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전세 없나요?"..이주 앞둔 개포1단지 세입자 발 동동

황의영 2018. 4.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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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0가구 이주하는 개포1단지 가보니
이달 안에 주민 30% 이주 예정
수서 39㎡ 전세 한 달 새 2000만원 올라
강남서 아파트보단 다세대 전셋값 오를 듯
성남·남양주까지 영향권
지난 6일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7일 이주가 시작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황의영 기자
지하철 분당선 구룡역 인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지난 19일 오후 찾은 이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완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중 분양가와 추가부담금(입주 때 추가로 내는 돈) 등이 정해지는 마지막 단계로, 이 절차 이후 이주와 철거가 진행된다.

단지 내부를 30여 분간 둘러봤다. 504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데도 이삿짐을 실은 차량만 간간이 보일 뿐, 인적 없이 조용했다. 단지 내 상가의 일부 점포엔 '이전' 안내문이 내걸렸고,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았다. 구석엔 이주한 주민들이 버리고 간 폐가구와 가전제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올해 강남권 이주 예정 단지 중 가장 덩치가 큰 개포주공1단지가 주민 이주에 들어갔다. 지난 6일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7일 이주를 시작했다. 2003년 10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지 14년 6개월, 2016년 5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지 2년여 만이다. 이주 기간은 약 6개월로 9월 말까지다.

최영식 재건축조합 사무장은 "공가(빈집) 상태였던 집을 포함해 800가구 이상 이주했다"며 "이달 말까지 이주 계획을 낸 주민이 전체 가구 수의 30% 수준인 1500가구에 이른다"고 말했다.

아직 집을 비우지 못한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른 전셋집을 구해야 하지만, 저렴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최근 강남권 전세 시장 분위기가 꺾였다고는 해도 가격 수준은 절대적으로 비싸다.

특히 전체 이주자의 85%인 세입자의 경우 월세를 살거나 보증금 1억~2억원대에 전세를 살고 있어, 주변에서 살 만한 전셋집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내 공원에서 만난 전세 세입자 김모(65)씨는 "아직 이사할 곳을 찾지 못했다"며 "인근 수서, 대치동 일대 다세대주택을 알아봤는데 1억5000만원 갖고는 방 두 칸짜리 전셋집도 못 구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구석에 이주한 주민들이 버리고 간 폐가구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있다. 황의영 기자
집주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주비를 주택형별로 적게는 2억원대 후반, 많게는 4억원대를 받아서다. 한 중개업소 안에서 만난 집주인 박주현(가명·51)씨는 "초등학생 아들을 전학시키고 싶지 않아 되도록 이 주변에 집을 구하려는데, 3억원 밑으로는 갈 데가 없다"며 "빌라에 들어갔다가 '깡통 전세'(집값이 전세 보증금 아래로 떨어져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현상)가 될까 봐 겁이 나서 못 가겠다"고 말했다.

개포동의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은 주변 수서·구로구 쪽 소형 아파트로, 세입자는 송파·강동구 일대 다세대·다가구주택이나 경기도 성남·남양주시 소형 아파트로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초 2억9000만원에 거래되던 강남구 수서동 까치마을아파트 전용 39㎡ 전세가 최근 3억1000만원에 계약됐다. 인근의 H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용 59㎡ 이상 전세 시세는 요즘 주춤한 편인데, 초소형 전세 물건은 나오면 바로 소진된다"며 "개포주공1단지 이주 여파로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보고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국지적 전세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강남권 재정착이 어려워 이 지역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진 않을 것 같다"며 "다만 아파트 대체 상품인 연립·다세대주택이나 경기도 일대에 상대적으로 싼 아파트로 이동하는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2년 준공된 개포주공1단지는 기존 지상 5층 124개 동, 5040가구를 헐어 최고 35층 아파트 144개 동, 6642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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