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과연 '위장 전입'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최봉진 입력 2017. 5. 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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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 되돌아 보라

[오마이뉴스 글:최봉진, 편집:김도균]

▲ 선서하는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지난 26일 무산됐다. 국회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첫 번째 고위공직자였던 이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림으로써 향후 내각 구성에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가 이 후보자의 위장 전입 사실을 집중 부각시켰기 때문에, 이미 위장 전입 사실이 드러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역시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다.

애초 이번 청문회는 국정 운영에 대한 후보자의 철학과 가치관, 정책검증 등에 대한 질의가 중심에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도덕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과거의 모습이 재연됐다는 평가다. 신상털기식 인신공격과 흠집 내기가 청문회 내내 반복됐고, 급기야 부인 그림 강매 의혹을 추궁당하는 장면에선 이 후보자의 입에서 "인생이 싸그리 짓밟히는 느낌"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 5대 비리(병역면탈·부동산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에 연루된 인사는 원칙적으로 공직에 배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첫 인사부터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문제와 부인의 위장 전입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조기 진화에 나선 것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논란이 자칫 정치공방으로 확대되면 이 후보자는 물론이고 후속 인선까지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조기 수습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애초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심각한 결격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조기 내각 구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막상 청문회가 시작되자 야당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이 후보자가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5대 비리 공직 배제의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사과 직후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5대 비리 관련자라도 자질과 능력이 있는 경우 임명을 감행하겠다는 것은 한 마디로 정권 입맛에 맞춘 고무줄 잣대로 인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꼼수"라며 "인사 발표는 대통령이 직접 하고 변명은 비서실장을 앞세워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오신환 바른정당 대변인 역시 "국민들은 자신의 인사 원칙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통령 입을 통해 듣고 싶어 한다"고 포문을 연 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인사 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향후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소상히 밝히는 게 도리"라고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대통령 사과 요구할 자격 있나?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5대 비리 공직 배제 원칙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청와대는 논란의 본질을 직시하고 보다 엄중한 인사검증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인사를 선보여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당과 바른정당에게 이 후보자에 대한 청문 보고서의 채택을 불발시키고,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비난할 처지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02년 장상·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목을 잡은 것이 바로 '위장 전입'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두 후보자의 위장 전입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낙마시켰다. 그러나 여당이 되자 그들의 태도는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위장 전입은 고위공직에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요건이 돼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위장 전입 경험이 있는 정홍원 후보자를 초대 국무총리에 임명했으며, 위장 전입 문제를 다루는 주무 부처의 장관까지도 위장 전입 전력이 있는 인사로 채워넣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위장 전입 경력이 있는 국무위원,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의 숫자만 해도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랬던 그들이 야당이 되자 또다시 태도가 돌변했다.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위장 전입이 이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결격 사유로 탈바꿈했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위장 전입 보다 더한 문제가 드러난 고위공직 후보자들까지도 옹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강부자' 내각,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에 주·조연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인사들이 당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인사 검증에 필요한 물리적 여건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인사 검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두 전임 정부의 내각 인사는 '망사'에 가까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5대 비리 공직 배제 원칙을 적용시킨다면 전임 정부들에서 청문회를 거친 고위공직자의 태반이 임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대선 다음 날 곧바로 임기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이 부족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고무줄 잣대', '정치적 꼼수' 거둬라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인사 검증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비판이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면 적어도 그들에게 동일한 인사 원칙과 기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의 인사 검증 기준이 극과 극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그들이 고위공직자의 검증 기준을 대단히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영락없는 '고무줄 잣대'이자, '정치적 꼼수'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관행처럼 행해지던 위장 전입을 고위공직자가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중요한 결격 사유로 만든 당사자들이 바로 한국당과 바른정당이었다. 그런가 하면 위장 전입이 더 이상 고위 공직의 결격 사유에 안 되도록 되돌린 장본인 역시 그들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인사 비판이 '발목잡기'처럼 비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의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가 떳떳해야 한다.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엿장수 마음대로 입장과 태도가 바뀌어서는 절대로 공감을 받을 수 없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비판도 그에 걸맞은 '체신'과 '격'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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