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안정 vs 재산권침해..내달 발표 '전월세 대책'의 딜레마

전형진 입력 2017. 9. 19. 14:55 수정 2017. 9. 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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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주거복지 로드맵' 발표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 포함될 듯
"서민 주거 안정 취지 좋지만..단기 가격폭등·공급 부족 초래" 우려도
서울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한경DB


정부가 추석 연휴 이후 발표할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에 관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핵심 정책인 데다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있는 만큼 이와 연계된 임대차 문제 개선 방안 역시 도입이 유력해서다.

당국은 이미 여러 차례 실행 의지를 피력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친 전·월세’라는 표현을 써가며 당위성을 역설한 데 이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최근 토크 콘서트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서민 주거 안정화란 순기능 못지않게 부동산 시장에 끼칠 부작용과 재산권 침해 등 논란의 소지 또한 적지 않다.

◆계약기간 ‘2년+2년’…임대료 상승률 연 2.5%~5%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제는 주택 임대차 계약이 끝난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하면 1회에 한해 이를 강제하는 게 골자다. 세입자는 기존 거주기간 2년을 포함해 최대 4년까지 같은 집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셈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2+2 제도’로 불린다. 계약갱신을 2회 요구할 수 있는 안과 계약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바꾸는 안도 나오고 있다.

이와 연계되는 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상승폭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전월세상한제 관련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대부분은 기존 임대료의 연 5%를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현행 법률에서도 임대료 증액 한도를 연 5%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계약 기간 중 올릴 수 있는 폭을 말하는 것이지 갱신하는 경우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엔 이를 물가상승률과 연계하는 방안이 담겼다. 연 5%와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비율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 가운데 낮은 금액을 상한선으로 두는 방식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릴 때 지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자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의원은 임대료 상승률을 연 2.5%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급물살을 타게 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 논의는 주거 안정에 방점이 찍힌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서민 주거 불안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전체 세입자가구의 소득대비 주거비 비율은 18.4%다. 이 가운데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의 주거비 비율은 30.4%에 달한다. 소득이 적은 가구일수록 주거비 부담이 높아지는 셈이다.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제출된 법안들을 논의한 뒤 오는 21일 전체회의를 통해 통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선진국에선 다양한 형태로 갱신제와 상한제가 시행 중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경우 일단 성립한 임대차 관계는 보호한다. 임차인이 갱신청구 의사를 표시하지 않더라도 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되는 식이다. 임대인이나 그 가족이 직접 거주하려 하는 경우 등 ‘정당한 갱신 거절 사유’를 입증해야 계약이 종료된다. 독일은 3년간 20%를 초과해 임대료를 올릴 수 없고 영국과 프랑스는 일정한 지표와 연계한 상한선을 정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선 임대료안정위원회가 매년 정하는 최대 임대료 상승분까지만 인상할 수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전세보증금이 하루 아침에 수천만원씩 오르는 한국의 환경에선 주거안정을 꾀하기 힘들다”며 “전월세로 거주하는 서민들을 위해서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기 가격 급등·공급부족 부작용 우려”

제도의 공익적 취지에도 부동산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다. 시장에 끼칠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단기적으론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임대차계약기간 단위가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된 1989년 서울 전세가격은 전년 대비 23.7% 폭등했다. 이듬해도 16.2%나 올라 제도 시행 전인 1988년(7.3%)을 크게 웃돌았다. 앞으로 계약기간이 최대 4년으로 묶이고 이 기간의 임대료 인상률까지 통제된다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임대인들이 4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료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나 시중금리 같은 경기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를 제한할 경우 경제 여건 변화에 따른 탄력성을 저해하게 된다”며 “단기 폭등 같은 가격왜곡이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서민을 위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가 대비 낮은 임대료는 임대인들의 임대기피로 이어지고 결국 임대주택 공급부족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서울 등 신규 공급이 제한적인 지역에서는 임대주택수가 줄어들면서 수급불균형으로 인한 전월세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며 “임대인들이 수선비용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성을 보전하려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선 중개업소들 사이에선 관련 산업이 위축될 것이란 시각이 팽배하다. 서울 상계동 W공인 관계자는 “상가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되고 있지만 임차인의 회전율이 주택과 다르다”며 “주택 임차인의 회전이 4년 동안 막힌다면 이삿짐센터와 도배·장판 업계도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남동 G공인 관계자는 “정책이 규제 일변도로 간다면 문을 닫는 중개업소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부동산전망보고서’를 통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면계약 같은 불법이 성행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실질 임대료 상한 효과가 미미해질 수 있고 임대인들이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재계약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지역과 주택 유형에 관계없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면 고액 전월세 세입자 같은 ‘무주택 부자’들을 구제하게 돼 제도의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보고서는 국내 공공임대주택 재고를 고려하면 민간주택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임대료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당장 선진국 수준의 규제를 할 경우 임대주택의 공급이 위축되고 질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서울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전형진 기자


◆정부, 임대등록 인센티브 고민하지만…“현실성 있어야”

정부는 일단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를 통해 유의미한 통계를 먼저 확보한 뒤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민간임대사업자의 숫자가 너무 적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더라도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다주택자 272만여 명 가운데 임대사업자 등록 비율은 4.5%(12만4000여 명)에 불과하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취득세와 재산세, 소득세가 면제 또는 감면된다. 하지만 2채 이상 등록해야 하거나 전용면적, 가격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지는 등 기준이 까다롭다. 의무임대기간이 지나면 면제되는 양도세 중과 또한 기준시가 6억원(임대개시일 기준)이 넘는 수도권 주택은 포함되지 않는 등 혜택의 허점도 많다. 평균 매매가가 이미 6억원을 넘어선 서울 아파트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더라도 5년 뒤 매도할 때 양도세가 중과되는 게 대부분인 셈이다.

다주택자들은 이 같은 이유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기피하고 있다. 한경닷컴이 ‘다주택자 임대등록 해법’ 설명회 참석자 156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61.3%는 ‘세제혜택 등 정부의 방안이 나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겠다’고 답했다. 임대 등록을 망설이는 이유(복수응답)로는 건강보험료 인상(32.6%)과 세금(24.3%), 의무임대기간(21.5%) 순의 응답 비율을 보였다. 세원 노출(14.6%)과 복잡한 등록 절차(6.9%)가 뒤를 이었다. 건보료가 사실상의 조세로 인식되고 의무임대기간이 양도소득세와 연관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주택자들은 안 내도 될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임대 등록을 꺼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며 “이들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공적 기능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하려면 규제에 비례하는 만큼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통해 다주택자들에게 건보료를 깎아주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음 달 발표될 주거복지로드맵에 담길 내용으로는 일정 수준 이하 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등 세제 감면과 리모델링비 지원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자발적 임대사업자 등록이 미진할 경우 강제로 등록시키는 의무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민간임대주택인 준공공임대주택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임대인 입장에서 혜택이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임차인의 권리 보호와 함께 임대인의 적정 수익도 보장하는 균형 있는 정책이 나와야 시장의 저항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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