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 올린 시공사 대표들, 지존 반포주공1단지의 힘

김인오 2017. 9. 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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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1970년대 '영동개발프로젝트' 1호, 수조원 강남 알짜땅 반포주공1단지
-공사비만 건설사 1년치 전국 수주액 넘는 2조6000억원
-재무통 검사 출신 임병용 사장 vs 건설맨 출신 출신 정수현 사장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사진=매경DB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3구 대형 재건축 단지는 '그사세'다. 최소한 10억원이 넘어가는 집을 사는 사람이나 수천억에서 3조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받고 집을 지으려는 건설사나 양쪽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그사세는 2008년 인기를 끈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줄인 말인데 '그들만의 리그'와 같은 맥락에서 아무나 낄 수 없는 커뮤니티를 말할 때 주로 쓴다).

대형 건설사만이 뛰어들어 '별들의 전쟁'을 벌이는 무대이자 '투자 불패 신화'가 이어져 온 강남3구에서도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는 눈에 띄는 아파트다. 단지 규모만 해도 지하 4층~지상 최고 35층에 총 5388가구의 매머드급으로 다시 지어진다. 보통은 총 5000가구만 넘어도 '미니 신도시'라고 부르는 것을 감안하면 사업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최근 5년 새 재건축 단지 중 송파구 '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최고 35층에 총 9510가구) 이후 가장 덩치가 크다.

조합원 승계가 가능한 전용면적 84㎡형의 매매 호가가 27억원에 이르고 기존 실거래가는 26억원 선까지 오갔다. 오는 27일 시공사 선정을 앞둔 이 단지의 공사비만 따져도 2조5000억~2조6000억원 선이다. 이 정도 공사비면 2016년 '전국' 정비사업장 공사 수주비를 기준으로 1위 대림산업(3조2997억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한 GS건설의 1년치 실적(2조3973억원)을 넘어선다. 공사를 하겠다는 후보(시공후보사)로 나설 때 내야 하는 입찰보증금만 해도 1500억원에 이른다. 통상 서울 비강남권 정비사업장(재건축·재개발 등) 입찰보증금은 10억~50억원 선, 강남권은 50억~200억원 선이다.

21일 서초구 반포동에서 열린 시공후보사1차 설명회에는 1000여명의 조합원과 GS·현대건설 사장들이 찾아왔다./사진=김재훈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단지에서는 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초구 반포동 엘루체컨벤션센터에는 임병용 GS건설 사장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찾아 열전을 벌였다. 당일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이 연 시공후보사 1차 설명회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공후보사 설명회를 대형 건설사 사장이 직접 찾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특히 후보사의 대표들이 모두 참석해 홍보전을 벌이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는 게 업계의 말이다. 조합원 총 2290여 명 중 1000여 명(조합 추산)이 참석한 이 자리는 21일 오전 국토교통부가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후보사로 나선 현대건설에 '이사비 7000만원 무상 지원' 시정 지시를 내린 날 열린 데다 불과 1주일도 안되는 시기인 27일에는 2차 설명회에 이어 시공사 선정 투표가 이뤄지기 때문에 살벌한 홍보전(戰)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이사비 등에 관한 내역이 제시된 두 시공후보사의 최종입찰제안서 일부./사진=조합원 제공

두 사장의 등장에 앞서 진행된 두 후보사들의 영상 홍보물에는 상대 건설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실렸다. 이 때문에서인지 한 건설사의 차례에는 상대 건설사의 출입이 금지됐다. 후보 1번인 GS건설의 영상에선 "현대건설이 제대로 된 시공을 하지 못한다, '골든게이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제안이다, 꼼수 제안서를 공개하라"는 식의 내용이 나왔고 2번인 현대건설의 영상은 "현대건설은 대한민국 건설사를 이끈 맏형이다, 현실에 맞는 최고의 설계를 내놓은 것, 이사비 7000만원 상당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식의 내용을 실었다.

각자 '상대편이 지으면 단지를 망칠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치열했던 영상전(戰)은 두 건설사가 올해 강북 정비사업 대장주 마포구 '공덕1구역'(GS건설·현대건설 컨소시엄)과 강남구 '개포8단지 공무원아파트'(현대건설·GS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의 공동 시공사인 점을 감안하면 재밌는 대목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회사의 '밥통'이 걸린 일이니 적과의 동침이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일이 흔히 생기는 게 '건설 바닥'의 적나라한 단면이기도 하다.

21일 열린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후보사 1차 설명회에서 임병용 GS건설 사장(왼쪽에서 세번째)이 단상에 올라 투명한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사진=김인오 기자

사장님들의 홍보전은 보다 점잖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은 엄연히 달랐다. 공인회계시험을 합격한 '재무통' 검사 출신,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날카롭고 강단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GS건설의 탄탄한 자금력을 강조함과 동시에 공정경쟁을 위한 입찰내역서 공개를 주장했다. 이밖에 임 사장은 "반포자이를 랜드마크로 지은 GS건설의 시공능력과 자이 브랜드를 봐달라"며 "2014년 영업이익 흑자전환 후 국내외 주요 공사를 수주하면서 연 매출 10조원 이상을 내는 최고의 건설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함께 단상에 오른 우무현 GS건설 건축부문 대표와 임국희 도시정비팀 반포소장, 김태수 도시정비팀 차장 등과 손잡고 90도로 인사하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한 조합원은 "사장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니 시공사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GS건설은 이날 별도로 사장이 한 말을 담은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서울대 법학과 학사·석사(조세법 전공)를 받은 임 사장은 공인회계사시험과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수원지방검찰청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1년 LG 구조조정본부에 입사한 후 LG텔레콤 마케팅실장·GS스포츠 사장·GS건설 경영지원 총괄(CFO)을 지낸 그는 GS건설이 어닝쇼크에 분식회계 의혹까지 겹치며 고전하던 2013년 허명수 사장에 이어 '구원투수' 사장으로 부임했다. 1년 만에 회사를 흑자전환시킨 후 2015년에는 건설사 매출10조원 클럽에 들게 하는 등 사세를 키웠다는 업계 평을 받는다.

