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환경파괴 멈춘 이례적 사례".. 궁동산 개발 허가 전면 취소

김선영 2017. 9. 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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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파괴 논란을 일으키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서울 서대문구 궁동산 ‘개나리언덕’ 개발이 지난 8월 전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시작된 환경파괴가 시민운동으로 중단된 이례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청은 지난 8월3일 궁동산 개발과 관련해 개발업체에 대해 허가취소 처분을 내렸다. 구청은 허가 받은 사업기간 동안 업체가 진입로 폭 확보, 경관보호 수림대 조성, 목적사업 등을 완료하지 않아 취소 처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70년 넘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들의 쉼터로 사용됐던 궁동산 ‘개나리언덕’이 고급 빌라를 짓기 위해 파헤쳐졌던 현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궁동산 개나리언덕은 1940년 3월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70여년 동안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보다 개발이 어렵다는 ‘비오톱 1등급(생태환경지구)’으로 지정됐던 곳이다. 비오톱(biotope)은 ‘생물군집 서식공간’으로,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영역을 뜻하는 토포스(topos)가 결합된 용어다.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생활공동체를 이룬 현장을 가리킨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I사는 2003년 9월 연희동 산 89-1번지 5083㎡(약 1537평)를 당시 공시지가인 9억원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했고, 업체의 수차례 민원 끝에 서울시는 2013년 해당 부지의 비오톱 등급을 유형평가 3등급, 개별평가 2등급으로 낮춰줬다. 이후 업체는 2014년 6월 이곳에 빌라 24가구를 짓겠다며 개발행위 허가를 신청했다. 서대문 구청은 “해당 부지 옆에 수려한 공원이 있으며 바로 옆에 학교도 있다”, “특혜 시비에 논란이 될 지역”이라는 이유 등으로 개발허가를 불허했지만, 업체가 상급기관인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제기해 이기면서 2015년부터 개발이 진행됐다. 개발허가로 인해 당시 공시지가 기준 부지의 가치는 33억원으로 구입가격보다 약 4배 정도 껑충 뛰었다.

주민들은 업체가 “제초제를 뿌리는 것도 봤다”며 궁동산 산림 훼손 의혹을 제기했고, 주민협의회를 구성해 개발 저지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부산에서 지내다 개나리언덕 근처에 집필실을 마련해 이사왔던 유명 소설가 김영하씨가 동네 주민들과 함께 개발을 막기 위해 가세하면서 외부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은 계속 진행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개발업체와 구청, 주민들의 갈등도 깊어졌다.


주민들은 궁동산 개발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이 와중에 구청이 개발업체에 허가 조건으로 내세웠던 교육청과의 토지교환의 근거가 무효라는 결정이 나왔다. 해당부지의 1984년 3월과 5월 측량 결과와 1993년 6월에 실시한 측량결과를 확인한 결과 궁동산 개발업체 토지와 인근 서연중학교의 지적 경계선이 한국국토정보공사의 실수로 잘못 그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토지교환이 취소된 것이다. 이에 건축허가에 필요한 도로 폭 확보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년여에 걸친 지난한 개발 논란은 허가 취소로 결론났다.

개나리언덕 주민대책위원회의 일원인 이윤정(50·여)씨는 “역시 불법적으로 자행된 일이기 때문에, (허가 취소) 결정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며 “궁동산 개발이 이뤄지면 앞으로 서울에 남아나는 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민들이 함께 똘똘 뭉쳐서 이뤄낸 성과라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환경에 대한 정책이 좀더 진전된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며 “국민들이 환경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고, 생태계에 대해서는 더욱 더 관심이 많아지면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궁동산 개발 논란은 서울시가 도심 녹지를 파괴해 개발하는 행위에 대해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시는 비오톱 등급 변경을 더 까다롭게 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건축 허가시 환경성 검토 지침에 비오톱 1등급지에 인접한 토지를 이용할 경우 완충공간을 두어 비오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뒀고, 특히 현재 5년으로 돼 있는 비오톱 정비 주기를 10년으로 두 배 늘렸다. 시 관계자는 “궁동산 개발 논란이 언론에 조명되면서 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관련 대책 마련에 신경썼다”며 “녹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는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업체는 현재 구청의 준공검사 반려처분과 허가기간 연장 신청 반려 처분 등에 대해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업체 관계자는 “궁동산 개발 허가 취소와 관련해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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