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당 20억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재건축 기다리는 도곡 삼호아파트와 갈등

허지윤 기자 2017. 2. 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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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는 주민과 학생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곡중학교 땅굴 주차장 건설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강남세브란스 사거리 앞. 강남세브란스병원과 도곡삼호아파트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허지윤 기자

2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 사거리 앞.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건물과 마주하는 삼호아파트 주변 곳곳에 이같은 문구가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1983년 개원한 강남세브란스병원과 1984년 준공된 삼호아파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1세대 당 20억원씩 주고 삼호아파트를 매입하라”...난감한 의료원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공간이다. 수차례 리모델링과 증축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고 있으나 33년 전의 시설은 한계에 이르렀다.

하루 외래환자 수가 최대 4000명대에 달하는 등 환자 유입이 늘면서 병실과 주차장 등 공간이 크게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연세의료원 측은 십여년 전부터 병원 옆 삼호아파트를 매입해 공간을 확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추진해왔지만 주민들과 타협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의료원은 삼호아파트 일부 세대(17세대)와 인근 도곡중학교 사이의 토지를 사고 도곡중 운동장 지하 개발권을 확보해 공간난을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교육청과도 합의를 마쳐 교육청은 2016년 1월 ‘도곡중 토지 매각 추진계획’을 공고했다. 의료원이 병원과 학교 사이에 있는 당시 시가 45억원 상당의 부지 1917m²를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매입하고, 도곡중 운동장에 210억원 규모의 복합시설을 짓는 게 핵심골자다.

의료원은 지하 4층 지상 3층 규모의 복합시설을 짓고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체육관과 도서실 등으로, 지하 2~4층은 병원 주차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도곡중학교 측도 찬성하고 서울시의회도 ‘병원이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사업을 진행하라’는 조건부 승인을 내리면서 병원의 계획은 잘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삼호아파트 주민들이 이에 제동을 걸었고, 현재 주민협의체가 구성되지 못한 채 사업이 답보 상태다.

병원이 도곡 삼호아파트로부터 최근 받은 공문 자료/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삼호아파트 주민들은 “의료원이 도곡중학교 운동장 복합시설을 설립하는 대신 삼호아파트 127세대를 세대당 20억원(평당 9320만원)에 매입해달라”고 제안했다.

연세의료원은 부지 확보를 위해 삼호아파트의 17세대를 매입한 상황이었는데, 삼호아파트 주민들이 나머지 127세대도 매입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병원 측은 “현재 시세가 11억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는 입장이다.

김학선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남사업본부장(정형외과 교수)은 “아파트 측 제안에 대해 법무법인으로부터 법률자문도 받았다”면서 “시세의 2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매입하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으로 과도한 시세 이상의 가격으로 매입하는 행위는 배임,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또 매입을 통한 방식은 속칭 ‘알박기’ 가능성이 있어서 100% 동의를 전제로 해야하는데, 전 세대 동의를 모두 다 받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검토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내부에서는 수서, 용인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교육청과 도곡중이 받아들인 계획이 삼호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로 지연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원 내 한 행정직원은 “그동안 병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주민들의 요구는 다 들어줬다고 본다. 방음벽을 세우고 보도블럭을 설치하고 심지어 병원 후문 개방 시간 통제까지 받아들였다. 주민들이 병원 로비를 점거하는 일도 있었지만 문제삼지 않았다”며 “병원이 철저한 을”이라고 토로했다.

◆“공사로 인한 주민 피해…토지 가격 최소 17억원”

도곡 삼호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은 완강하다.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거주민으로서의 보장받아야할 권리라는 주장이다.

1984년 준공된 도곡삼호아파트는 강남구 도곡동 540일대 1만500㎡에 자리한 소규모 단지로, 전용면적 127㎡ 2개동 144세대로 구성됐다. 재건축 사업이 추진됐으나 서울시 도시게획위원회 심의에서 보류 결정이 난 상태다.

임종대 도곡삼호아파트 주민대표회의 회장은 “외부에서는 병원이 도곡중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마치 삼호아파트가 반대하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삼호아파트 입구. 곳곳에 병원 사업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허지윤 기자

그는 “도곡중 지하 공사를 하게 되면 트럭 약 2000대 분량의 흙을 반출해야한다. 공사가 진행되면 아파트에 큰 울림이 예상되고 이는 곧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거주자라면 누구라도 이 공사에 찬성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세대 당 20억원’은 주민 설문조사 결과를 병원 측에 통보한 것일 뿐, 공식적인 매각 조건이 아니라는 반박도 이어졌다.

임 회장은 “우리가 가격을 20억원으로 제시한게 아니라 설문조사결과 2세대를 제외하고 99%가 동의했다는 결과를 알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병원 측이 만약에 아파트를 매입한다고 하면, 아파트 건물이 아닌 토지를 사는 것이 명약관화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임 회장은 “삼호아파트의 세대 당 토지 지원율은 21.45평 규모로 평당 최소 8000만원으로 잡아도 17억원 정도다. 작년에 삼호아파트 앞 도곡로 건너편 건물이 시세 7800만원에 팔렸다”면서 “최소 17억원은 받아야 맞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삼호아파트 부지 매입 없이 공간 확보 계획을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임 회장은 “강남세브란스병원 들어가는 쪽으로 자동차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병원이 강남이라는 위치를 고수하면서 공간을 늘리려면 이러한 맹지(盲地)를 탈출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며 “삼호아파트 부지를 사지 않는 이상 100% 맹지 탈출 못 한다”고 말했다.

병원과의 분쟁으로 주민 역시 힘들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임 회장은 “우리가 병원이 아파트 부지를 매입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민들은 아파트 재건축 승인을 기다리면 된다”며 “갈등으로 주민들도 힘들다. 차라리 병원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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