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신고제 도입]세입자 60% 못잡는 '깜깜이 통계' 없어지나

정다슬 입력 2017. 9. 19. 05:30 수정 2017. 9. 1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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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월세 신고제' 카드 왜 꺼내나
확정일자 신고한 물량만 반영
보증금 적거나 없으면 파악 못해
세원 노출에 임대사업 등록 꺼린 집주인에겐 '채찍' 기대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우리나라 국민 절반은 남의 집에 세들어 산다. 서울의 경우 남의 집을 빌려 사는 가구는 57.9%에 달한다. 2015년 기준 통계청 조사 자료다. 이 중 공공임대주택 공급률(10%)을 빼면 약 50%가 민간 임대주택에서 사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확정일자를 통해 파악되는 임대차 계약은 연 36만여건에 불과하다. 임대차 계약이 2년마다 이뤄진다고 할 때 서울시 총가구 수 370만명의 25%에 해당하는 92만여건이 매년 신고가 돼야 하는데 60%가 넘는 가구가 미신고 상태인 셈이다.

정부가 월세계약신고제(월세신고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월세신고제는 세입자가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한 월셋집의 임대료(월세)와 임차 기간 등을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가 월세신고제 도입 검토에 나선 것은 임대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확보하고 효율적인 주거 정책을 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정부는 집주인 스스로 임대사업 여부를 신고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등록임대주택은 민간 임대주택 전체 가구 수(642만가구·2015년 기준)의 10.6%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세신고제는 월세 관련 데이터 확보는 물론 세원 노출을 우려해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꺼려왔던 집주인에게도 ‘채찍’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제도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 시민 셋 중 하나는 ‘월세’

국토부의 전월세 거래량(확정일자 기준)과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를 비교해보면 현재 정부의 임대차시장 모니터링 시스템의 한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토부 실거래가 신고를 통해 파악된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한 비중은 45.2%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와 달리 전세 비중이 월세 비중보다 많은 셈이다. 이는 총조사는 모든 주택을 대표할 수 있도록 골고루 표본을 확보해 대면조사를 하지만, 국토부 통계는 확정일자를 신고한 물량만 반영돼 보증금이 적은 월세나 아예 보증금이 없는 순수월세는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총조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국토부가 진행하는 주거실태조사에서는 2016년 기준 월세 계약이 전체 임대차 계약의 60.5%로 전세 계약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는 5년마다,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는 2년(올해부터 1년)마다 이뤄져 시시각각 변화하는 임대차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정교한 대책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 수년 새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주거 형태 가운데 월세 비중은 2008년 이후 급증해 18.2%에서 23.7%까지 늘었다.

특히 월세 비중은 지방보다는 수도권, 수도권보다는 서울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6월 발표한 ‘2017 서울서베이 지표조사’에서는 전체 서울시민 주거 형태 중 월세 비중이 31.3%로 나타나 서울시민 세 명 중 한 명은 월셋집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가 전세 비중을 처음으로 넘어섰고 30대의 월세 거주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촉진제될까

△서울시는 지난해 8월부터 세입자가 동주민센터에 전입신고 할 때 월세계약 조사 스티커에 적힌 항목에 자율적으로 기재하는 방식으로 월세신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림=서울시 제공]
월세신고제가 도입되면 세입자는 집주인과 함께 임대차 계약을 맺은 뒤 동사무소에 월세 계약의 가격을 신고하는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입자는 주거비용으로 인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기게 된다.

전문가들은 월세신고제가 지지부진한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입자의 월세 신고로 임대사업 여부가 알려지기 전 차라리 임대사업자 등록을 해 이에 따른 세제 혜택(재산세 및 양도세 감면 등)을 누리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임대소득 노출을 꺼리는 집주인들의 반발과 월세 부담 전가 등 부작용도 나타나겠지만 조세 정의를 구현하고 전·월세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월세신고제가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문제는 실효성 여부다. 월세계약 신고제 도입 이후에도 집주인과 세입자의 계약관계에서 세입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점은 변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은 뒤 집주인이 싫어하는 내용인 월세 계약 가격 등을 신고 서류에 적극적으로 기재할 수 있는 세입자가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월세신고제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고 의무화와 함께 세입자를 위한 인센티브 확대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전입신고를 하는 세입자에게 월세신고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는 세입자의 자발적인 신고만으로 지난해 8~12월까지 4540여명의 월세 계약을 파악했다. 이는 같은 기간 확정일자를 받은 월세계약 건수의 6.5%에 불과하다. 김용경 서울시 전월세팀장은 “확정일자의 경우 향후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우선순위로 배당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월세신고제는 당장 세입자에게 직접 오는 혜택이 없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월세신고제가 보다 활성화되고 장기적으로 주거 정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확정일자: 주택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날짜를 법원이나 동사무소 등에서 확인받는 것을 말한다. 주택 임대차계약 때 보증금 등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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