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적 공원 사라질 판인데..정부-지자체 여전한 '네 탓 공방'

김태윤 2018. 4.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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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지원 방안 발표
20년 이상 방치된 부지 서울시 1.2배
시급한 곳 우선 선별해 공원 조성 지원
지방채 발행하면 이자 절반은 국고로
지자체 "언 발에 오줌 누기 대책"
정부는 보상비 국고 지원에 난색
시민단체 "서둘러 근본 대책 내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있는 탄현근린공원은 이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소규모 공원이다. 숲 속 놀이터와 산책로가 있고, 배드민턴장과 풋살장 등 체육시설도 갖춰져 있다.

원래 탄현근린공원은 40만㎡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수립된 것은 44년 전인 1974년. 하지만 이후 장기간 방치되다가 2011년에서야 고양시가 100억원을 들여 약 3만㎡의 부지를 매입해 지난해 초 현재의 공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나머지 37만㎡는 여전히 방치돼 있다. 부지 내에 사유지가 많아 보상비 등 토지 매입에만 1000억원 이상이 필요한데, 시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4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한 시민단체가 도시공원 일몰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부가 탄현근린공원처럼 장기간 방치된 도시계획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16일 내놨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정만 해놓고 장기간 손을 놓고 있던 부지 중 꼭 필요한 곳을 우선관리지역으로 선별해 공원 조성을 유도하고, 지자체가 공원 조성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할 경우 5년간 지방채 이자의 절반을 중앙정부가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도시계획시설은 공원·도로·학교 등 도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로 지자체가 지정한다.
하지만 이번 지원 방안에 대해 지자체에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책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지자체의 재정난을 고려할 때 ‘찔끔 지원’으로 정부가 생색만 낸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해 놓고 미집행된 면적은 전국 1257㎢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605㎢)의 두 배를 넘는다. 이 중 20년 이상 방치된 면적만 703㎢다.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면 해당 토지 소유자는 땅을 팔 수 없고 원래 허용된 용도대로 토지를 이용할 수도 없다.

그런데 오는 2020년 7월 서울시 면적을 넘는 부지의 도시계획시설 지정이 해제될 예정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장기간 방치된 도시계획시설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년이 지나도 집행이 되지 않은 곳은 지정 결정이 해제되도록 2000년 관련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한꺼번에 도시계획시설 지정이 해제될 경우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공원이 일부 조성된 지역에서는 지정 해제로 공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십수 년 동안 이를 사실상 방치했고, 대규모 일몰 시점이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이번에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지원 방안을 발표한 것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도시계획시설 중 공원 조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미집행 됐지만 지역 주민이 공원처럼 이용하는 곳이나, 지정이 해제될 경우 난개발이 우려되는 부지 116㎢를 우선관리지역으로 선별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가 공원 부지 매입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면 5년간 지방채 이자의 최대 50%를 국고에서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가 추정한 국고 지원 규모는 5년간 약 3300억원, 최대 추정치는 7200억원이다.

또한 매년 지자체가 발행할 수 있는 지방채 한도 외에 추가 발행도 허용할 계획이다. 우선관리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선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단계적으로 지정 해제를 유도하되, 투기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지자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20년 이상 미집행된 도시계획시설을 집행하려면 토지 보상비와 공사비 등으로 116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서울시 예산(31조원)의 4배에 가깝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 재정 여건이나 지정 해제까지 2년이 남은 것을 고려할 때 모든 도시계획시설을 집행하는 사실상 어렵다”며 “조성이 필요한우선관리지역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부가 우선관리지역으로 지정한 116㎢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려 해도 14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의 대부분을 지자체가 마련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재정관리담당관실 관계자는 “대부분 지자체가 재정이 부족해 그동안 집행을 못 한 것인데, 지방채를 발행하면 이자 절반을 내준다는 정부 대책은 너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청계산 등산로. 청계산 공원의 70%는 사유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시는 도시계획시설 지정 해제를 사유지 보상을 위해 2020년까지 지방채 1조3000억원을 발행한다는 대책을 4월 초 내놨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에서 2020년 7월 일몰(해제) 예정인 부지를 모두 매입하려면 약 14조원이 필요한데 시 재정상 감당할 수 없어 일단 2.3㎢만 우선 보상 대상지로 결정한 것”이라며 “보상비의 50%를 국비로 지원해 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수년째 요청했지만 허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정부 대책대로라면 서울시가 우선 집행할 1조3000억원 중 국고로 지원해 주겠다는 이자는 150억원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경기도청 관계자 역시 “그동안 지자체에서 끊임없이 국비 지원을 요구했는데 지방 사무라는 이유로 기재부와 행안부가 반대했다”며 “이자 찔끔 주면서 지방채를 발행해 해결하라는 것은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말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책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미집행 시설 조성을 연계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한 지자체 관계자는 “미집행 시설을 포함하면 도시재생 사업 평가에서 가점을 준다는 게 전부”라며 “재정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자체도 할 말은 없다. 익명을 원한 행안부 관계자는 “그동안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임기 내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폭탄을 뒤로 미뤘고 관심도 적었다”며 “장기 미집행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는 지자체에 막대한 국고를 직접 지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도시계획시설 지정 권한은 전적으로 지자체에 있는데, 이제 와서 국고를 내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며 “그나마 이번에 지방채 이자를 국고로 지원하는 것도 국가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기재부로서는 전향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폭탄 떠넘기기를 하는 사이 공원 등 도시계획시설의 일몰 시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타협을 이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 27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은 “지자체는 장기간 방치된 도시계획시설 내 토지 소유자에 대한 보상 수단 등 재원 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중앙정부는 국고 보조, 세제 혜택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해결할 수 있다”며 “국회도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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