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⑦] 전셋집 배수관 누수 물난리, 집주인은 책임없다?

2017. 9. 13. 14: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에 출근해 사무실 모퉁이에 줄지어 서 있는 끝자락에 우산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오전 편집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울려대는 휴대전화. 우리 아파트 앞 동에 살고 계신 친정엄마다. ‘무슨 일이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친정엄마는 딸을 잘못 둔 죄로 지난해 10월부터 앞 동에 전세를 얻어 살고 계신다. 내년까지만 어린아이를 돌봐주시기로 하고. 늘 면목이 없다.)

"큰일 났어. 우리 집 배수관이 새서 아래층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대."

머릿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비 오는 날 누수라니. 맙소사. 먼저 엄마 전셋집의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수리 업자를 불렀다. 언제부턴가 부엌 싱크대 아래 배수관에서 물이 새고 있었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아래층 천장에 물이 고이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약한 벽지를 뚫고 하필이면 오늘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새는 배수관 수리를 마치고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아랫집을 찾아갔다.

"이거 온 천장에 다 물이 고인 것 같으니 천장을 뜯고 수리와 도배를 해주세요."

아랫집의 요구였다. 아래층이야 아무 잘못 없이 손해를 입을 것이니 요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 전셋집의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도 몇 해 전 아랫집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연락을 받고, 업자를 불러 수리해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건도 집주인이 어느 정도 처리를 해주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댁이 그 집에 살면서 문제가 생겼는데 왜 그걸 나한테 이야기합니까? 나는 수리비 한 푼도 못 내겠습니다."


청천벽력. 이게 뭔가 싶었다. ('전세를 살다가 배수관 같은데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이 수리 비용을 부담하는 게 아니었나? 공사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나는 집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노인 혼자 사시는 집이고, 지난해 10월 이사하셨다. 10년이 넘은 아파트이니 배수관이 낡아 샐 가능성도 있는데, 지금 살고 있으니 수리비용을 전부 부담하라고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같이 부담하는게 어떠냐고 읍소했지만 집주인은 '나는 낼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 업자를 불러 누수 원인을 따져보자고 했지만 현장에 와볼 시간도, 이유도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냥 우리가 부담하자고 했지만, 아래층 천장 석고 부위를 모두 떼어내고 수리를 한 뒤 도배까지 견적을 내 보니 160만 원이 나왔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무엇보다 억울했다.

그때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에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어떤 비율로 수리비를 부담하는게 관례냐고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지만 세대 간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며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집 계약을 맡았던 부동산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했다. 계약할 때부터 영악해 보였던 공인중개사는 그런 걸 왜 부동산에 물어보냐며 자신은 집 계약만 했을 뿐 분쟁 해결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참 훈계를 한다. 변호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설마 160만 원 짜리 비용문제를 가지고 소송을 하려고? 변호사 수임료가 얼만지 알고 물어보는 거야?" 이 와중에 핀잔까지 준다. 남편은 싸우고 싶지 않다며 우리가 부담하자고 한다. 더 억울했다. "이게 말이 돼?"
갑자기 외로워졌다. 문제가 생기자 모두 내게서 등을 돌리는 기분.

전셋집 분쟁으로 폭풍 검색 시작.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 출범'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래 이거야!"


나는 다음날 서울 서초동에 있는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갔다. 그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1층에 자리 잡은 조정위 사무실에 들어서니 안내데스크에서 분쟁조정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직원이 조정대상인 엄마 전셋집 등기부 등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서울지방법원에 가서 등기부 등본을 떼어 제출했다. 직원은 먼저 조정 수수료에 관해 설명했다. 수수료 면제 조건에 부합하는지 확인절차를 거쳤다.

①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임차인, ②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③ 독립유공자 또는 그 유족, ④ 국가유공자 또는 그 유족, ⑤ 고엽제 후유증환자, 고엽제후유의증환자 또는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 ⑥ 참전유공자, ⑦ 5ㆍ18민주유공자 또는 그 유족, ⑧ 특수임무수행자 또는 그 유족, ⑨ 의상자 또는 의사자 유족, ⑩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자, ⑪ 중위소득 125% 이하인 국민 또는 국내 거주 외국인 등.

패스. 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공사 견적 비용을 확인한 직원은 조정 수수료로 만 원을 바로 계좌이체 해 달라고 했다. 조정을 통해 얻는 이익이 1억 원 미만이면 조정에 따른 수수료 만 원만 내면 된다고 한다. 변호사가 나서 해주는 중재위원회의 수수료가 만 원이라니,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전화했던 변호사 친구보다 100배 낫다.'고 생각했다.


