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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분쟁의 불씨 될 때 많아
부산에 사는 은퇴자 박진국(가명·63)씨는 요즘 동생들과 다툼이 잦다. 선친이 물려준 60억원대 빌딩 매각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빌딩은 맏이인 박씨를 포함한 5명의 형제자매 공동 소유로 돼 있다. 박씨는 건물 관리를 겸해 1층에서 작은 편의점을 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건물을 팔자고 하더니 요즘은 압박의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이번 선친 기일에도 빌딩 매각문제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장남으로서 빌딩에 대해 갖는 애착은 각별하다. 선친이 평생 일궈 물려준 건물인데 세상 떠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덜컥 파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동생들은 형이 흑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눈치다. 건물이 팔리면 일자리가 사라질 까봐 매각을 꺼린다는 것이다.

박씨는 “형제자매가 빌딩을 잘 가꾸면서 사이 좋게 지내라고 물려주신 건데 오히려 다툼의 불씨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쟁족(爭族)을 아십니까

일본에서는 유산을 놓고 자녀들의 분쟁이 늘어나면서 신조어가 생겨났다. 바로 ‘쟁족’이다.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싸우는 가족이라는 뜻이다. 주변에서도 보면 부모 재산을 놓고 분쟁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산이 많을수록, 자녀수가 많을수록 분쟁의 빈도는 높아진다.

요즘 재산 분쟁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왜 처음부터 분할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을 자녀 공동 명의로 나눠주면 생각보다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말기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진택(가명·85)씨는 요즘 화병까지 생길 지경이다. 갈수록 기력이 쇠진해지는 것을 느껴 5년 전 서울 강북에 있는 상가건물과 지방 땅을 공동 명의로 아들 4명에게 증여했지만 오히려 가족 간 분쟁의 불씨가 돼서다. 그가 공동 명의로 재산을 증여한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이 부동산을 함부로 팔지 않고 지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의 사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둘째 아들은 건물을 팔아서 급전을 조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른 자녀들이 매각을 반대하자 형제 간 사이가 소원해지더니 요즘은 둘째 아들은 아예 명절 때도 오지 않는다. 김씨는 “내가 일군 재산을 가지고 아들이 쌈박질하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물론 공동 명의로 부동산을 증여하면 부동산 가액이 분산돼 단독 명의보다 재산세·종부세·양도세 절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공동 명의 때는 의사결정이 쉽지 않고 다툼 또한 끊이지 않는다. 서울의 한 빌딩중개업체 사장은 “상속·증여 빌딩 가운데 50% 이상이 분쟁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혈육지간에는 사소한 갈등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돌이키지 못할 큰 싸움으로 비화되기 쉽다.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재산 싸움은 더 노골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맏이는 동생, 동생은 맏이에게 서로 양보하고 싶지만 ‘피가 섞이지 않는’ 배우자들이 간섭하면서 싸움의 판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업을 해서 오래 전 구입한 빌딩이 있다고 하자. 이제는 내 분신처럼 생각될 정도로 애착이 강한 빌딩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빌딩을 자식에게 넘기려고 한다.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들까.

나의 유전자를 잇는 자식에게 재산을 승계할 수 있으니 뿌듯하고 행복한 감정이 들까. 아니면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물건을 남에게 줬을 때 느끼는 허탈감, 재산을 넘겨줬으니 부모를 홀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낄까. 80대 전직 사업가는 “증여 계약서를 작성할 때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A 변호사는 최근 아들에게 부동산 증여를 원하는 자산가의 집을 찾았다. 이 변호사는 “증여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난 뒤 아버지가 슬며시 자신의 방에 가서 울더라”고 했다. 이 바람에 증여 계약서를 작성하던 집안 분위기가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권력의 이동으로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과 아버지는 혈육 관계이지만 한편으로는 권력 관계이다. 재산 증여는 재력으로 생기는 권세인 금권(金權)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 입장에서 금권의 이동은 재산을 매개로 한 집안 일의 주도권 상실로 이어진다. 옛날 시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쉽게 주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하다. 그래서 말인데, 그 자산가는 가족 관계에서 더 이상 갑(甲)이 아니라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괜한 생각, 지위 박탈감이 섞여 눈물을 흘린 게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재산 증여 후 울적해질까

역사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극단적인 갈등관계를 드러낸 것은 조선시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다. 영조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까. 개인적으로 혈육이 아닌 권력 코드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혈육으로는 아버지가 아들, 그것도 친아들을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권력이 매개될 때 아들을 죽이는 비정한 아버지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과 아버지간의 알력은 원초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임을 말해준다.

