자의 연령대가 높을수록 재건축 추진이 어려운 경향이 있는데 압구정동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조사한 강남구 노령인구 현황을 보면 강남구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주민 비율은 10.6%인데 비해 압구정동은 14.8%로 훨씬 높다. 고령의 은퇴세대, 그것도 대형 평형에서 오래 거주한 이들에게 이사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이벤트라는 것이다.

부모가 압구정의 같은 아파트 단지를 매입해 자녀에게 증여한 후 가까이 사는 경우도 흔해서 실제 고령의 세대주 수에 비해 고령층의 영향력은 더 크다.

부영건설 관계자는 “고령의 세대주 비중이 높아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은 건 서울의 1세대 아파트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며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반포주공1단지를 예로 들었다.

1971년 완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민간 첫 고층아파트로 재건축 연한을 넘긴지 16년이 지났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정부의 개발규제로 인해 재건축의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은퇴한 고령의 세대주들이 이주를 꺼리고 추가분담금 납부를 부담스러워해 재건축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 영향도 크다. 

그렇다면 젊은 주민들은 모두 재건축에 호의적인 걸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장모(40)씨는 재건축 반대파에 속한다. 아파트가 낡았다지만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들 주차난을 얘기하는데 사실 경비가 발렛 주차를 해주니 오히려 불편하지 않다”며 “오히려 옛날에 지은 아파트라 층간소음이 덜하다”고 말했다. 또 “겉은 낡아보여도 다들 수억 원을 들여 편하고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살아 집 안에 들어가면 낡은 아파트라는 걸 알기 어려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적지 않은 주민들이 이처럼 재건축에 적극적이지 않다 보니 이번에도 재건축이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압구정지구는 앞서 참여정부 시절과 오세훈 시장 재임시절 재건축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경험이 있다.
 
젊은 주민들도 아주 적극적이지 않아 “10년 내 어렵다”

2005년 주민 일부가 압구정지구 통합 재건축을 추진했는데 강남 재건축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과열되자 노무현 참여정부가 개발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를 들이대는 바람에 제동이 걸렸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엔 서울시가 평균 용적률 330%, 최고 50층까지 허용한 압구정 지구 개발예시안을 제시했지만 공공기여율 25%가 과하다는 주민 반발에 또 무산됐다.

이런저런 속사정을 잘 아는 젊은 주민 중에는 재건축이 빠른 시일 내에 추진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도 꽤 있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6차에 전세로 거주하는 이주익(42)씨는 2년 전 압구정 아파트를 팔고 신반포5차 아파트를 샀다.

이씨는 “압구정지구는 평형대가 다양한데다 같은 평형이라도 단지마다 대지지분이 달라 재건축 추진 단계에서 주민들간 이해관계가 상충할 소지가 많다”며 “솔직히 재건축을 기대하고 압구정에 살았는데 향후 20년은 어려울 것같아 아파트를 팔았다”고 했다.

재건축 기대감에 가격이 올랐을 때 파는 게 계속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더 이익일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주민 강주은(44)씨도 “당장의 이익보다 ‘오래 걸려도 제대로 하자’는 의견이 많다”며 “나만 해도 정권 따라, 서울 시장 성향 따라 재건축 계획이 계속 달라지니 이번 계획안이 탐탁지 않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리지만 재건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쪽이 조금 더 다수다. 박상언 대표는 “고령의 장기 거주민들이 많아 재건축은 10년 안에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광석 센터장은 “풀어야 할 난제가 많기는 하지만 강남 어느 지역보다 재건축 후 가치가 높아질 곳이기에 꼭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압구정 재건축 성사 가능성은

서울시 “9월엔 계획 발표”

주민들 “최고 50층 돼야”

 
이미 여러 번 좌초됐던 압구정 재건축 사업, 과연 이번에는 성사될까?
재건축 첫 단계인 안전진단은 2014년 3월에 이미 통과했다. 문제는 서울시가 정비기본계획안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존의 지지세력과 포용해야 할 강남권 주민 사이에서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게 아니냐”는 원성이 나온다.
계획안 발표가 10월 이후로 미뤄진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하지만 서울시 공동주택과 김문군 주무관은 “무조건 9월엔 발표한다”고 못을 박았다. 계획안 발표 후 주민공람을 거쳐 올해 중 기본계획을 확정하겠다는 얘기다.
지난 5월 서울시의 연구용역을 받아 한 설계업체가 작업한 단지설계안 일부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한동안 압구정 재건축 얘기로 떠들썩했다. 이 안의 주요 내용은 가까운 단지별로 총 6개 구역으로 묶어 재건축을 진행하고, ‘한강변 관리기본계획’에 따라 최고 35층까지 허용하며, 용적률은 300%를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공공기여 비율이 25%(오세훈 안)에서 15%로 대폭 낮아지긴 했지만 층고 제한이 50층에서 35층으로 낮아져 주민들의 실망감은 더 커졌다.
재건축을 할 때 아파트를 고층으로 지을수록 동수는 더 적어져 단지 내 공용면적이 넓어지고 주거환경이 쾌적해진다. 고층으로 지을수록 한강 조망 등 가치가 높은 로얄세대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개발수익이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압구정 구현대 단지 재건축을 추진중인 안중근 올바른재건축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 위원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개발계획은 공공기여 비율이 더 높긴 했지만 최고 50층까지 허용했는데 시장 한번 바뀌었다고 35층으로 낮추다니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압구정구현대주민소통협의회의 신영세 간사장 역시 “공공기여분을 늘리는 한이 있어도 45층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서울시가 35층을 고집한다면 이번엔 재건축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여 예정 부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서울시가 구현대 안에서도 노른자위 땅인 중앙 강변 부지(12~13동, 21~22동)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준비위 측이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안 위원은 “경제적 가치가 가장 높은 땅을 내놓으라는 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준비위 측은 동호대교 인근에 공원 부지를 조성하고 층고제한을 폐지해달라는 내용의 주민제안서를 만들어 강남구와 서울시에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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