서류와 등기부 등본을 제출하고 수수료 만 원 이체를 끝내니 곧바로 중재위의 변호사가 나를 부른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담당 변호사는 상대방이 중재에 동의하면 조정이 이뤄지는 것이고, 만약 상대방이 중재신청에 동의하지 않으면 중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생각했지만 집주인이 다행히 임대차 분쟁조정위의 중재를 받아들였고, 변호사는 다른 업체로부터 다시 견적을 받아 두 곳의 견적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면 바로 중재를 시작할 것이고 중재위에서는 신청 이후 60일 안에 분쟁을 조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대방이 최종 중재안을 거절하면 중재신청은 자연 기각된다고 설명했다. '이건 또 뭔 소린가' 했으나 기다려보기로 했다.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이번 '물난리 사건'의 중재를 맡은 중재위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밝힌 입장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집주인은 수리비용 부담에 책임이 없는 근거로, 1. 자신들이 살고 있지 않았고, 2. 우리 엄마 이전 세입자가 살았을 때는 배수구 누수의 문제가 없었으며, 3. 애초 누수가 시작됐을 때 인지하지 못한 것은 엄마 책임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배수관의 누수가 엄마가 이사를 오시기 전부터 시작된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아파트 노후에 의한 누수였다면 지금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부담을 지라는 건 너무 억울합니다. 그렇다면 정밀 진단으로 누수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 분담을 하는 건 어떨까요?" 변호사는 설명했다.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업체를 불러 정밀 진단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비용은 조정 신청자가 내셔야 하고, 200만 원이 넘을텐데, 저로서는 권장할만한 옵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또 뭔소린가.' 나는 결국 평정심을 일부 상실하고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조정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세입자에게 불리한거 아닌가요? 집주인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 원인을 따지려고 해도 세입자가 그 비용을 전액 부담하라고 한다면 말이죠."

변호사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이해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고요. 하지만 원칙은 그렇다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다시 조정을 해 보겠습니다."

다음 주, 조정위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종적으로 집주인인 000 씨가 받아들인 조정은 아래층 공사비용 160만 원 가운데 35만 원을 부담하겠다는 것입니다. 판례로 봤을 때도 관리의 의무가 지금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있는데 관리에 소홀했던 것이고요. 조정안을 받으시면 이대로 성립하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으셔야 하는데, 통상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이 안 된 사건이 조정위 밖에서 협상이 된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조정위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아래층 집의 천장 공사와 도배 비용을 모두 지불했고(나도 아랫층과 분쟁을 계속할 마음은 없었다.) 엄마 전셋집의 집 주인과도 다시 설왕설래하며 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분쟁 조정은 신속하게 이뤄졌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입자에게는 불리한 점이 너무 많았다. 신청 단계에서부터 집주인이 조정에 응한다는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조정이 신청이 각하되고, 조정안이 나온다고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건은 기각된다. 또 원인 분석을 위한 비용도 신청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세입자인 '을'에게 부당한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조정안을 받아들인 나는 마지막으로 변호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런 분쟁이 또다시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요? 변호사가 말했다. "전세 계약을 할 때 분쟁의 소지가 있을 만한 부분을 미리 계약서에 명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수관 누수가 있을 경우 원인을 따져 6:4의 비율로 집주인과 임차인이 부담한다든지 베란다에 곰팡이가 생길 경우 제거는 임차인이 한다든지, 얼마 이상의 공사비가 나오면 각자 몇 대 몇으로 분담한다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전셋집 계약을 할 때 배수관이 노후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도 없고, 공인중개사가 그런 부분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권장하지 않죠."

조정은 끝났고, 억울함은 남았다. 배수관 누수 물난리로 생각지도 않았던 목돈을 부담해야 했고, 원인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고, 엄마가 앞으로 계시는 동안 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덤으로 생겼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아파트단지에 살고 싶지 않게 되어 내년에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조정결과에 대한 만족 여부를 떠나 실제로 전셋집에 살며 주인집과 분쟁이 생겨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의뢰해 보니, 지난 5월 출범한 조정위원회는 힘없는 세입자들에게는 그나마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개정 주택 임대차보호법 시행에 따라 법무부가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에 설치한 기관인 조정위원회는 변호사와 감정평가사 판·검사 등 전문가들이 조정위원으로 참여해 법률검토를 거쳐 조정안을 제시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 불필요한 갈등과 에너지 소모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조정위원회의 수수료도 민사소송이나 민사조정보다 저렴해 조정액이 1억 원이면 조정위원회에서의 수수료는 만 원, 민사조정 수수료는 4만 5500원, 민사소송 인지대는 45만 5천 원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고 부담이 적다. 현재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는 서울과 수원, 대전, 대구, 부산, 광주 6곳에 설치돼 있고 서울중앙지부의 경우 지난 7월 말을 기준으로 조정 신청 건의 82% 조정에 성공했다는 통계치를 내놨다.

모두가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임대차 계약, 주택 하자, 보증금 반환 등 집주인과 크고 작은 분쟁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해 본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은 신속하고 빨리 해결됐지만 '을'의 위치인 세입자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 집 없는 일상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공부가 된 기회였지만 다시 임대차조정위원회를 찾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홍상희 기자[san@ytn.co.kr]

▶동영상 뉴스 모아보기
▶YTN과 친구가 되어주세요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