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중개업소 들이닥친 특사경 "매매거래서 봅시다"

2018. 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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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잡기 전방위 공세]부동산투기 단속 현장 동행취재

[동아일보]

“시세 조작이 의심되는 거래가 있어 단속 나왔습니다. 매매계약서 보여주십시오.”

18일 부동산 투기를 단속하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 2명이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아파트 근처 공인중개사무소 문을 열어젖혔다. 최근 약 28억 원에 팔린 전용면적 114m² 주택의 계약서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특사경은 경찰처럼 긴급체포, 영장집행이 가능한 행정공무원이다. 이번에 처음 부동산 시장에 투입됐다.

특사경은 40여 분 동안 계약서상의 계약금·잔금 입금 날짜 등을 들여다봤다. 매수·매도자 간 관계, 매매가가 기존 시세보다 수억 원 높았던 이유 등도 따져 물었다.

이들이 의심한 불법거래의 유형은 소위 ‘부동산 자전(自轉) 거래’와 분양권 다운계약이다. 자전 거래는 집주인이 중개업소와 공모해 제3자에게 높은 값에 집을 판 것처럼 계약서를 꾸며 관할구청에 실거래가 신고를 한 뒤 나중에 계약을 해지하는 행위다. 아파트 단지의 시세를 띄우기 위해서다. 다운계약은 양도소득세와 취득·등록세를 덜 내기 위해 실거래가보다 낮은 값에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당시 단지 전체에서 이 평형 매물이 하나도 없어 매수자가 비싸게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전 거래가 아니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특사경은 “나중에 매수·매도자 사이에 거래대금이 실제로 오가는지도 꼭 확인할 것”이라고 일러두고 다른 중개사무소로 향했다.

○ 특사경 등 단속반 50명, 서울 4개 구 ‘동시 타격’

이날 국토부에 따르면 17, 18일 국토부 직원으로 구성된 특사경 6명을 포함해 구청과 한국감정원 단속반 50명은 강남구 등 서울 4곳에서 단속을 벌였다.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구 개포·대치동에는 총 9명의 단속요원이 배치됐다. 이달 말부턴 서울 경기 부산에 특사경 160명 이상이 추가로 투입된다.

국토부는 특사경 출범 전인 지난해 말부터 서울의 ‘미등기 거래’를 전수조사해 뒀다. 관할 구청에 실거래가 신고만 하고 등기를 늦추는 거래에는 자전 거래 같은 불법 행위가 끼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단속 현장에선 매매계약서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공인중개사무소 직원들과 단속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분양권 거래는 다룬 적이 없다”고 잡아떼던 한 중개사무소 직원들은 “지난해 6월 입주한 ○○아파트 분양권을 중개한 실적을 이미 확인했다”는 엄포를 듣고서야 어쩔 수 없이 서류를 가져왔다.

김정희 국토부 부동산산업과장은 “공인중개사가 투기를 조장하거나 탈세를 돕기 위해 비정상적인 거래를 중개하면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등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속은 공인중개사무소를 무작위로 방문하는 방식이 아닌, 비정상적으로 높은 실거래가를 신고한 업체를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 업계선 “단속 무서워 폐업할 판”

당초 일각에서는 서울 중개업소가 대거 휴업을 해 특사경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특사경이 찾아간 래미안대치팰리스 인근 상가에서는 중개사무소 14곳 중 9곳이 영업 중이었다. 대치동은 이미 관할구청에서 수차례 현장지도를 했기 때문에 중개업소들이 마냥 문을 닫을 수 없어 부득불 영업을 재개했다가 단속에 또 걸렸다.

나정재 국토부 토지정책과 사무관은 “특사경은 불법거래 의심 공인중개사를 강제로 소환해 조사할 수 있다”며 “가게 문을 닫더라도 조사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인중개 업계에서는 “정상적인 영업 활동마저 못 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단속반이 17일 한 중개업소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압수해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단골 고객들 개인정보가 통째로 노출되는 셈이어서 아예 일을 쉬었다”고 했다.

대치동 H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불법 거래를 한 적은 없지만 단속반이 사무실을 찾아와 놀랐던 게 사실”이라며 “중개사가 계약 내역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속반이 어떤 목적으로 나오는 건지 사전에 안내해주면 불안감이 덜어질 것”이라고 했다.

천호성 thousand@donga.com·주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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