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자영업자 김형진(가명·38)씨는 최근 대전의 소형 아파트 2채를 사들였다. 투자한 자금은 중개수수료를 포함해 고작 8000만원. 이런 쌈짓돈 투자가 가능한 것은 요즘 인기를 끄는 ‘갭(gap) 투자’ 방식을 이용한 때문이다.
갭 투자란 전세를 끼고 매매가격과 전셋값 차이가 크지 않은 부동산을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기법이다. 매수자는 투자금으로 집값과 전세보증금 차액만 있으면 된다.
김씨가 매입한 이 아파트의 전세가비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87%에 이른다. 김씨는 "순 투자금이 많이 들지 않아 매입했지만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주춤하던 갭 투자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꿈틀대면서 수도권은 물론 지방 대도시 아파트 단지까지 ‘갭 투자 족’이 눈에 띈다.
갭 투자족이 타깃으로 삼는 대상은 전세가비율이 높은 소형 아파트다. 전세를 안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갭 투자는 아파트에 머무르지 않고 다세대주택·오피스텔까지 확산하고 있다.
최근 갭 투자족의 재등장은 대출 문턱이 높아진 영향도 주요 요인인 것 같다. 갭 투자를 활용하면 금융기관이 아닌 세입자로부터 대부분의 매입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다.
갭 투자는 자금 여력이 많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 30~40대가 많이 시도한다. 시중 서점가에는 성공기를 담은 책이 쏟아져 나와 갭 투자를 부추긴다. 하지만 갭 투자는 매우 위험하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갭 투자는 전셋값이나 매매가격이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 아래 시도하는 투기적인 매입행위다. 대체로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만큼 오른다고 볼 수 있다.
원금 까먹는 '깡통 주택' 경계해야그러나 단기적으로는 공급이나 정부의 정책, 금리 변동 등에 따라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다. 전세는 본질적으로 취약한 사금융이다. 집을 살 돈이 모자라 개인적으로 세입자로부터 빌리는 비제도권 자금정도로 봐야한다는 얘기다.
여기다 수급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큰 게 특징이다. 주택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나면 전세소멸시대에도 전셋값은 곤두박질칠 수 있다. 전세는 오로지 수요·공급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초 상승기에도 전세를 안고 아파트를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전세 안고 투자’와 요즘의 ‘갭 투자’는 비슷한 형태지만 순 투자금 비중이 다르다.
당시에는 아파트 전세가비율이 50~60%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75.7%(전국 기준)으로 치솟았다. 일부 소형 아파트는 80~90%에 이르는 곳도 많다. 집값이 떨어지면 과거에는 전세가비율이 낮아 투자자만 손해를 보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근접해 집값 하락 때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 방어벽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가격의 우상향이 무너지면 투자자는 투자원금을 거의 날리는 깡통주택, 세입자는 보증금을 모두 돌려 받지 못하는 깡통전세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갭 투자는 시도하지 않는 게 안전하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우선 최소한의 전세보증금 반환 자금을 확보해 두는 게 바람직하다.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을 투자하기보다 일부라도 예금 형태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전셋값 하락 때 세입자와의 분쟁을 피할 수 있다.
또 하나. 전세가비율이 높은 곳이 반드시 유망한 곳은 아닐 수 있다. 비율이 높은 곳은 일반적으로 주거여건이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일부 매매가격 상승 기대가 낮은 지역도 전세가비율이 높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높은 전세가율=갭투자 성공’ 방정식이 항상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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