영조는 사도세자는 미워했어도 세손(정조)에게는 애틋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애정의 관계이지 권력의 관계가 될 수 없다. 손자·손녀는 보기만 해도 기쁨과 웃음이 나온다. 늘그막 삶의 보람이다.

70대의 한 지인은 “심지어 손자를 오래 보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 친구가 있다”고 했다. 요즘 손자·손녀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하지만 지갑 속에 아들 사진은 없다. 최근 들어 아예 아들을 거치지 않고 손자·손녀에게 바로 증여(세대 생략 증여)하려는 사람이 많다. 이는 절세 목적 이외에도 아들과 손자를 바라보는 감정 차이도 섞여있기 때문이리라.

자식에게 증여를 하더라도 부모, 특히 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상속 개시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가액에 합산해 상속세를 부과한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좋지만 아버지의 미묘한 감정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사실주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주인공은 죽어가면서 두 딸을 원망한다.

고리오 영감은 제분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이젠 빈털털이다. 마지막 남은 은수저를 내다 팔 정도니 오죽하랴. 그동안 벌어들인 재산은 모두 두 딸의 사치와 허영을 충족시키는 데 들어갔다. 두 딸은 철딱서니가 없다. 아버지의 베품에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아버지는 자신들이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데 돈을 대 주는 존재일 뿐이다.

무도회에 갈 드레스를 살 때처럼 돈이 필요할 때만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가 졸도해서 사경을 헤매는데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을뿐더러 장례비도 대주지 않는다. 불효도 보통 불효가 아니다.

가시고기처럼 아낌없이 주는 고리오 영감의 부정과 아버지를 비정하게 외면하는 두 딸의 스토리는 좀 극단적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고리오 영감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너무 많다. 어린 자식 양육과 늙은 부모 봉양을 맞교환하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일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고 결혼 이후에도, 손주 돌봄 등 각종 애프터서비스를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가 더 퍼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아낌없이 줬더니 되돌아오는 것은 냉대일 뿐이라는 늙은 부모의 푸념 듣기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이제 자식은 노후의 보험은 결코 아니다. 오죽하면 “자식은 재산이 아니라 영구부채”라는 말까지 있을까. 심지어 어느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무찌르자 아들딸”이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들린다.

나도 ‘효도계약서’ 써볼까

자식으로부터 박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재산을 움켜쥐려는 사람도 많다. 일본에서 ‘노노(老老)상속’이 많아진 이유다. 노노상속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도 자신을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본 일본 노인들이 죽을 때까지 재산을 넘기지 않아 생겨난 신조어이다.

이러다 보니 100세 부모가 세상을 떠날 무렵 또 다른 노인인 80세 자식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절세를 위해 재산을 조기 증여할 것인가, 아니면 재산을 끝까지 쥐고 갈 것인가.

혹시 증여한 재산을 자녀가 함부로 팔아버릴까, 허투루 돈을 써버릴 까 걱정된다면 방법은 있다. 우선 검토해볼 만한 게 ‘효도 계약서’이다. 이른바 조건부 증여 계약서이다. 재산을 증여를 하기는 하는데,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증여 계약은 무효라는 의미의 계약서이다.

가령 부동산을 증여하는 대신 용돈을 매달 부치고, 아플 때 병원 치료비를 대며, 매달 1회 손자를 데리고 방문하라는 조건이다. 해당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때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건을 다는 것은 물론이다. 효도계약서는 재산을 물려받고도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 ‘먹튀 불효자’를 막기 위한 장치이다.

효도계약서에는 내용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적는 게 좋다. 다만 자식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증여 재산을 되돌려 받기는 쉽지 않다. 법적 소송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강남의 자산가는 “효도계약서를 쓸까 고민했지만 피붙이인 아들을 대상으로 너무 야박한 게 아닌가 싶어 그만 뒀다”고 말했다.

또 효도계약서가 아니면 금융권의 유언대용신탁(예 KB국민은행 안심상속신탁)이나 증여 때 일부 지분 남겨두기를 생각해볼 만하다. 유언대용신탁은 부모 등 피상속인이 신탁계약을 통해 부동산을 비롯한 상속재산을 자식 등 상속인에게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신탁으로 요즘 관심을 갖는 고령자들이 늘고 있다.

또 ‘지분 남겨 두기’는 아들 100% 단독 명의로 등기하기보다 아들의 지분은 80%로 낮추고 대신 부모의 지분 20%를 남겨두는 것이다. 부모 홀대를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팔 수 없도록 일종의 ‘족쇄’ 기능을 한다.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근저당을 설정할 때 공유 지분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부동산 지분 가액이 많지 않아 자식의 상속세 부담도 덜 수 있어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다. 겉으로는 지분 20%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식이 종종 찾아와 깍듯이 모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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