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청년주택 오면 망한다"..부동산 세대갈등

방윤영 기자 2018. 4. 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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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임대주택 인근 주민 "재산권 침해" 반대.."오해, 오히려 지역 상권 도움될수도"
6일 오전 서울 강동구청 인근 광장에서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임대주택 지으면 성내동은 다 망한다", "주민들의 재산권을 방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사진=김영상 기자


6일 오전 서울 강동구청 맞은편 광장에 주민 50여명이 모였다. 천호역 근처 990세대 규모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는 데 반대하는 강동구 성내동 주민들이다. 이들은 '임대주택 결사반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6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바닥에 앉았다.

집회 대열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반대 위원회'의 이미란 위원장은 "임대주택 지으면 성내동은 다 망한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우리 주민들의 재산권을 방해하지 말라" 등 구호를 외쳤다.

임대소득으로 생활하는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의 주거지역 인근에 들어서는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고 나섰다. 값싼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지역 발전을 막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님비현상(NIMBY·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을 넘어서 세대 간 갈등이다.

청년임대주택이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추진하는 '역세권 2030 청년 주택 사업'으로 도심 역세권에 주변보다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해 청년(19~39세) 주거난을 해소하려는 정책이다. 서울 성내동과 영등포구 당산동, 마포구 합정동 등 도심에 2022년까지 임대주택 8만호를 지급한다는 목표다.

성내동 주민들은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면 기성세대들의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임대수입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점이 걱정거리다. 기존 세입자들이 이탈할 수도 있다.

이 위원장은 "성내동은 특히 낙후된 지역인데 임대주택이 세워지면 더 낙후된 곳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여기 있는 어른들 대부분은 전·월세 수익으로 생활하는데 노후대책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주택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내동에 33년째 살고 있다는 신모씨(60)는 "낙후된 건물 바로 옆에 지상 35층짜리 건물(청년임대주택)이 들어오면 누가 헌 건물에 살려고 하겠느냐"며 "지금도 한 달에 100만원도 벌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취재진에 "임대료 얘기를 하면 (기사에) 댓글이 안 좋게 달리니 그 얘기는 하지 말라"며 "'결국 청년이 아닌 민간업자에게 이익을 주는 꼴'이라는 입장문을 강조해달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청년임대주택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성내동뿐만이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는 반대하는 주민들이 청년임대주택을 '5평형 빈민아파트'라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다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영등포 당산2가현대홈타운 입주자대표회의' 간사 김모씨(66)는 "청년들을 비하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며 "5평짜리 아파트라고 하는데 인권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지역 역시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가 크다. 김씨 등이 영등포 아파트에 붙인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 건' 안내문에는 "아파트 가격 폭락, 빈민지역 슬럼화로 범죄 및 우범지역 이미지 손상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적혔다.

김씨는 "5평짜리 아파트가 들어오면 당연히 다른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지 않겠냐"며 "영등포는 낙후지역으로 안그래도 취약한데 하고 많은 지역 중 왜 영등포냐"고 말했다.

영등포 주민인 60대 여성 이모씨는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주변 환경이 안 좋아진다"며 "여기는 조용하게 잘 살던 지역인데 청년들이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소란을 부리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중인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공공정책인 청년주택사업이 일부 주민에게 님비시설로 여겨지는 것이 청년 입장에서 서글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을 둘러싼 세대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층 주거 문제가 심각하니 청년 주택을 공급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세대갈등만 더 심화된다"며 "기존 주민과 청년을 함께 엮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임대주택이 들어오더라도 자산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옛날 저소득층 임대주택을 생각해서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 같은데 청년들은 소비력이 있기 때문에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주민들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시설 등을 공급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청년임대주택 사업을 지역 주민들이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임대주택은 민간이 최신식 건물로 짓고 주변에 국립 어린이집 등 주민 선호 시설도 넣을 예정인데 지역 주민들이 과거 영구임대주택을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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