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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OS요원은 조합원 표 확보가 주임무
저는 겉으로는 장성한 자녀 둘을 두고 있는 50대의 평범한 주부입니다만, 사실 ‘요원’입니다. 주로 ‘음지’에서 일하는. 남편도 제가 하는 일을 잘 모릅니다. 새벽 별을 보며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탓에 가족 얼굴을 못 볼 때가 많습니다.  
  
한때 입구에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비석을 세워뒀던 국가기관이 생각나겠지만 거기 소속은 아닙니다. 물론 거기 다니는 분들이 거기서 일한다고 하지 않겠지만요.  
 
다름 아니라 재건축 수주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OS요원’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에서도 저와 같은 요원들이 활약했죠.      
 
저희는 양지와 음지 양쪽에서 일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일부는 알리면 안 되는 일도 많아 재건축의 ‘보이지 않는 손’인 셈입니다. 양지와 음지를 넘나들다 보니 '하얀 손’과 ‘검은 손’을 모두 갖게 됐습니다. 저희 세계를 말씀드리죠.   
 

동의서 수집, 총회 지원, 이주 관리
 
‘OS(outsourcing)’라는 말이 나타내듯 저희는 용역을 받아 재건축 업무를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재건축뿐 아니라 재개발·지역주택조합 등 조합 사업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사업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주민 몇명으로 이뤄져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한 추진위나 조합만으로는 처리하기 힘든 일이 많습니다. 조합 업무 보조 역할이죠. 
 
주요 업무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우선 동의서 수집(징구)입니다. 재건축은 사업을 진행하는 데 여러 단계를 거치고 그때마다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조합설립 추진위 구성을 위해 과반수, 조합 설립에 75%가 넘는 동의가 필요하죠.  

모두 해당 단지에 사는 것도 아니고 자기 전 재산이 걸려 있는 일인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민이 별로 없습니다. 재건축 단지는 오래된 낡은 아파트여서 대개 50~70%는 세를 주고 다른 곳에 삽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료 전달하고 설명해 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귀찮다고 피해다니는 사람도 많아요.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고.  
 
간혹 영어가 낯선 나이드신 분들 중에는 OS 요원을 투표용지 들고 다닌다고 'OX' 요원 으로 부르거나, 찬성만 강요한다고 '오예스' 요원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재건축 사업을 좌우하는 주민 총회 관련 업무입니다. 재건축은 중요한 사업 내용을 주민 총회로 결정합니다.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관리처분(일반분양 포함한 최종 재건축 계획) 때입니다. 사업비가 10% 이상 늘어난다든지 조합원의 재산권과 관련한 중대 사안에 대해서도 총회를 열곤 합니다.  
 
조합이 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인 총회의 개최와 진행 등을 저희 요원들이 맡는거죠.   

사업이 마무리될 때쯤 골치아픈 일을 해야 해요. 공사에 앞서 철거를 위해 세입자 현황을 조사하고 단지에 살고 있는 조합원과 세입자 이주를 관리하는 거죠. 나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버티는 세입자도 있어요.  
 
여기까지가 양지에서 ‘하얀 손’이 하는 일이에요. 조합에서 입찰 공고를 내서 이런 업무를 맡을 저희들을 뽑습니다. 투명하죠.   

▲ 재건축 사업 절차.


1인당 5~10명 맡아 물량 공세
  
지금부터가 음지에서 벌어지는 ‘검은 손’의 일입니다. 재건축 수주전을 위해 건설회사가 OS업체를 씁니다. 수주전은 조합원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저희의 일은 조합원을 업체 편으로 구워삶는 일입니다. 고객이란 표현이 낫겠네요.   
 
1인당 고객 5~10명을 담당합니다. 고객 주소와 연락처는 조합에서 제공 받기도 하고 아니면 갖은 수단으로 확보합니다. 
 
저희는 구워삶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본이 선물 공세입니다. 저렴하고 작은 것부터 비싼 것으로 금액과 덩치가 커집니다. 고객과 친분을 쌓으면서 필요한 것을 파악해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명품 쇼핑백 등을 줍니다. 50만~100만원인 고가 수입산 청소기 같은 건 당연한 거고요. 

고객이 원하면 냉장고·세탁기 등도 사드립니다. 재건축 수주전 때 냉장고 등을 실은 배송차량이 들락거리는 것 보셨나요. 곧 철거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면서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지 않나요.    
 
고객이 거절하지 않느냐구요. 처음엔 좀. 그러다 말죠.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아다. 처음엔 5만원짜리 선물도 부담스러워하지만 나중엔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도 선뜻 받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중독’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혼자만이 아니라 옆집, 윗집, 아랫집 대부분 받기 때문에 밖으로 알려질 가능성이 작아요.    

▲ 총회 업무를 보조할 용역업체를 구하는 재건축 조합 입찰 공고문.


개인 카드로 결제하고 정산 받아

이들 선물은 대개 저희 요원들 개인 카드로 씁니다. 나중에 용역 회사에 청구하는 거죠. 그래서 한달 카드비가 500만원이나 나오기도 해요. 1000만원씩 쓰는 경우도 봤죠.  
 
해당 단지에서 영향력 있는 고객에겐 아예 회사에서 카드를 만들어 주기도 해요. 몇백만원 등 일정한 한도 내에서 마음껏 쓰라고.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랄까 OS요원이 개인적으로 쓰고 청구하기도 해요. 명품 가방을 둘 사서 하나는 본인이 쓰는거죠. 고객에게 준 건지 확인이 어려우니까요. '배달사고'가 적지 않죠. 간혹 수백만원짜리는 회사에서 백화점 같은 구입처나 고객에게 확인하기도 해요.  
 
