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이상열기 대구·부산, "물딱지는 얼마인가요?"

김인오 입력 2017. 7. 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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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투기 수요 따라다니는 부동산 시장 용어 '물딱지'의 세계
-2000년대 서울 지분쪼개기부터 세종시 공무원 솜방망이 처벌논란 이어 수천만원 부산 웃돈까지

지난해 11·3대책에 따라 청약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지만 분양권 전매제한을 받지 않는 `e편한세상오션테라스`는 지난 14일 견본주택을 열던 당시 주말 사흘간 3만8000명이 몰렸다. 18일 특별공급 당시에는 새벽 5시 40분부터 신청자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사진 제공=삼호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네요. 물딱지는 얼마나 할까요?" 정부의 허술한 규제 속에 청약 이상열기가 계속되고 있는 부산·대구 시장에서는 투자자들끼리 흔하게 주고받는 말이 있다. 20일 부산 수영구 'e편한세상오션테라스'(일반모집 718가구)는 올 들어 전국 최다 청약자인 16만3787명의 1순위 통장이 한데 몰리면서 평균 경쟁률 228.1대1이라는 기록을 냈다. 3월 1순위 청약 당시 228.3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올해 전국 최고 평균경쟁률 기록을 유지 중인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 연지 꿈에그린'(청약자 10만9805명)에 비하면 경쟁률이 살짝 낮지만 청약자는 더 몰린 셈이다. 앞서 6일 분양한 대구 남구 '앞산태왕아너스'(일반모집 256가구)역시 125.9대1의 세 자릿수 경쟁률을 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첨이 로또'라는 말이 돌고 사람들은 '초피'와 '물딱지(혹은 물딱)'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분양권 웃돈을 형성하는 초기 지표이기도 한 이 들 중 물딱지는 투기 과열 양상을 보이는 곳에서 등장한다. 다른 지역 부동산 시장에서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락내리락하기는 했지만 지난해 말 11·3부동산안정화 대책에 이은 올해 6·19대책이 나오면서 요즘은 부산·대구 시장에서 주로 쓰이는 모양이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e편한세상 오션테라스의 경우 물딱지의 웃돈이 5000만원 선이었다가 사흘이 채 안된 21일 현재 7000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대구와 부산 일대 분양권은 규제를 피하는 인기 단지를 중심으로 대구는 8000만~1억원가량, 부산은 1억~2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이마저도 다운계약이 성행한다는 것이 인근 공인중개업계의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가 규제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놓은 탓이다. 대구의 경우 11·3, 6·19규제에서 비켜갔고 부산은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이른바 11·3대책과 올해 6·19대책 등을 통해 분양시장 규제에 나섰지만 민간분양의 경우 현재로서는 주택법 개정안이 시행되지 않아 분양권 전매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다. 그래도 물딱에 신경을 쓰는 수준이라고 하면 웬만한 투자를 넘어 투기판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셈이다. 말 그대로 초기 웃돈(시장용어로는 '피(P)')을 뜻하는 초피는 지난해 말까지 분양권 전매 투자가 활성화된 서울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말이었다. 하지만 물딱지는 사정이 다르다. 분양시장에서의 물딱지는 특별공급 당첨권을 말한다. 신혼부부와 다자녀·장애인·국가 유공자 가구 등에게 우선적으로 청약 기회를 주는 특별공급에 당첨된 사람들의 당첨권이 대상이다. 세종시 같은 경우는 '이전기관 종사자'인 공무원 등에게 특별공급 기회가 돌아가기도 한다. 이 특별공급에 당첨은 됐지만 동·호수 추첨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그냥 딱지가 아니라 물딱지라고 부른다.

e편한세상 오션테라스의 경우 저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마다 부산 광안대교와 바다를 내다볼 수 있다는 조망권 때문에 투자 프리미엄을 의식한 사람들이 몰리면서 앞서 18일 당첨이 진행된 특별공급은 387가구 모집에 384명이 청약에 응하면서 소진율이 99%에 달하는 진기록을 냈다. 특별공급 경쟁률·소진율은 일반 1순위 청약 분위기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건설업계에서는 특별공급 소진율이 90%에 달하는 경우 투기 과열 조짐이 있다고 본다. 특별공급은 평생 단 한 번 주어지는 기회로 통한다. 한 번 특별공급에 당첨되면 나중에 다른 아파트 특별공급 신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상자의 자격 요건도 까다롭고 전용면적별로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특별공급용으로 배정되는 물량이 다르다.

물딱지 거래(특별공급 분양권 전매)는 엄연히 불법이다. 지난해 4월 부산 사상경찰서가 장애인 명의를 이용해 해운대구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이를 되팔아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장애인 단체 간부와 부동산 중개업자를 불구속 입건하기도 했다.

불법임에도 기득권층이 개입한 경우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식당의 요리 코스처럼 당연하게 등장한다. 올해 세종시에서는 아파트 분양권을 특별공급 받아 불법전매한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과 부동산중개업자 등이 선고유예(유예기간 동안 사고 없이 지내면 형 선고를 면해주는 것) 판결에 그치거나 항소심 단계에서 감형되는 사례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매제한 기간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전매를 했다거나 워낙 시장에서 불법 거래가 관행처럼 굳어지다 보니 이를 감안해 형을 정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엄연히 있는 전매제한 기간을 어긴 데다 하필이면 특별공급 대상자인데 불법으로 이익을 취한 것에 대한 결과는 시장이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원래 물딱지는 도시계획이나 택지지구 조성 등 개발사업으로 인해 애초에 살던 집이 헐리게 된 철거민과 원주민에게 보상 차원에서 주어지는 특별 입주권을 부르는 말이다. 원주민이 공식 등기를 하기 전에는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입주권을 뜻하는 딱지와 구분해서 물딱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딱지가 부동산 시장에 '본격 데뷔'한 건 2000년대 서울 재개발 사업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지분 쪼개기'가 성행하면서 사업지 안에 주택이나 땅(토지)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중에 아파트 분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지분을 말하는 용어로 쓰이면서부터다. 지분 쪼개기란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새로 지어질 아파트 입주권을 여러 개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낡은 단독·다가구주택(1가구당 소유지분등기 하나)을 헐고 다세대·연립(이른바 빌라) 등을 새로 지어 여러 개의 지분을 구분 등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용산 한강로 일대와 한남뉴타운 등을 중심으로 지분 쪼개기 바람이 불면서 소유관계가 불분명해지는 등 문제가 생기자 서울시는 급기야 2008년 7월 지분 쪼개기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지분 쪼개기를 한 조합원 물건은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없어 '물'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의미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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