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희연 "군대·감옥 같은 학교공간..놀이터부터 혁신할 것"

2017. 6. 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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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놀이터 재구성위' 꾸려
상상력 살리는 공간으로 바꾸기로
단설유치원 1~2곳서 실험뒤 확대
놀이터 전문가 벨치히·편해문 제안
"운동장 구석구석 작은 공간 마련
관심 있는 곳서 자유롭게 놀아야"
"건강한 위험 배우는 놀이터 돼야"

[한겨레]

17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열린 ‘놀이터를 바꿔야 학교가 바뀐다’ 집담회에서 조희연(오른쪽에서 둘째) 서울시교육감과 귄터 벨치히(맨 오른쪽)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오른쪽에서 셋째) 놀이터 디자이너, 안영신(맨 왼쪽) 즐거운 교육상상 공동대표, 한희정(왼쪽에서 둘째) 정릉초 교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과거 권위주의적 공간 모델에 기초한 학교 공간을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놀이터 재구성 위원회’를 만들어 유치원·학교 놀이터 혁신에 나선다.

“현재의 학교 공간 모델은 군대나 감옥 모델과 같습니다. 연병장 같은 운동장이 대표적이죠. 놀이터 역시 놀이기구가 중심이지 아이들 중심이 아닙니다. 놀이터를 바꿔야 학교가 바뀐다는 생각으로 공공 유치원 및 학교 놀이터 혁신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조 교육감은 17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놀이터를 바꿔야 학교가 바뀐다’는 주제로 집담회를 열어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와 놀이 운동가이자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씨, 교사와 학부모 대표를 초청해 학교 놀이 시간과 놀이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이렇게 밝혔다.

집단지성 모아 실험 나서

조희연 교육감은 “2015년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놀이헌장을 만들어 아이들의 권리로서 놀이를 선포했다. 놀 터와 놀 시간을 부여하는 것을 어른의 책임으로 규정했다”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모아 학교 공간 혁신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우선 넓은 공간을 확보한 단설 유치원 한두 곳에서 놀이터 혁신 작업을 실험적으로 해볼 계획이다. 기구를 최소화하고 자연 친화적이고 놀이 친화적인 놀이터를 만들되,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점차 다른 곳까지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놀이터 재구성 위원회’를 열어 학교 시설의 안전 기준을 재검토하고, 유치원과 학교 놀이터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도 모을 예정이다.

또한 조 교육감은 최근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인 탓에 아이들의 바깥 놀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해 새로 건립되는 학교 체육관은 공공형 실내놀이터 개념을 결합한 공간으로 건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공형 실내 놀이터는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가 최초로 제안한 개념으로, 현재 경기도 시흥시에서 보건소·시민·전문가가 결합해 공공형 실내 놀이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가운데)가 17일 한국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를 둘러본 뒤 어떤 방향으로 바꾸면 좋을지 의견을 말하고 있다.

안전이라는 이유로 옭아매

이날 집담회에서는 학교 안에서 안전사고가 날 경우 교사에게 사고 책임을 지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강하게 제기됐다. 한희정 정릉초 교사는 “예전에 일한 학교에서 한 아이가 학교에서 미끄럼틀을 앞으로 타다가 얼굴이 긁혀 사고 처리를 한 적이 있다. 다음날 가보니 교장과 교감이 학부모 민원이 발생할까봐 빨간 테이프로 미끄럼틀을 칭칭 감아놓았더라”며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선생님이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보장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학부모 대표로 나선 안영신 즐거운 교육상상 공동대표도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놀이터뿐 아니라 옆 반 교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복도 통행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는 안전 책임을 교장과 교사에게 책임지우는 구조가 교사를 감시자로 만들고, 이것이 결국 아이들의 자기결정권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서로 다른 학년끼리 어울려 놀면 학교 폭력이 발생할까봐 학교 운동장을 학년별로 정해 사용하는 한 학교의 사례가 공유되면서 모두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귄터 벨치히는 “아이들끼리 모이면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 생각일 뿐”이라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욕구를 어디에다 풀 수 없어 그런 일(학교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한 놀이터가 가장 위험

40여년 동안 놀이터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온 벨치히는 선진국의 놀이터 연구 사례를 공유하며 한국에서 더 나은 학교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놀이터 안전 기준을 1977년부터 만들었다. 그 이후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사한 결과, 안전한 놀이터가 가장 위험한 놀이터라고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안전한 놀이터에서는 호기심 유발이 안 돼 아이들이 딴짓을 하다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씨도 ‘건강한 위험’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안전 신화에만 빠져 아이들의 자유와 놀 권리, 위험을 다루는 능력을 뺏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편씨는 “아이들은 항상 위험 요소에 노출된다. 학교에서 깨진 병 조각처럼 ‘해로운 위험’(hazard)은 제거해야 하는 게 맞지만, 아이가 스스로 정성을 들이면 다룰 수 있는 위험(risk)은 제공해야 아이가 비로소 위험을 스스로 다룰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터야말로 그런 ‘건강한 위험’을 배울 수 있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안전 책임지는 제3기구를

벨치히는 한국의 초등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를 둘러본 뒤 어떤 방향으로 바꾸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가보니 운동장이 감옥의 운동장 같았다. 또 교사가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며 지켜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학교 운동장을 작은 덩어리들이 구석구석에 있는 곳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크고 넓은 광장에서 학생들이 학급·나이·성별로 노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심에 따라 아이들끼리 작은 공간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교사나 교장이 아닌 제3의 기구를 만들 것을 권했다. 독일의 경우, 지역별로 안전담당자를 둬서 학교·병원·어린이집 등 모든 놀이터의 안전 문제를 책임지도록 한다. 안전책임 담당자는 1년에 1~3번 정도 점검을 하고, 문제가 있으면 교장에게 고치라고 말한다. 안 고칠 경우 학교 교장의 책임이지만, 고친 경우는 교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안전에 대한 교사와 교장의 부담을 제3의 독립기구에서 덜어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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