간혹 ‘초짜’ 요원이 동네 마트에서 샴푸 등 생활용품을 사고는 청구했다가 들통나서 잘리기도 해요. 요령 있는 요원은 개인 용품을 사더라도 과일 등 선물에 해당하는 품목으로 결제하죠.  

‘맛’들인 고객이 되레 대놓고 요구하기도 해요. 고객 한 분이 옆집과 아랫집 등 3표를 보장할테니 3가족 부부 유럽 여행을 시켜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 들어주지 못했다는데 그 표들이 경쟁업체 쪽으로 갔는지 모르죠.  
 
드러내놓기 부끄러운 돈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 저희 요원 쪽에서나 고객이나 정도가 ‘심한’ 경우가 많아요.   

개인 용도로 쓰고, 고객이 원하기도
  
하이라이트는 시공사 선정 투표 때 고객 모시기예요. 집으로 방문해서든, 투표장소에서든 자기 편으로 만든 고객을 안내하는 것이죠. 동행하는 요원이 어느 쪽인지가 바로 그 회사 표인 셈이죠.  
 
이때 마지막 카드로 '캐시'가 쓰이곤 합니다. 금액은 당사자만이 알죠. 그 동안 쌓인 정이 있는 데다 돈까지 받게 되면 표가 거의 확실하게 굳어지는거죠. 간혹 '배신표'도 나와서 투표 결과가 뒤집히기도 해요.  
 
선물 등으로 이래저래 고객당 들어가는 비용이 지역현장에 따라 다르지만 많을 때는 1000만원은 되는 것 같네요.    
 
짐작하겠지만 저희들 일 쉽지 않아요. 어쨌든 고객 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고 하는 일이에요. 남몰래 눈물 지을 때가 많죠.  
 
일의 성격상 정상적인 근무시간을 기대할 수 없죠. 기본적으로 매일 아침 회의를 해서 그날 할 일을 정하고 매일 밤 그날 하루 일과를 정리합니다. 수주전이 막판으로 갈 때는 밤 11시에 저녁 회의를 하기도 하고요.   
 
안정적인 일이 못돼요. 신분이 일용직 노동자예요. 용역회사에서 일당을 받죠. 어느 일 못지 않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점을 감안해 다른 일용직보다 많은 하루 15만~20만원 선입니다. 한달에 쉬지 않으면 600만원까지 벌죠. 꼬박꼬박 소득세 등으로 3.3%를 세금으로 냅니다.  

성과에 따른 개인별 인센티브 같은 건 없어요. 내가 맡은 고객이 우리 쪽에 표를 찍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죠. 개인별 인센티브를 거꾸로 악용하는 경우도 생길 거에요. 원래 우리 편인데 다른 편인 것처럼 했다가 나중에 우리쪽으로 넘어왔다는 식으로 말이죠.     
 
안정적이지 못한 일용직 근로자
  
자격조건이랄 게 없고 알음알음으로 서로 소개해 일해요. 
 
장기적으로 일하진 못해요. 수주전이 벌어지는 2~3개월 바짝 일하는거죠. '사전조'라고 해서 일찍부터 수주전을 준비하는 팀이 있어요. 장기 계약이다 보니 부럽죠, 사전조는 경력도 경력이지만 나름 준수한 외모와 친화력도 필요하죠. 사전조에 들어가면 1단계 승진한 걸로 인식돼요.   
  
말이 용역회사이지 사실상 팀 형식으로 움직이고 몇명에서 몇십명으로 이뤄져요. 수시로 없어졌다 생기곤 하죠. 전국적으로 수백 곳은 될테고 OS요원도 수천명은 될 겁니다. 
  
수주전에서 이기면 용역회사는 성과금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지면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하죠.  
 
이 바닥에서 ‘대마왕’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 있는 용역회사 대표가 있었어요. 몇년 전 수도권 재건축 수주전에서 패한 10대 건설사 중 한 업체로부터 인건비 이외 선물 비용 등 수십억원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빚에 쪼달려 도망다니고 하다가 결국 병으로 숨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문제가 되더라도 건설회사는 무사해요. 결국 용역회사 소속인 저희들이 하는 일이어서 건설사는 용역만 줬다고 하고 책임을 피하는거죠. 꼬리 자르기인 셈이죠. 저희가 대신 수주전 최전방에서 악역을 도맡으니까요.  
 
OS요원이 생긴 건 1990년대 말 강남권 재건축 수주전이 시작됐을 때라고 하네요. 처음엔 고객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보험설계사를 OS요원으로 활용했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저희 역사가 20년은 되네요. 20년간 제도가 많이 바뀌고 재건축 수주전이 많이 맑아졌다고 하지만 피부로 느끼기엔 큰 차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얘기가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며칠전 이번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한 GS건설의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을 함 보세요. 선언문 속 ‘선물제공’ ‘사회적 상식에 반하는 마케팅’ ‘현혹적인 조건’ ‘이면에서의 음성적인 조건제시’ 같은 말에서 저희 활동을 엿볼 수 있었요. 선언문에 등장하는 ‘홍보대행사’가 저희 회사이고 ‘홍보요원’이 저희입니다. 
 
저희 OS 요원의 두 손이 모두 깨끗해질 때 재건축 수주전도 투명해질 겁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자정 결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재건축 수주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만큼 혹시나 올 가을 국정감사 때 건설사 사장님들이 국감장에 불려나오지나 않을지 모르겠네요. (이 글은 재건축 수주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자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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