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4500만원 지원 '장기안심주택'..알고보니 '그림의 떡'

김기덕 2017. 3.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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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이상 가구, 전셋값 3억3000만원 이하' 조건
서울 평균 전세가 3억5000만원..시세 반영 못 해
"지원대상 주택 늘리는 등 제도 손 봐야"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양익준(가명)씨는 7월로 다가온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얼마 전 집주인이 전셋값을 600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했지만 수중에 모아둔 돈은 없고 주변 시세도 너무 많이 올라 직장에서 먼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돈을 구할 방도를 찾던 중 서울시에서 6년간 무이자로 전세보증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둘러 신청을 했지만 기대는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지원 대상인 주택 전세보증금 한도 및 개인소득 기준이 너무 낮아 아예 대상자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주거 취약층에게 전세금을 최대 4500만원까지 무이자로 빌려주는 장기안심주택 제도가 유명무실한 지원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해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을 반영하지 못한 대출 기준으로 지원 대상 주택이 크게 줄면서 입주자로 선정되기는 말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전세금 지원 1차 입주 대상자에 선정되더라도 주택 계약 시점, 집주인 동의 등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세입자에 지원 기준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세 반영 못한 요지부동 전세값 기준

장기안심주택은 서울시가 2012년 도입한 주택사업으로, 전·월세 보증금의 30%를 최대 4500만원까지 최장 6년간 무이자로 지원하는 제도다. 보증금 한도는 1인 가구는 순수전세의 전세금이나 보증부월세의 기본보증금과 전세전환보증금 합이 2억2000만원 이하, 2인 이상의 가구 최대 3억3000만원 이하의 주택이다. 보증부월세의 경우 월세금액 한도는 최대 50만원까지다. 대상 주택의 전용면적은 1인 가구는 60㎡ 이하, 2인 이상 가구는 85㎡ 이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서울지역 전셋값이 크게 오르면서 대출 지원 한도 안에 드는 주택 물량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값(전셋값 순서대로 아파트를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2014년 1월 2억7850만원에서 2016년 1월 3억4990만원으로 2년 새 7140만원(25.6%)이나 상승했다. 올 2월 현재는 3억5920만원으로 1년여 만에 1000만원 가량 더 올랐다. 전셋값이 3년 새 29%나 급등한 셈이다.

전세금 지원 대상 소득과 자산 자격도 논란거리다. 4인 가구가 전세안심주택 제도를 이용하려면 월평균 소득이 394만1192원(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이 70%) 이하여야 한다. 만약 맞벌이 부부가 월 평균 각각 200만원씩의 소득이 있다면 지원 자격에서 제외한다. 소유 부동산은 1억9400만원 이하, 자동차는 현재 가치 2522만원 이하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기안심주택을 통한 지원 자금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전체 전셋값에 비해서는 얼마 되지 않는게 사실”이라며 “최대 지원금액(4500만원)은 제도 시행된 이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고 추후 변경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신청해도 통과율 20% 밑돌아…제도 수정 불가피

서울시의 전세금 지원 대상자에 대한 깐깐한 심사 때문에 탈락자도 속출하고 있다. 지원 대상 자격을 갖췄다고 해도 입주자 공고일 이후 계약일까지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지 못하거나 집주인의 반대로 계약이 물거품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2014년 장기안심주택 신청자 5559명 중 최종 대상자로 선정된 자는 1026명으로 통과율이 18%에 그쳤다. 2015년과 지난해 통과율도 각각 17%(7041명 중 1163명), 14%(3731명 중 519명)로 저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1차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서울시가 전·월세보증금 채권 확보를 위해 신용보험이 가능한 주택을 선별하며, 해당 주택에 대한 차입보증금 등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임대인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올해 공급하기로 한 장기안심주택 목표 물량은 1500가구다. 이미 지난 1월 중 1차로 500가구를 모집해 768명의 신청자를 받았다. 지난 13일부터 접수를 받고 있는 2차 모집은 지난 27일 현재 513명이 신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월 모집한 신청자 중 소득·자산·무주택 여부 등을 따져 515명의 대상자를 선정했다”며 “이들을 대상으로 입주 대상 주택 선정, 권리분석 심사, 임대계약을 통해 오는 6월 말까지 최종 입주 대상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급 목표에 비해 전세 지원 수혜자가 크게 미달되는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은 제도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며 “전세보증금 지원 대상 주택을 크게 늘리거나 임대인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등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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