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비로 7000만원 그냥 드립니다"..집값 불안 부추기는 강남 재건축 과열 수주전

황의영 2017. 9. 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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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초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앞둣고
현대건설 이사비 제시, 세금 떼고 5400만원
현대 "이사비, 공사비와 별도 제시"
재건축 수주전 치열해지며 수주경쟁 과열
전문가 "아파트 분양가 인상 우려"
재건축 수주전 규제 필요 지적 많아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전경. [사진 GS건설]
서울 강남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수주전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이사비 명목으로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약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이사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시공사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재건축 조합원의 부담금도 늘어날 수 있는 데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분양가를 올리면 주변 집값도 들썩이게 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 시공사를 선정하는 조합원 총회(오는 27일)가 2주가량 남은 가운데 GS건설과 현대건설의 신경전이 뜨겁다. 재건축 공사비가 2조6000억원으로 대형 건설사의 1년 치 주택 수주금액과 맞먹는 데다, 반포 한강 변에 대규모 랜드마크 단지를 짓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은 이사비로 가구당 70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내년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5000만원을 지급하고, 입주 때 200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조합원에게 이사 비용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게 아니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이다.

상가 조합원을 포함한 반포1단지 조합원은 2292명으로, 현대건설이 부담해야 할 이사비만 1600억원 정도다. 기타소득세 22% 등을 제외하고 가구당 실제 지급되는 돈은 5400만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 금액은 공사비와 아무 상관 없다는 게 현대건설 측 설명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사비 지원 금액이 포함된 특화계획 비용을 공사비와는 별도로 제시했다"며 "그만큼 이 사업지를 꼭 잡아야 할 곳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가구당 이사비 7000만원 지원은 전례 없는 파격 조건이다. 건설사들은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를 위해 일부 지역에 한해 이사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대개 100만~1000만원 정도였다. 이 금액이 최근 올라가는 양상이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부산 촉진 3구역 재개발사업에 이사비로 3000만원 무상 지원을 내걸기도 했다.

현대건설이 제시한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투시도. [사진 현대건설]
손실 보전에 대해서도 공세적이다. GS건설과 현대건설은 미분양이 발생하면 분양가 그대로 대물로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재건축 사업의 미분양 리스크(위험)는 조합이 책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건설사가 대신 떠안겠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또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따른 조합원 일반분양 금액 손실분을 떠안겠다고 밝히자, GS건설도 마찬가지로 맞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과열 수주전이 재건축 조합원은 물론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수주전에 투입된 비용이 조합원 부담금으로 되돌아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아파트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조건을 앞세워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실제 올해 초 경기도 과천주공1단지 시공권을 따낸 대우건설은 일반분양가로 주변 시세보다 20% 이상 높은 3.3㎡당 3313만원을 제시했다. 또 미분양이 발생할 경우 해당 주택을 3.3㎡당 3147만원에 매입해주겠다는 '미분양 인수' 조건도 내놨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분양안에 대해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 보증을 해 줄지는 미지수다. 과천주공1단지는 내년 초 일반분양 예정인데,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에 막혀 3.3㎡당 3300만원의 일반분양가를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의 한 부동산팀장은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제시했던 과도한 조건이 나중에 시공사의 재정 부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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