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최대 5배 '살인적' 폭등"..경리단길 상인들의 눈물

장예은,김해령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현장실습 기자 2017. 7. 2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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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국 최고 임대료 인상률 보인 경리단길 상인들 만나보니

[장예은,김해령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현장실습 기자]

 
일요일인 23일 오후 2시,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와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거리 옆 경리단길로 향하는 골목이 나온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까지 골목을 마주보고 작은 가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주말 오후 시간임에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골목길에서 11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태민(60대) 씨. 그가 이곳 경리단길에 올 때만 해도 지금처럼 소위 '뜨는' 거리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거리 곳곳에 상가가 들어서 있지만 김 씨가 세탁소를 차릴 즈음에는 일반 주택가에 불과했다. 김 씨 앞집에 쌀집 말고는 주변은 모두 주택가였다. 

하지만 5~6년 전부터 경리단길에 독특한 가게, 맛집 등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뜨는' 거리가 됐다. 김 씨 입장에서는 활성화된 지금의 경리단길이 마뜩잖다. 

"예전에는 25만 원이었던 월세가 차츰차츰 올라 지금은 65만 원까지 올랐어. 만약 한 번 더 올려 달라고 하면 그땐 떠나야겠지. 방법이 없거든. 상권이 만들진 이후 세탁소 고객인 지역주민들이 많이 떠났어. 그런데 임대료는 계속 오르고 있지. 버틸 재간이 없는 거야. 우리 같은 업종은 저절로 떠나야 해. 그만하지 말래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거지."

김 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와 인터뷰했던 50분 동안 그를 찾는 손님은 그와 담소를 나누러 온 두 명의 이웃 주민들뿐이었다.

▲ 경리단길 초입에 위치한 옷가게. ⓒ김해령

"뜨고 나서 손님은 더 줄었다"

최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15~2017년 동안 경리단길 상권 임대료는 무려 10.16%나 올라 전국 최고의 임대료 인상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1.21%)과 서울 평균(1.73%)에 크게 차이 나는 수치다. 임대료 상승이 크다는 뜻은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활성화된 상권밀집구역이라는 방증이다. 유명세만큼 높은 임대료를 자랑하는 경리단길,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경리단길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가게를 운영했던 동네 상인들은 오히려 경리단길이 뜨고 난 후로 매출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전부터 찾아들기 시작한 방문객들로 기존 가게들의 매출이 올랐고 수많은 사업가들이 새로운 창업을 목적으로 이곳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임대료는 상승했다. 

그러면서 기존 주택들은 임대료가 높은 상가로 바뀌었고, 이에 발맞춰 주택에서 살던 주민들은 쫓겨나듯 이곳을 떠나가게 됐다. 자연히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던 상인들의 매출은 몇 년 전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는 노릇. 지역 상인들의 주 고객이 방문객이 아닌 주민들이다 보니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경리단길에서 6년째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박영규(가명) 씨는 현재 당장에라도 가게를 빼고 나가고 싶은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경리단길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 전부터 가게를 운영했던 박 씨의 가게 대부분 단골손님은 이태원동 주민, 그중에서도 외국인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경리단길이 방송과 인터넷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면서 동네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많은 주민들이 떠나게 됐고, 박 씨의 가게를 오가는 사람들 발걸음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박 씨는 "이곳이 떴을 때보다 장사가 안 된다. 아니, 뜨고 나서 오히려 더 줄었다.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다 떠나서 손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매출은 떨어지는데 임대료는 2년 전에 비해 두 배나 올랐다는 점이다. 박 씨는 "2년 전에는 보증금 1000만 원에 70만 원 이었는데 현재는 보증금 5000만 원에 150만 원"이라며 "어떻게든 빼고 나가고 싶은데 들어올 때 준 권리금이 없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15년째 이곳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김주원(50대)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예전에 60~70만 원씩 내던 월세를 지금은 250~300만 원씩 내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며 "경리단길 뒷골목 쪽은 장사도 안 되는데 월세만 계속 올라 결국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김 씨가 말한 뒷골목에는 아이스크림, 추로스가게 등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즐비해 있었다. 

▲ 평일 저녁 6시 한산한 경리단길 모습. ⓒ장예은

"장사 접을까 해도 권리금 때문에 못 접는다"

그렇다면 3년 전 경리단길이 뜰 때 이곳에서 창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어떨까. 3년 전 친구들과 남산 구경을 왔다 '경리단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장사를 시작한 박인수(가명) 씨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쌀집이었던 상가를 임대해 2014년부터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티(tea)카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사가 어느 정도 됐지만 지금의 경리단길은 3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옛날보다는 확실히 매출이 안 좋아요. 그래도 이 시간대에는 손님들이 꽉 찼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죠."

과거에는 손님이 많이 찾아와 예약까지 받았다던 박 씨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됐다. 과거에는 지하까지 사람들로 꽉 찼던 가게였지만 지금은 지하는커녕 1층에도 빈자리가 많다. 

장사를 접을까도 고민했으나 들어올 때 낸 권리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거품이 꺼지면서 권리금은 3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났다.  

경리단길에서 장사를 하는 김영수(가명, 47) 씨는 현재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내놓은 가게들만 100개가 넘는 거로 안다. 그런데 안 나간다. 임대료가 너무 올라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 나도 가게를 내놓은 지 2년 반이나 됐는데 아직도 나간다. 그렇게 임대료는 오른 반면 권리금은 들어올 때와 비교해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 경리단길에서 녹사평역 가는 쪽에 있는 약국. 현재 문을 닫았다. ⓒ장예은

높아진 월세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상인들

상당한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상인들은 투자 대비 이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정리하고 나갈 수도 없는 실정이다. 김 씨는 "한 가게에서 반복적으로 주인이 바뀌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월세가 비싸면 마진이 남지 않기에 가게를 빼는 게 정답인데, 권리금을 높게 주고 들어온 상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비싼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경리단길 골목 곳곳에는 깨끗한 유리창 위로 붙여놓은 점포 임대 현수막과 미처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펜스를 쳐놓은 빈 가게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고급스러운 카페 안에도 텅텅 빈자리가 대부분이었다. 

경리단길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오명환(69세) 씨는 “비싼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고 나가는 상인들이 많다"며 "그럴 경우, 그 매장들은 높은 임대료에도 권리금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또다시 들어와 장사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임대료에 거품이 낀 이유다. 

경리단길 상인들은 그나마 2018년 용산 미 8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되고 그곳에 용산공원이 조성되면 지금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탁소 주인 김태민 씨는 “공원이 조성되면 경리단길이 한 번 더 이름이 나고 사람이 몰릴 것"이라며 "관건은 그때까지 잘 버티느냐다"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공원이 조성되면 상인이 아닌 건물주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이득이 될 거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3년 전과 똑같은 방식과 과정으로 또다시 상인들이 거리로 내쫓긴다는 이야기다. 건물을 빌려 장사하는 상인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개미지옥’을 견뎌야 하는 걸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원래 중산층 이상 계급(신사, gentry) 사람들이 낙후된 지역(빈민가 등)에 들어옴으로써 그 지역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했다. 도시의 고도화에 있어서 필연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현대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전혀 '신사적'이지 않다. 밀려나는 사람과 밀려오는 자본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도시난민'들은 경리단길 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오늘도, 생기고 있다. 

장예은,김해령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현장실습 기자 (kakir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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