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알짜 임대주택, 텅 비어도 서민엔 '그림의 떡'

송원형 기자 2017. 9.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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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주거정책의 역설]
서울시가 공급하는 장기전세, 시세 80%라 해도 59㎡가 6억..
서민은 엄두도 못내 빈집 속출
로또로 불린 특별공급 분양도 최소 7억 이상 현금부자만 수혜

지난 14일 오후 10시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아파트. 환하게 불이 켜진 단지에서 유독 108동만 어두컴컴했다. 전체 81가구 중에서 10가구만 불이 켜져 있었다. 전체 25층에서 한 집만 불이 켜진 라인도 있었다. 불이 꺼진 집 발코니를 살펴보니 다른 집에서 흔히 보이는 화분이나 빨래 건조대가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여럿이었다.

입주 15개월 지나도… 81가구 중 59가구 비어 - 서울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108동(가운데). 서울시는 이 동 81가구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했다. 하지만 입주한 지 1년3개월이 지나도 59가구가 여전히 비어 있다. /주완중 기자

◇'전세금 6억원' 재건축 임대주택

이 단지 108동(전용면적 59㎡)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급한 '장기 전세 주택(시프트)'이다. 서울시 재정으로 집을 사들여 주변 시세의 80% 이하의 전세금을 받고 최장 20년간 임대해 주는 집이다. 지난해 4월부터 입주자를 모집했는데, 현재 81가구 중 59가구(73%)가 비어 있다. SH공사는 공가(空家)를 처리하기 위해 올해 6월 추가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전세금을 7800만원 내렸다. 입주 신청 소득 기준도 기존 월 481만원에서 586만원으로 대폭 완화했다. 인근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 서초동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단지 내 임대주택도 비슷한 상황이다. 아크로 리버파크는 85가구 중 29가구,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는 65가구 중 43가구가 비어 있다. 현재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에 공급된 장기 전세 주택 중 345가구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에 빈집이 속출하는 것은 임대주택 전세금이 5억~6억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기본 신청 조건인 월소득(약 480만원)을 9~1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아크로 리버파크(전용 59㎡)의 현재 전세 시세는 10억5000만원이다. 서초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막 사회생활 시작한 청년층이 매달 480만원 받아서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부유층 자식이나 강남 임대주택에 살 수 있지, 일반 서민은 못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번엔 국세로 재건축 임대주택 추진

강남권에 공급한 임대주택이 비싼 주거 비용 때문에 서민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지난 4월 조례를 개정해 재건축 단지에 행복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했다. 행복주택은 정부가 대학생이나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등을 위해 직장·학교가 가깝거나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 공급하는 공공 임대주택이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에서 결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복주택은 시프트에 비해 공급 대상이 청년층에 맞춰져 있고, 전세만 공급하는 시프트와 달리 행복주택은 월세를 낸다"며 "임대 보증금 비율을 전세금의 30~50%까지로 하면 강남에서도 낮은 월세로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전용 면적 49㎡ 이하 소형 아파트 1667가구를 행복주택 공급용으로 사들일 예정이다.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 재건축 단지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서민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김갑성 연세대 교수는 "강남에서 일하는 청년층이 많다. 수요가 있는 곳에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강남에 아무리 값싼 임대주택을 공급한다고 해도 주변 시세에 연동하기 때문에 임대료 부담이 크다"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정상적인 가격에 임대하고 그 수익으로 서민이 살 만한 지역에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남권 ‘특별 공급 분양’ 수혜자도 ‘현금 부자’ 최근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돼 ‘로또 아파트’로 불린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특별 공급’ 분양 물량이 모두 마감된 것을 두고도 제도 도입 목적과 달리 엉뚱한 사람이 혜택을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 공급은 집 없는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 노부모 부양자 등 배려가 필요한 계층을 위해 일부 물량을 분양하는 것이다.

이달 초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센트럴 자이’ 특별 공급에선 44가구 모집에 449명이 신청, 평균 10대1의 경쟁률을 보이며 서울 첫 특별 공급 전 주택형 마감 기록을 세웠다. 일주일 후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강남포레스트’ 특별 공급도 전 주택형이 마감됐다. 이 아파트들은 전용면적 59㎡ 기준으로 분양가가 10억~11억원에 달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 때문에 현금을 최소 7억원은 갖고 있어야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부모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현금 부자’들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대거 특별 공급을 신청했다는 분석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특별 공급도 임대주택처럼 서민을 위한 제도인데, 서울 강남권에선 기대와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누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재건축 수익을 다른 방식으로 회수해 서민 대상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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