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별곡] 무너지는 40년 상권.. "자업자득"

김정훈 기자 2018. 6. 1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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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이 무너지고 있다. 서울 한복판 교통의 요지, 국내 최대 수산시장이 손짓하는 곳. 청년 수만명이 공무원시험 합격의 꿈을 안고 불을 밝히는 공시촌…. 1970년대 후반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청춘의 꿈’은 노량진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최근 노량진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평화롭던 ‘백로의 땅’ 노량진은 왜 서울의 골칫거리로 전락했을까. <머니S>가 최근 노량진 공시촌과 수산시장 일대에 닥친 위기의 원인을 찾아봤다. -편집자-

노량진 지하 뷔페식당./사진=김정훈 기자
"모래시계에서 모래 빠지듯 공시생이 사라지고 있어. 여기 상인들만 몰랐지."

노량진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점차 활기를 잃어가는 이곳을 모래시계에 비유했다. 모래가 줄어들고 있지만 겉으로는 잘 티가 나지 않는 모래시계처럼 공시생이 하나둘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1970년대 말 정부의 도심기능분산정책에 따라 종로학원들의 대규모 이전이 이뤄지며 국내를 대표하는 공시촌으로 성장한 노량진은 정말 침몰하고 있을까. 2018년 6월 노량진의 모습을 살펴봤다.

◆인기 뷔페식당 폐업… 상인들 살길 찾기 혈안

현충일 하루 전인 지난 5일 오전 노량진을 찾았다. 통계상 노량진 공시생 유출이 본격화됐다지만 여전히 길거리에는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공시생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노량진 상권 입구./사진=김정훈 기자
노량진 고시촌./사진=김정훈 기자
노량진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동작경찰서 옆 골목으로 이어진 상권을 찾았다. 이곳은 노래방, PC방, 술집 등이 즐비한 유흥거리로 유명하다. 아직 오전이라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았거나 오후 장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는 가끔 노량진에 올 때마다 들르는 삼겹살집을 찾았다. "요즘 어떠냐"고 물으니 "안 좋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장 박모씨(43)는 "지난해 말부터 손님이 계속 줄었다"며 "매출이 20% 정도 떨어져 알바생을 1명 줄였다"고 말했다. 눈에 띈 것은 고기값. 기자가 지난해 방문할 당시 9000원이던 삼겹살 1인분 값이 1만원으로 올라있다. 박씨는 "공시생 상대로 장사하는 건데 나라고 가격을 올리고 싶었겠나. 수지타산을 맞추려니 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인근 양꼬치집을 찾았다. 사장 남모씨(45)는 "지난해 3월 최고 매출을 찍고 하락세를 타더니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며 "문제는 올해 말이 재계약시점인데 임대료가 더 오를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2016년 11월 2년 계약으로 꼬치집을 오픈했다. 오는 11월이면 재계약을 결정해야 하는데 매출이 크게 줄어 임대료가 오를 경우 가게를 접어야 할지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점심을 먹으려는 공시생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 고시텔에서 나온 공시생 무리를 쫒아가봤다. 그들이 찾은 곳은 노량진 3번출구 내부에 위치한 지하식당가. 이곳에서는 한식부터 중식, 뷔페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공시생 무리는 갖고 있던 식권을 내고 접시를 챙겨 뷔페를 이용했다. 음식값은 5900원. 특급호텔 출신의 요리사가 만든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지만 맛보다는 빈속을 채운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한 음식이다. 음식의 수준에 비해 가격이 공시생에겐 다소 비싸 보였다.

이달부터 매일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공시생 남모씨(29)는 "원래 고구려 고시식당을 이용했는데 지난달 문을 닫았다"며 "그나마 이 식당이 사는 곳과 가까워 자주 찾는다. 호텔요리사 출신이 조리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빨리 먹고 가는 게 목표"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남씨가 말한 '고구려'는 지난달 18일 폐점한 서울 노량진의 대표 뷔페식당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3000~4000원만 내면 그날 나오는 메뉴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공시생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갈수록 매출이 줄어 개업 8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용객 수가 꽤 많았던 고구려가 문을 닫을 정도니 다른 뷔페식당의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 뷔페식당 옆 점포 사장에게 5900원 뷔페가격이 다소 비싸지 않느냐고 묻자 "4000원짜리 고구려가 망할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냐"며 "5000원 이상 받지 않으면 뷔페식당을 운영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노량진 인기 뷔페식당 고구려 폐업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제본과 인쇄, 복사를 할 수 있는 업소가 많았다. Y문화사 앞 말 없이 담배를 태우는 중년남성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20년째 복사전문업체를 운영 중인 사장 정모씨(65)였다.
그에게 손님이 없냐고 묻자 "복사업체는 6월은 비수기다. 거리를 보면 알지 않나. 공시생 자체가 없다"며 "요즘에는 집에서 인강(인터넷강의)을 듣는데 누가 노량진을 찾아오고 제본을 하겠나. 업체에서 오는 대량주문이 아니면 이미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젊은층 기호 못 따라간 상인, 자업자득" 
고시텔 입구 빈방있음 공지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각종 고시학원이 모여있어 '고시촌'이라 불리지만 사실 노량진은 거대한 숙박촌으로 봐도 무방하다. 수많은 공시생이 이곳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어서다. 자연스레 노량진은 고시텔, 고시원, 원룸, 공부방 등 임시숙소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공시생 이탈이 이어지면서 이들 업소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흥거리 안쪽으로 들어가자 많은 고시텔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문구는 '빈방 있음'이다. A고시텔 아르바이트생 김모씨(30)는 "객실 15개 중 6개가 빈방"이라며 "각종 시험이 끝나는 기간에 공실이 많아진다. 이 시기에 빈방이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인근 공인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실태를 물었다. 원룸 수요가 크게 줄었단다. 업주 추모씨(61)는 원룸 공실사태는 상인들 탓도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업주들 스스로 안일했던 측면이 있다"며 "원룸 중개를 하며 너무 열악한 시설에 민망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추씨는 "노량진에 사람이 몰리니깐 너도나도 집을 개조해 숙박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숙소가 기본적으로 너무 더럽고 살기 불편하다"며 "기본골격은 '노인'인데 외관만 '청년'으로 만들어놨다. 노량진에 전국 공시생이 몰리니 앞으로도 오겠거니 생각하고 겉만 번지르하게 만들어 놓았을 뿐 다른 노력이 없었다. 공시생 유출은 고시촌 주인들의 자업자득으로 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M학원 휴게 및 공부 공간./사진=김정훈 기자
M학원 지하 헬스장 모습./사진=김정훈 기자
그나마 남아있던 공시생은 대형학원 인근 상가로 몰린다. 골목길 낮은 고시촌 너머 솟아 있는 M학원 건물을 찾았다. 내부에는 헬스장부터 구내식당·편의점·독서실·휴게실·제본실 등 고시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굳이 다른 용무를 보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을 정도다. 

5층은 휴게실 겸 도서관인 문화공간으로 구성됐다. 이곳은 학원 수강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일정요금을 내면 이용이 가능했다. M학원 관계자는 "공시생 대부분이 젊은층이기 때문에 트렌디하게 꾸미고 휴게시설에도 신경 썼다"고 강조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학원은 자체 식당과 편의시설을 건물 내부에 입점시킨 상태다. 

노량진 거주 공시생의 꿈은 시험에 합격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곳 상인들도 노량진을 벗어나려 하지 않을까. 40년간 쌓아온 노량진 모래성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4호(2018년 6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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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kjhnpc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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