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내집마련, 급한 마음에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샀다가 망했다

민경진 입력 2018. 2. 21. 13:00 수정 2018. 2. 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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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성공기(12)
박 씨가 입주하기로 했던 'S아파트'의 조감도.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 씨는 2002년께 서울 동작구 상도동 ‘S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단행한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르던 시점이었다. 평소 매입하려고 눈여겨 보던 아파트값이 이미 수천만원 올라버린 터라 마음이 급하던 차였다. 주변 시세보다 1억원 이상 저렴하게 내집마련을 할 수 있다는 모델하우스 상담원 말에 넘어가 덜컥 조합원 가입을 했다.
 
이때만 해도 조합원 분담금 1억8000만원만 준비하면 3~4년 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발이 완료되면 1억7000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조합원 분양가가 주변 시세(3억5000만원)보다 그만큼 싸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모든 게 신기루였다. 사업은 10년 이상 지체됐다. 아파트 부지를 완전히 매입하지 못해서다. 사업승인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 집을 팔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더 큰 보상을 원하며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설상가상 산기슭에 있던 무허가건물 거주민들도 보상을 요구하며 이주를 거부했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업무추진비 보상비 등의 명목으로 쓴 돈이 늘어났다.

분담금 부담이 커지자 조합에서 탈퇴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조합원이 임의로 조합을 탈퇴할 수도 없었다. 탈퇴 사유가 있어도 조합 총회의 의결을 따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동안 낸 계약금과 업무추진비를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컸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S아파트’가 준공됐다. 하지만 박 씨가 내야 할 총 분담금은 5억5000만원이 넘었다. 당초 약속 대비 3억7000만원 늘어났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게다가 부동산시장 환경도 좋지 않았다. 2008년 전후 공급 과잉의 후유증으로 서울 집값의 최악의 겨울을 맞고 있었다. 새 아파트를 전세로 내주고 부족한 돈을 마련했다. 10년 동안 떠안은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또 10년 이상 전세로 떠돌면서 큰 불편을 겪었다. 박 씨는 “그때 1억8000만원으로 다른 아파트를 샀더라면 내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 큰 차익도 얻었을 것”이라며 씁쓸함을 전했다.


박 씨는 2015년 이 집을 6억원에 팔았다. 그동안 겪은 고통이 지긋지긋해서였다. 기회비용 등을 따지면 큰 손해를 봤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고통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작년 7월 동작구청이 뜬금없이 개발부담금 1577만원을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2014년 부과된 총 개발분담금 1070만원에 연체 가산금 507만원이 붙은 금액이었다. 구청은 “2013년 조합원 총회시 개별 조합원이 개발 부담금을 별도로 납부하기로 의결했다”며 “주택공급 면적 비율에 따라 각 조합원에게 개발 부담금을 개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집을 팔았지만 원 조합원이 부담금을 납부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박 씨를 비롯한 ’S지역주택조합’이 구청을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였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박 씨 등은 “무허가건물 보상비를 개발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55억5400여 만원에 이르는 개발 부담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하지만 대법원은 2017년 5월 조합이 제기한 행정소송을 기각했다.

운명의 장난인가. 박씨의 고통은 계속 됐다. 그가 집을 팔자마자 서울 집값이 대세 상승국면에 진입했다. 그가 매각한 아파트는 지금 8억9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는 여전히 전세집에 살고 있다. “그대로 들고라도 있었다면 손실은 면했을 텐데”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박 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주민이 조합을 구성하고 부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무주택자이거나 전용면적 85㎡ 이하 집 한 채를 소유한 이들이 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재건축·재개발사업과 달리 시공사가 가져가는 이익이 없어 제대로만 진행되면 주변 시세보다 싼 가격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10%도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토지 확보다. 거의 대부분 사업지에서 토지확보 지연으로 문제가 생긴다. 95% 이상의 토지 확보가 되기 전까지는 사업승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토지확보가 되지 않아 사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 모집이 지연되는 사례도 흔하다. 조합 집행부 비리도 만연해 있다. 박 씨가 가입한 조합의 경우 조합장이 사업 추진비 90억원 이상을 횡령했다. 비리에 연루된 임원은 구속돼 2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지만, 주범인 조합장은 10년째 도피생활 중이다. 이 사건만 없었더라도 입주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S지역주택조합 인근 지역주택조합에서도 대형 집행부 비리가 발생했다. 2009년 상도 134지구 지역주택조합 조합장과 임원이 아파트 분양권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웃돈을 받고 팔았다. 이 사건으로 조합은 최대 300억원가량의 손해를 입었다. 사업도 중단됐다. 사업 진행 중 집행부 비리나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하면 모든 피해를 조합원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정리=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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