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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점제가 바꾼 부동산시장 풍속도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48·직장인)씨는 지난달 10여년간 장롱 속에 넣어둔 청약 통장을 꺼내 새 아파트에 청약했다.  
 
그는 원래 집값이 급등하던 2000년대 초반엔 사회 초년병으로 부동산에 큰 관심이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주택시장이 위축돼 집을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14년 이후 아파트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지만, 앞날이 불확실하다는 생각에 전셋집을 돌았다.
 
그가 이제야 새 아파트를 분양받겠다고 나선 것은 ‘알짜’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무주택자를 위한 분양시장 문이 열렸는데 가격과 입지여건이 좋은 단지를 계속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8·2 부동산대책으로 청약 문턱이 높아진 뒤 무주택자가 분양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주택자 당첨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가격 메리트가 좋은 물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 대출 제한 등 더욱 강화되는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가 무주택자의 청약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무주택자 물량 2배 이상 늘어
 
지난 9월 20일부터 서울 등 전국 40곳의 청약조정대상지역 주택에서 1순위 자격이 기존 통장 가입 기간 1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강화됐다. 서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기과열지구에선 무주택자 우선 공급 제도인 청약가점제가 85㎡(전용면적) 이하에서 100%(85㎡ 초과는 기존과 변동 없이 50%)로 확대됐다. 
 
여기다 1순위 자격이 강화되면서 1순위자가 크게 줄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청약종합저축 1순위자가 8월 말 309만명에서 9월 말 237만명으로 70여만명(23%) 줄었다. 1순위자 4명 중 한 명이 자격을 잃었다.  
 
그런데 1순위자가 줄고 유주택자의 문이 좁아졌는데도 청약경쟁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강동구 고덕지구 고덕3단지 재건축 단지인 고덕아르테온은 이달 초 10.5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인근 고덕 5단지를 새로 짓는 고덕센트럴아이파크가 지난 7월 기록한 경쟁률(23.6대 1)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청약자수는 별 차이 없다. 고덕센트럴아이파크가 1만2000여명, 고덕아르테온은 1만1000여명이다.
 
고덕센트럴아이파크는 가점제가 85㎡ 이하 40%에만 적용돼 유주택자가 상당히 청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고덕아르테온 청약자는 유주택자 당첨 가능성이 희박해 거의 다 무주택자였다. 무주택자 기준으로 보면 청약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이다.   

유주택자 청약 줄어도 경쟁률은 고공행진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에서도 무주택자의 청약열기가 뜨겁다. 8월 초 DMC에코자이 경쟁률이 19.8대 1이었고 지난달 래미안DMC루센티아는 별 차이 없는 15.1대 1 일반분양물량이 비슷해 청약자도 DMC에코자이에 조금 더 많았다. 역시 무주택자 경쟁률은 더 높아졌다.
 
은평구 내 같은 응암동의 재개발 단지들에서도 비슷하다. 지난 3월 백련산SK뷰아이파크는 5,6대 1이었는데 이달 초 브랜드 인지도가 조금 뒤처지는 백련산해모로가 7,5대 1로 더 높은 경쟁률을 나타냈다.

무주택자의 분양시장 ‘습격’은 앞서 8·2대책 이후부터 시작됐다. 서울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8월 3일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내는 단지부터 가점제가 확대되면서다.  
 
9월 분양돼 85㎡ 이하 75%, 초과 50% 적용을 받은 마포구 공덕동 공덕SK리더스뷰, 강남구 서초구 신반포센트럴자이,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강남포레스트 등이 이전에 분양된 단지들에 못지 않은 기록적인 경쟁률을 이었다.     
 

물량 늘어도 청약가점 커트라인 높아
 
가점제 물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당첨자 청약가점은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별 차이가 없다. 가점제 확대 전후에 분양된 가재울뉴타운 DMC에코자이와 래미안DMC루센티아의 당첨자 평균 청약가점이 각각  50~61점, 44~62점   
 
무주택자가 분양시장에 쏟아져 나온 데는 물론 가점제 확대가 계기가 됐다. 그런데 가점제 물량이 많지 않은 이전에도 점수가 괜찮으면 충분히 당첨될 수 있었다.
 
최근 급증한 무주택자 청약자 중에는 이전에 얼마든지 당첨될 수 있는 고점자도 많다. 그러니 문이 넓어졌는데도 커트라인이 뚜렷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무주택자가 새 아파트 ‘사냥’에 나선 다른 이유는 뭘까. 

DSR 시행되면 대출 한도 크게 줄어
 
내년 이후 강화되는 대출 규제가 청약을 서두르게 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기존 DTI(총부채상환비율)가 더 깐깐해지는 데다 이후 DSR(총체적상환능력심사)이 도입된다. 이는 주택담보대출 이외 부채도 이자 뿐 아니라 원금을 합쳐 대출 한도를 산정한다. 다른 부채가 없다면 상관 없지만 신용 대출 등이 있으면 주택대출 금액이 많이 줄어든다.  
 
