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만 있으면 집 산다"..수요자들 갭투자에 솔깃

박민 기자 입력 2017. 6. 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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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박민 기자]#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김모(37)씨는 최근 5000만원의 여유 자금만 있으면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서울 지역의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gap)투자를 하면 적은 자본으로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가 주택시장 과열 양상을 막기 위해 전매제한 등의 안정화 대책을 내놨지만 보유세 인상 등 다주택자 중과세에 대한 규제책은 없는 만큼 지금이 매수에 나설 타이밍인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업소.(자료사진)ⓒ데일리안

최근 서울지역에서 국지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요인 중에 하나로 꼽히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일명 갭투자(gap)가 성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1·3대책을 통해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에 나서면서 이와 비슷한 투자 규모액인 갭투자로 투자수요가 옮겨가는 분위기다.

특히 정부는 최근 시장의 이상 과열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지난 6·19대책에서 추가 전매제한과 대출규제를 더욱 강화했지만, 다주택자 중과세 등의 보유세 규제책은 없었다. 이에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차이가 거의 차이 없는 지역을 대상으로 갭투자가 여전히 성행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8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5월 기준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주택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73%다. 강북의 경우 77.3%, 강남은 69.4%다. 이중 성북구 83.2%, 동대문구 81.2%, 구로구 80.4%, 중랑구 79.8%, 서대문구 79.6% 등의 순으로 높은 상황이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는 오히려 전세가율이 더 높다. 전체 평균은 78.0%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가 83.7%로 가장 높고, 이어 수원시 장안구도 82%에 달한다.

이처럼 높은 전세가율 탓에 갭(gap)투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갭투자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이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투자방식을 말한다. 전세 보증금을 지렛대 삼는 전형적인 ‘레버리지(leverage) 투자’로 대출규제 영향을 적게 받는다.

예컨대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지역에서 만약 아파트 값이 4억원일 경우 전세가격은 3억2000만원이다. 이에 8000만원만 투자하면 집을 살 수 있는 구조다. 매수자는 집값이 4억원보다 오르면 팔거나 더 비싼 전세가격으로 새 임대인을 구한 후 기존 세임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면 된다.

이처럼 적은 자본으로 집을 사는 갭투자는 실제 서울 여러곳에서 가능하다. 한국감정원 시세를 보면 성북구의 경우 '길음래미안1차' 전용면적 59㎡형의 매매값은 3억9000만원이다. 반면 전세값은 3억5000만원 정도로 약 4000만원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본인의 돈이 거의 들지 않고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국지적인 과열 양상의 한 요인으로 갭투자(gap)가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기목적으로 집을 매수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집값이 이상 과열되고, 전세가격 역시 상승할 우려가 커서다. 이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보유세를 올리거나 다주택자에게 중과세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조세 체제 개편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23일 취임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강남4구 다주택자 투기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지만, 정작 이를 억제할 가장 강력한 무기로 꼽히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관계자는 "조세정의과 공평과세를 실현한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라면서 "다만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조세 정의를 실현하고, 부의 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조세 체제 개편에 대해서는 중장기적 과제로 보고 앞으로 논의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조세 개편에 고심하는 사이 갭투자가 여전히 극성을 부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집값을 잡기 위해 LTV·DTI 등 대출규제를 강화해도 갭투자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팀장은 "갭투자는 기본적으로 은행 대출이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만큼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으로 여전히 성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동대문구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6·19대책 발표 이후에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면 얼마가 필요하냐는 문의는 여전하다"면서 "주택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전세를 찾는 수요가 여전히 많은 만큼 이를 이용한 갭투자 추가 매수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자료사진)ⓒ연합뉴스

다만 올 하반기에는 주택시장 하향이 전망되고 시장금리 상승도 앞두고 있어 갭투자로 인한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수도권 입주물량이 대거 쏟아질 예정이고, 오는 8월에는 추가 금융대책도 나오면서 주택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갭투자는 주택 시세와 전세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맹신속에 이뤄지는 일종의 투기행위"라면서 "만약 시장 여건이 악화돼 매매가와 전세가가 하락할 경우 유동자금 없이 갭투자에 뛰든 투자자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입주물량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면 이른바 깡통전세가 될 위험도 있다. 이때 투자자로서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까지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또한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심 교수는 "지금처럼 대출이 강화된 상태에서 집값이 내려가지 않는다면 갭투자족들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면서 "다만 갑작스런 시장 위축으로 매매각격이 하락해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 법적 분쟁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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