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수원 부자들 몰렸던 영통의 눈물

이지은 인턴기자 2018. 2. 1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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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 황골마을주공1단지 아파트. /이지은 인턴기자

“봄 이사철을 앞두고 아파트 전세가 막 쏟아져 나오는데 찾는 사람이 없어서, 세입자도 집주인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매물을 빨리 소화해야 하는데….”

땅집고 취재팀이 지난 5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지구에서 만난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한숨을 쏟아냈다. 수원의 전통 부촌(富村)으로 꼽히던 영통지구 아파트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은 집값과 전세금이 올라 난리인데 불과 25㎞ 떨어진 이곳은 딴 세상이었다. 영통에서는 집값과 전세금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분당선 청명역 밖으로 나와 영통지구 가장 번화가인 영통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동안 봉영로 주변에는 20층 남짓한 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서 있었다. 이 지역 아파트는 대부분 지은지 20년 정도 지났다. 흰색과 옅은 갈색 페인트로 칠한 아파트 외관은 빛이 바래 있었다.

수원 영통동 위치. /네이버 지도

영통지구는 수원 영통동 일대 3.94㎢를 개발해 1997년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구도심과 가깝고, 당시 수원 경제를 이끌던 삼성전자 수원공장 바로 옆에 있어 입주와 동시에 수원의 ‘부촌’으로 떠올랐다. 매탄동, 권선동 등 구시가지 단독주택에 살던 부자들이 영통지구로 몰려들었다. 축구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던 이운재, 송종국도 한때는 영통 주민이었다.

■20살된 영통…집값도, 전세금도 내려

연도별 영통지구 아파트 입주물량. /그래픽=이지은 인턴기자

하지만 입주 20년이 넘어 아파트가 낡아가면서 영통지구 전체가 늙어가고 있다. 영통지구에는 20년 전인 1997년 한해에만 1만2246가구가 입주했다. 2002년까지 2만3000여 가구가 집중적으로 입주했다. 이 아파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낡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통지구 전용 59㎡ 아파트의 평균 매매,전세 실거래가격 추이. /자료=국토교통부

아파트가 늙어가면서 최근 1년간 영통지구 내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금은 모두 하락세다. 최근 주택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59㎡(이하 전용면적)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영통동 59㎡ 평균 실거래가는 지난해 2월 2억5997만원에서 올 1월 2억4000만원대까지 7.6% 정도 떨어졌다.

59㎡ 아파트 전세금도 작년 2월 2억2275만원에서 올 1월 2억309만원으로 2000만원(10%) 하락했다. 영통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집을 살 수요자도, 전셋집을 찾는 이도 모두 새 아파트만 찾다보니 낡은 영통지구 기존 아파트는 인기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초대형 주거지 조성…수요자들 빠져나가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새로 지어진 힐스테이트영통 아파트. /이지은 인턴기자

영통지구 아파트 인기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주변 지역에서 새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되고 있는 탓이다. 영통동 바로 옆 망포동에는 작년 이후 ‘영통SK뷰’(710가구), ‘e편한세상영통2차1단지’(392가구) 등 3500여 가구가 줄줄이 입주했다. 영통지구에서 차로 20~30분 떨어진 광교신도시와 동탄2신도시 역시 영통 주민들을 흡수하고 있다. 영통의 북쪽 용인 기흥역세권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기흥역세권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B사 관계자는 “영통이 나이가 들긴 했지만 여전히 수원에서 부자들이 많이 살아 주택시장에서는 ‘큰손’으로 통한다”며 “아파트 분양 때 조사해보니 영통에 주소지가 있는 수원 주민들이 대거 몰렸다”고 말했다.

지하주차장이 부족해 지상에는 늘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이지은 인턴기자

영통지구는 대부분 용적률이 200%가 넘는 아파트가 많아 재건축도 힘들다. 이 때문에 주변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장에서 점점 인기가 떨어지는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분당신도시는 그나마 리모델링 이슈라도 있지만 개발한 지 20년 조금 지난 택지지구나 신도시에선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호재가 거의 없다”며 “다른 택지지구도 나이가 들면 영통지구와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군과 삼성전자 가까워…주변 입주 끝나면 회복할듯

영통지구 아파트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확실한 강점이 있는 만큼 머지않아 하락세를 멈출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영통지구는 학군이 우수한 지역으로 꼽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지역이다.

2017년도 수원 영통구 내 중학교 학업성취도 순위. /자료=학교알리미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따르면 수원시 내 학업성취도 1위 중학교는 영덕중, 2위는 영일중으로 모두 영통지구에 있다. 광교신도시의 광교중과 연무중이 각각 3, 4위로 올라있지만, 자녀를 둔 수원지역 학부모들은 전통 명문인 영통동 내 중학교를 선호한다. 영통동에 있는 영덕고, 청명고, 태장고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편이다.

영통지구 옆 매탄동에 있는 삼성디지털시티. /이지은 인턴기자

영통지구 바로 옆 매탄동의 삼성디지털시티 근로자들이 영통동 아파트를 꾸준히 찾는 것도 강점이다. 삼성디지털시티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로지텍, 삼성제조기술센터 등을 포함해 4만명이 넘는 ‘삼성맨’들이 근무한다. 영통동의 정토부동산 관계자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영통동 주민이나 삼성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쉽게 영통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영통지구와 망포동, 동탄2신도시 등 세 지역의 관계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현재의 분당과 판교 관계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분당 내 아파트 가격은 판교신도시가 조성된 직후 급락을 겪었지만 현재 두 지역은 집값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변 지역에서 입주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영통지구 집값이 상승세로 전환하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교육 환경이 좋고 삼성전자를 낀 영통의 ‘저가 메리트’가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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