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도 말문 막히게 하는 '미친 부동산 시대'
[오마이뉴스 김소영 기자]
지방에 사는 젊은이라면 한번쯤은 서울살이를 욕망한다. 나 또한 그랬다. 텔레비전에선 젊고 화려하고 세련된 서울 모습이 중계되는 걸, 학교에선 선생님이 명문대역에 대거 정차하는 2호선을 타야 한다고 농담하는 걸 보고 들으며 자랐다.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서울 로망'을 부추겼다. 갓 성인의 문턱을 넘은 청년들은 꿈을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서울로 향한다.
서울살이로 얻은 교훈을 하나 꼽자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내가 중학생 때 엄마는 '내 집 장만'에 성공했다.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 엄마는 선비 같은 절약 정신으로 무장한 채 살았다. 소비하며 현재를 즐기는, 요즘 유행어로 '욜로족'이던 나에게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의 자신에게 투자하는 걸 포기한 엄마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철없던 나는 맘 편히 머물 공간 없는 서울에 와서야 엄마가 '내 집'에 집착한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가끔 균형이 깨진 옵션을 던져놓고 선택을 요구한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벌인 '자가용 장만이 먼저냐, 내 집 장만이 먼저냐'란 토론이 그랬다. 당시 나는 저렴하면서 보다 넓은 월세방을 찾으려고 학교 근처를 전전하는 일상을 살고 있을 때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담을 쌓은 나에게는 한 학기 끝날 때마다 짐을 싸고 푸는 행위를 반복하는 게 고달팠다. 아르바이트비로 월세를 내면 돈이 없어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써야 한다는 사실에도 진절머리가 나던 시절이다.
전세의 단점은 물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있어도 비싸서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2년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준다. 장점은 단점들을 껴안을 만큼 가치 있어 보였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기대 전세방을 얻었다. 보일러 동파를 방지해야 하는 등 집을 관리하는 게 까다로웠다는 걸 빼면 예상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다.
▲ 지난해 젊은층은 '돈은 안쓰는 것이다'를 강조한 김생민에게 공감했다. |
ⓒ KBS <김생민의 영수증> 갈무리 |
'집 장만을 위한 소비 포기냐, 지금의 삶을 가치 있게 사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요즘, 나는 1년 반을 산 대학 기숙사 생활이 서울에서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학교 기숙사는 전세처럼 돈을 다시 돌려받지는 못하지만 월세보다 싸다. 학생들은 전·월세의 절충안으로 기숙사에서 살며 졸업 후 삶을 준비할 수 있다. 학생이 아닌 무주택자들 즉,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등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이 기숙사와 같은 구실을 적극적으로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없는 비싼 전세 대신 민간시장보다 싼 월세를 내며 임대주택에 산다면 굳이 내 집 장만을 위해 극단적인 절약을 할 필요도, 문화생활에 손 놓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은 성실한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이다. 그래서 더욱 임대주택은 게으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편견 속에 머물러 있다. 집을 소유하기보다 공유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 어떨까? 부동산값이 널뛰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정말 자기 집이 필요한 사람만 집을 사게 될 것이다. 청년층 등 집 대신 다른 곳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절실한 일을 하면서도 임대주택에 머물며 안정적인 주거생활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미친 부동산'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모두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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