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치 월세 미리 내라"..'깔세'에 멍든 대학가 원룸

이진혁 기자 2018. 5.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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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세명대 인근 원룸촌 집주인들은 1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1년 치 월세 450만원을 한 번에 받아 간다. 한 달 37만원꼴인 셈인데, 다른 지역 원룸 임대료와 비교하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학생이 원룸에서 기숙하는 기간은 방학을 제외하면 7개월 정도. 하지만 원룸 주인 대부분은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조건으로만 계약을 요구한다. 실제 이용 기간만 고려하면 월 64만원에 공과금 7만원 정도까지 더해 한 달에 70만원 넘게 내는 셈이다. 보증금을 뺀 월세만 놓고 보면 서울 도심 오피스텔 수준이다.

세명대 학생들이 대학가 원룸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세명대 총학생회 제공

지방 대학가를 중심으로 임대차 계약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받는 이른바 ‘깔세’를 조건으로 임대를 하는 집주인이 많아지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방 대학가의 경우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장기간 확보하기 위해 1년 안팎의 임대료를 한 번에 요구하는 경우인데, 중도에 방을 뺄 경우라도 남은 기간 월세분을 돌려받을 수도 없다. 깔세의 ‘역습’에 대학가 원룸촌에 기거하는 학생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다.

월세 분납을 꺼리는 대학가 원룸촌은 주로 지방 소도시에 많다. 제천 세명대와 강원 강릉시의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전북 익산시 원광대 주변 대학가 등이 그렇다. 이들 대학가 원룸촌은 보통 보증금 20만원 이하에 연 월세는 240만~700만원 정도다. 대개 1년 선납이 기본 계약 조건이다. 공과금은 별도다.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거의 1년 선납 조건으로 월세 계약이 이뤄진다”며 “방학 기간 방을 빼는 경우를 막기 위해 집주인들이 선납금을 받아 1년 보장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명대 재학생 임모(26)씨는 “등록금보다 비싼 1년 치 월세를 일시에 내는 것이 크게 부담된다”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을 구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지만 깔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가 원룸 주인들은 “1년 치 선납을 하면 월세를 추가로 할인해주기도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할인해주는 원룸은 대개 대중 교통을 이용해 통학할 정도로 학교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다”며 “말만 할인이지, 제값 다 받는 것”이라고 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방을 빼더라도 선납금은 돌려받기 어렵다. 1년 치 월세를 내고 세입자가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갈 경우, 집주인이 새 계약자를 바로 찾지 못하면 선납금을 돌려주지 않는 게 관행이 됐다.

원광대 재학생 김모(22)씨는 “3월 초에 입주해 봄학기 종강인 6월 말까지 4개월만 살고 방을 뺐는데 결국 1년 치 선납금 300만원 중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가 원룸촌(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의 모습. / 최지희 인턴기자

대학가 근처 원룸 주인들은 “지방 대학가 원룸은 공실률이 높아, 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깔세를 받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인중개사나 원룸 주인을 직접 거치지 않고 단기 임대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원룸을 계약해 사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재학생 김모(26)씨는 “학교 인근 원룸을 구하던 중 보증금이 없다는 온라인 광고를 보고 깔세로 원룸을 계약했는데, 이중계약 사기로 돈만 뜯기고 방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태일 우종환 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상 단기임대 보호 조항은 아직 없다”며 “임대인의 동의를 받으면 보호를 받을 수도 있지만, 단기임대를 특정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가 부족한 데다 입주 역시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 밖에서 1년 치 깔세를 내고 방을 구해야 한다. 원광대 기숙사는 재학생 기준 수용률이 22%에 불과하다. 세명대와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의 경우 각각 42%와 34.6%의 수용률로, 비수도권대학 기숙사 수용률 평균(24.4%)을 웃돌지만, 기숙사에 입주하는 게 만만치는 않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보통 신입생 위주로 기숙사 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원광대 재학생 조모(25)씨는 “기숙사가 모자라 학교 주변에서 방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선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하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학가 인근 행복주택 건립을 추진해달라’는 요구가 올라오기도 했다. 관련 청원인은 “월세 1년 치를 한꺼번에 내라는 것은 집 없는 청년들에겐 부담이다”라며 “월별로 따졌을 때 고액의 임대료를 내야 하는 청년들의 고통 분담을 위해 전국 대학가 인근에 행복주택을 짓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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