지난해 기준으로 가계 평균 부채가 6600여만원이다. 연소득 5000만원 무주택자가 신용 대출 등 다른 부채 3000만원을 지고 있는 경우 서울에서 기존 DTI 50%를 적용하면 3억4000만원까지 대출 받을 수 있다. 무주택자 서울 LTV(담보인정비율)가 50%이므로 분양가 6억8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DSR로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는 2억8000만원 선이다. 6000만원이 줄어든다. 분양가로는 1억2000만원 내려간다. 주택 크기로 보면 분양받을 수 있는 집이 20㎡가량 작아진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경우 입주 때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면서 대출받는 잔금대출에 DSR이 적용된다. DSR 시행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발표하는 단지부터 해당될 예정이어서 다른 대출이 있다면 그 이전에 분양받는 게 낫다.   
 
인기 높은 재건축·재개발 분양 많아
 
대출 규제를 앞두고 마음은 바쁜데 요즘 인기 지역 ‘알짜’ 아파트가 쏟아지고 있다. 주택건설업체와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규제를 피해 분양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분양된 물량이 4만여 가구로 올해 말까지 예정된 물량을 포함하면 2000년 이후 최대인 5만7000여 가구에 달한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내년 부활하는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려는 재건축 물량과 집값 상승세를 타고 사업 속도가 빨라진 강북 뉴타운 재개발 단지 물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이 분양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각종 규제가 본격화하는 내년 이후 분양물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2~3년간 집값 상승기에 무주택자가 소외된 데 따른 반발심리도 무주택자를 자극한다. 서울 집값이 꽤 오른 2015년 이후 기존 주택 시장에 유주택자가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시세 차익을 노린 ‘갭투자’ 등으로 주택을 많이 구입했다. 2010년대 초반 40%에 미치지 못하던 유주택자 주택구입 비율이 50% 가까이 높아졌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 기존 집보다 저렴
 
신규 분양 아파트는 전매제한 강화로 입주 때까지 팔 수 없는데 3년 뒤 주택시장을 낙관할 수 있을까. 분양가가 저렴해 가격 하락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게 무주택자들의 판단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을 통해 분양가 상승을 압박하고 있고 업체들도 초기 계약률을 높이기 위해 분양가 인상을 자제하고 있다. 9월 서울 아파트 분양가가 3.3㎡당 1968만원으로 기존 아파트 시세(2108만원)보다 싸다. 최근 1년 새 기존 아파트 값은 5.3% 올랐는데 같은 기간 분양가는 3.6% 상승했다.   
 
이달 초 청약접수한 강동구 고덕지구 로덕아르테온 분양가가 3.3㎡당 2346만원으로 1년 전 나온 인근 고덕 그라시움(2338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 이 기간 강동구 아파트값은 6% 올랐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새 아파트 분양가가 기존 시세 이하일 경우 새 아파트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10%가량 저렴한 셈"이라며 "향후 주택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기존 주택보다 신규 분양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20~30대·유주택자 설 자리 없어
 
분양시장에서 무주택자가 득세하면서 밀려나는 층이 생겼다. 청약시장에 청약가점이 높은 무주택자가 대거 들어오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 20~30대 무주택자의 당첨 기회가 거의 사라졌다. 이들은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짧고 부양가족 수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가재울뉴타운 DMC에코자이의 당첨자 중 20~30대가 53%로 40대(26%)를 제치고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2개월 뒤 가점제가 100%까지 확대된 래미안DMC루센티아에선 40대가 51%로 2배가 됐고 20~30대 비율은 28%로 뚝 떨어졌다. 지난달 청약접수한 영등포구 영등포뉴타운 꿈에그린에서도 당첨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47%)로 절반에 가까웠다.  
 
분양대행사인 미드미D&C 이월무 대표는 "가점제로 어지간한 단지에 당첨되려면 40점대는 돼야 하는데 무주택기간이 10년이 못 되는 20~30대는 당첨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점제 문턱을 넘기 어려운 20~30대 가운데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가점제보다 유리한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전략을 바꾸고 있다. 특별공급에서 탈락하더라도 일반공급에서 한번 더 당첨기회가 주어진다. 이전에는 미달이 속출했던 신혼부부 특별공급 경쟁률이 높아져 고덕아르테온은 1.91대 1   
 
유주택자도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이들은 가점제에서 제외되는 유주택자는 85㎡ 초과 중대형의 문을 더 두드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50%가 추첨제여서 기회가 없는 85㎡ 이하 중소형보다 당첨을 기대해볼 수 있어서다.  
 
서울에서 10월 이후 분양된 아파트 중 85㎡ 이하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이 9.2대 1이었는데 85㎡ 초과가 7.9대 1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전에는 중대형 경쟁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중대형 가운데 특히 중소형과 집 크기와 분양가가 별로 차이 나지 않는 전용 100㎡ 전후에 주택 수요자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청약 규제 대출 제한 등으로 청약 ‘함수’가 매우 복잡해졌다"며 "당첨간능성 자금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분양시장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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