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건물을 4억에 내놓으라니" 용인시의 황당 행정

이민우 기자 입력 2017. 6. 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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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미루더니 감정평가액 '싹둑'..市 "적법한 절차"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장장출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카페 건물을 헐값에 빼앗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카페 인근의 도로가 확장되면서 카페 건물과 주차장 대부분이 보상 수용될 예정이다. 문제는 감정평가액이었다. 장씨는 대형 통나무로 이뤄진 카페 건물을 짓는 데 수입산 원목 가격 15억원을 포함해 총 20억원을 썼다. 1989년 당시 통나무 건축 기술이 없어 해외 기술자들까지 고용했다. 그런데 최근 용인시는 이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를 통해 4억4600만원의 보상액을 제시했다.

물론 도로를 개설하거나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상액을 둘러싼 마찰음은 적지 않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으려는 토지주와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보상·수용 절차를 진행하는 행정기관의 대립이다. 하지만 장씨의 사례는 조금 달랐다. 그동안 장씨의 카페를 둘러싼 용인시와의 갈등은 숨겨진 내막이 있었다. 용인시마저도 장씨가 “억울할 수 있다”는 측면을 인정할 정도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용인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토지 보상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후 40% 이상 평가액이 삭감된 감정평가 결과(아래)를 토지주에게 제시했다. © 시사저널 이민우·연합뉴스

 

“토지 무단 점용에 행정보복까지 당했다”

장씨의 카페는 고기동계곡 진입로에 위치해 있다. 분당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도심 속 자연휴양림이다. 장씨는 1989년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 수목이 우거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장씨 소유의 땅(아내 명의)에는 작은 오솔길이 지났지만, 오히려 카페를 운영하기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땅을 관통하던 작은 오솔길에는 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급기야 차 두 대가 왕복할 수 있는 넓은 도로로 변했다. 하지만 장씨는 마을 사람들과 휴양객들이 오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도로가 확장된다기에 특별히 이의를 신청하지는 않았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장씨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 시점은 2013년이었다. 인근의 토지 주인들이 용인시로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장씨에게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도시계획시설(도로)로 묶여 아무런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만든 지 1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장씨가 도로 일부를 차단하며 항의하자 용인시는 부랴부랴 감정을 진행하더니 “최우선적으로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용인시는 예산이 부족하다며 땅 일부만 먼저 수용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급기야 장씨는 보상을 요구하며 장씨 소유의 토지를 지나는 도로 일부를 차단하겠다고 안내판을 설치했다. 차량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통로만 남겨놓고 시설물을 설치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갑자기 수지구청에서 장씨 카페에 불법건축물 조사를 나왔다. 30분 뒤에는 위생 검열이 나와 15일 영업정지를 받았다. 장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공무원은 장씨의 항의에 “시랑 관계 좀 잘 풀어보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카페 마당 일부 토지(임야)만 먼저 보상받는 요구를 받아들이자 영업정지 처분은 없던 것으로 결정 났다. 장씨는 “공무원들이 힘을 이용해 압력을 행사하려는 명백한 행정보복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카페 마당과 주차장 일부의 토지를 수용한 뒤 다시 보상 이야기는 사라졌다. 용인시청은 장씨 소유의 카페 건물을 포함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도로 계획을 약간 변경했다. 20여 년간 개발을 막아놓더니 갑자기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인근 도로 모양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결국 용인시는 도로 계획을 원래대로 장씨 소유의 카페 건물을 지나는 방식으로 되돌렸다. 장씨는 “당시 변경된 계획 또한 카페 주차장 등을 지나는 도로였다”며 “20여 년 동안 개발을 막더니 중간에 통보도 없이 몰래 도로 계획을 변경하려는 용인시청의 행위에 정말 화가 났다”고 호소했다.

원래 계획대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감정평가액이 문제였다. 2013년 당시 용인시 측에선 장씨 소유의 카페 건물 감정평가액으로 7억5800만원 정도를 제시했다. 그런데 도로 계획이 수정됐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시간이 흘러 재평가를 받게 됐다. 그런데 2017년 재평가에서 4억4600만원의 감정평가액이 나왔다. 20억원을 들여 지은 건물을 뺏기는 것도 억울한데 3년 만에 감정평가액이 40% 이상 줄어버린 셈이다.

장씨는 “2013년부터 시청과 싸우면서 제대로 찍힌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예산이 없다고 차일피일 보상을 미루더니 도로 계획을 몰래 변경해 보상을 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썼다”며 “도로 안전 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보상해야 하자 관련 규정을 이유로 재평가를 실시한 뒤 감정평가액마저 반 토막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용인시 “억울할 수 있지만 법대로”

용인시청도 장씨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용인시청 관계자는 20년 넘도록 장씨 아내 명의의 토지가 도로로 쓰인 데 대해 “법적으로 보상 근거가 없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도로 계획이 중간에 변경된 데 대해선 “최초 왕복 4차로 도로로 설계했다가 연계도로 등의 폭을 고려해 왕복 2차로로 수정한 것”이라며 “다만 (장씨 카페 부지가 위치한) 삼거리에서 폭이 줄면 교통 영향이 커서 폭을 12미터로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감정평가가 다시 이뤄진 데 대해 “2013년 감정 이후 토지주와 보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합의를 하지 못하고 1년이 지나면 관련법에 따라 재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감정평가사들도 이미 평가가 한 차례 이뤄진 데다 토지주와 의견 차이가 커 부담을 안고 있었던 사항으로 알고 있다”며 “공무원이 감정평가액에 대해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감정평가액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경기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로 넘겨 수용 재결 신청을 하면 감정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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