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1990년대 울산 현대重 노동자에 싼 아파트 공급하자.. 19년 연속 무파업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 2018. 5.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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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의 호모아파트쿠스]
노동자 대투쟁 바로 직후 직원 절반 8000명 무주택
"사원용 고층아파트 건설" C회장 판단은 적중했다
직원들, 工高 노동자에서 중산층 아버지의 삶 살자 의식 안정·보수로 바뀌어
1980년대 현대중공업 직원을 위해 지어진 ‘일산아파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80년 후반 노사 분규에 대한 대책으로 이런 형태의 사택을 8000가구 추가로 건설했다. / 조선일보 DB

1990년대 초반 C회장은 울산의 현대중공업 노동자 중 무주택자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확산일로에 있던 노사 분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 전체 노동자 1만6000명 중 약 8000명이 무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를 들은 C회장은 기존의 낡은 사원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원 분양용 고층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젠 근로자들이 집값 떨어질까 봐 데모 안 할 거야."

실제로 1992년 이후 4년간 약 8000가구의 아파트가 건설되었고, 분양가는 시세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이 아파트 입주자의 주축은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자였다. 1970년대 초반 이후 정부의 기능공 육성 정책을 통해 빈농의 자식에서 대규모 작업장의 숙련 노동자로 '근대화'되고, 19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미혼 남성 노동자에서 1인 생계부양 가족의 가장으로 '도시화'된 이들이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들이 저임금 압박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데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이 바로 파업 투쟁이 극심하던 1980년대 후반이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C회장은 이 점에 착안해 이들의 이해관계가 생애주기에 따라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 분유값 걱정이 지나가면, 전세 보증금 걱정이 눈앞에 닥치기 마련이니까. 임금 인상, 바로 그다음은 주거 문제였다. 그렇다면 C회장의 예측은 실제로 맞아떨어졌을까? 노조는 1995년 이후 19년 연속 무파업 사업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IMF 외환위기는 이런 변화의 정점이었다. 당시 중년의 한복판을 통과하던 노동자들은 더 이상 동년배 진보 지식인들이 '노동 해방의 전사'로 치켜세웠던 '공고 출신의 신세대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80년대'의 기억을 뒤로한 채 자녀 교육 문제와 함께 퇴직 후의 삶을 근심해야만 하는 중산층 아버지였다.

2006년 당시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이던 고(故) 이재영씨는 한국 노동운동이 정체된 이유가 "노동자들 재산의 89%가 부동산에 묶여 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사회의식이 안정과 보수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대기업들이 주택 마련 지원 중심의 기업 복지 정책을 추진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재영씨가 지적한 보수화 경향은 모든 세대의 노동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것은 기업 복지의 지원 사격 아래 중산층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특정 세대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잔업과 특근에 시달리면서도 조금씩 평형대를 넓혀 온 아파트는 그들에겐 생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었다. 집값은 그만큼 중요했다.

사실 이들의 방향 선회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는데, 왜냐면 동년배의 화이트칼라 중산층 일부 역시 이미 한발 앞서 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노학 연대'가 각자도생의 시류를 타고 21세기 '자산 연대'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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