21일 열린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시공후보사 1차 설명회에서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단상에 올라 회사의 제안을 설명하고 있다./사진=김인오 기자

건축학도 출신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해 수십 년을 보낸 '뼈 건설맨',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현장 소장처럼 직접 사업 설명을 진행했다. 정 사장은 "공동사업자로 나서는 경우 이사비를 제시해야한다는 생각 끝에 회심의 카드로 7000만원 이사비를 내건 후 이에 대해 언론과 정부·국회 등에 설명작업을 해왔지만 오늘 이사비 수준을 시정하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사비를 '사회통념'에 맞게 조정하되 시공사로 선정되는 즉시 1600억원(가구당 7000만원 선 이사비 상당의 총액)에 대한 이행보증채권을 조합에 전달드리겠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현대건설이 제시한 '골든게이트'는 법적으로 가능한 설계라는 점도 강조했다. 정 사장은 김정철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 부사장 등과 함께 단상에서 조합원을 향해 큰절을 한 후 자리를 떴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후 현대건설에 입사한 정수현 사장은 입사 후 23년 만에 현대건설 민간사업본부 이사에 올랐다. 건축사업본부 전무와 김포도시개발 전무를 거쳐 건축사업본부 본부장 겸 부사장을 지낸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건설업계의 줄도산을 불러왔던 2011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부임했다. 정 사장은 현대건설이 기존의 '힐스테이트'외에 '디에이치'라는 고급 브랜드를 만들면서 서초 재건축 시장에 발을 들인 삼호가든3차 공사 수주작업도 직접 참여하는 식으로 열성적이라는 업계 평을 받는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초고급 커뮤니티'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일부 커뮤니티./사진=김인오 기자

이달 설명회를 끝낸 오득천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장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 속도를 높이면서 서울시내 최고의 한강변 문화 커뮤니티를 갖춘 랜드마크 단지라는 상징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건설사 간 시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오는 오해는 조합이 직접 해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합은 두 건설사들 간 홍보전이 붙은 '7800억원 LH 땅'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낸 바 있다. 현재 LH가 소유하고 있는 단지 내 2만3140㎡ 땅(현재의 관리사무소, 노인정, 테니스 코트 등·공지시가 7800억원)은 시공사가 아닌 조합과 LH가 당사자로서 조합이 LH로부터 소송을 통해 땅을 되찾는 것이지 특정 건설사가 시공사가 되는 경우에 한해 그 건설사가 땅을 되찾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1973년 아파트 분양 당시 주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분할등기되지 못한 해당 토지는 조합이 2000년 LH에 토지 반환을 요구했다가 2002년 토지를 입주자 공동재산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입주민들이 세금 등을 이유로 이전등기를 거부해 지금까지 LH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조합은 소유권 관련 약식 소송을 통해 되찾는다는 계획이다.

한 차례 연극 같은 설명회가 끝난 뒤 무대는 27일 오후 1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다시 열린다. 21일의 기억을 곱씹은 두 건설사 사장은 앞으로의 홍보전략 짜기에 들어갔다. 현대건설은 22일 조합에 최종제안서(이사비 총 7000만원 혹은 5억원 이사비 무이자 지원)대로 간 후 시공사로 선정되면 국토부의 권고에 따라 이사비를 조정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1971년 9월6일자 경향신문 1면에 난 '남서울아파트'(반포주공1단지의 옛이름) 분양공고. 용산 동부이촌동의 '한강맨숀'보다 더 넓은 동간 간격과 차별화된 단지내 시설을 강조한다. 맨숀은 당시 '고급 아파트'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자료출처=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사세' 아파트인 측면이 있지만 반포주공1단지는 우리 부동산 개발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 영등포·명동 일대에 치우친 불균형을 문제 삼은 정부가 '영동개발계획'(강남권 주택개발)의 일환으로 지은 고급 주택이 반포주공1단지다. 애초에는 '남서울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1973년 들어선 반포주공1단지는 강남 압구정·개포, 송파 잠실보다 먼저 개발된 '강남 1번지 아파트'로도 통한다.

전용면적을 기준으로 72~205㎡형 총 3590가구로 구성된 반포주공1단지는 3주구(전용 72㎡형 총 1490가구)와 1·2·4주구로 나뉘다. '주구(住區)'는 초등학생들이 도로를 건너지 않고 통학할 수 있는 주거단위구역을 말한다. 조만간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예정인 대단지 3주구도 이르면 연말 시공사 선정을 할 예정이어서 현대산업개발 등이 수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말이다. 3주구와 1·2·4주구 모두 8·2 대책에 따라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가 불가능해지고 대출한도도 40%(LTV 기준)로 줄어드는 식의 악재를 만났지만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앞두고 이를 피하기 위해 올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다는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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