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역전세난에 떠는 '갭 투자 성지'

이지은 기자 2018. 6.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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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을 연초보다 5000만원이나 낮췄는데도 세입자가 안 나타나서 속 끓이는 집주인이 수두룩해요.”

지난달 30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A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이 지역에서 10여 년간 중개업소를 했다는 김모씨는 “전세 매물은 쌓여가는데 세입자를 찾을 수 없어 집주인들한테 미안할 정도”라며 “요즘은 전셋집 보러 오는 세입자보다 집주인들이 훨씬 더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집을 전세로 내놓았지만, 찾는 이가 나타나지 않자 ‘혹시나’하는 마음에 집주인들이 중개업소를 수시로 찾는 것이다.

‘역(逆) 전세난’ 우려가 경기 남부권과 서울 강남에 이어 서울 강북으로 ‘북상(北上)’하고 있다. 역전세난이란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계약이 끝나가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현상이다. 강북 지역에선 성북구 길음뉴타운과 동대문구 답십리동이 대표적이다.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왼쪽)과 동대문구 답십리동. /땅집고


길음뉴타운과 답십리동 일대는 교통이 편리한 서울 강북의 대표 주거밀집지역으로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아 속칭 ‘갭(gap) 투자의 성지(聖地)’로도 유명했다. 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집값과 전세금이 싼 동네여서 전세 세입자가 몰려들었고, 덩달아 갭 투자자도 늘었다.

하지만 이 지역들에 내년 초까지 새 아파트가 대거 입주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2~3개월 전세금이 3000만~5000만원씩 뚝뚝 떨어지고 있다. 답십리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답십리동아아파트 34평 전세의 경우 작년 말엔 로열층이 3억8000만원 정도였는데,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 5000만원씩 떨어진 곳도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8년, 성북구 9년만에 입주 물량 최대

서울시 동대문구와 성북구의 연도별 입주 물량 추이. /부동산114


부동산정보회사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성북구 내년 입주량은 6343 가구로 9년 만에 최대치다. 동대문구 역시 2010년 3116가구가 들어선 이후 입주량이 가장 많다. 올해 2357가구, 내년 2171가구가 입주하면 평균 3171가구에 달한다. 3000가구 이상이 동대문구에 입주하는 것은 8년 만이다.

올해 6월 입주하는 동대문구 답십리동 '힐스테이트청계' 아파트. /이지은 기자


답십리동에는 올해만 3개 단지가 입주한다. 올 5월 래미안답십리미드카운티(1009가구), 6월 힐스테이트청계(764가구), 6월 동대문롯데캐슬노블레스(684가구)다. 내년 1월에는 802가구 규모의 답십리파크자이 입주도 예정돼 있다.

성북구 길음뉴타운에 들어서는 2352가구 규모의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아파트. /이지은 기자


길음뉴타운에선 길음뉴타운롯데캐슬골든힐스(399가구)와 래미안길음센터피스(2352가구)가 내년 1, 2월에 잇따라 입주한다. 래미안길음센터피스는 2010년 이후 처음 들어서는 대단지여서 길음동 주민들뿐 아니라 강북 전역 실수요자 관심이 몰려 있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은 입주 무렵 전세금이 폭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벌써부터 세입자 구하기에 혈안이다. 길음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대출을 최대한 끌어쓴 분양자들은 적절한 가격에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자금 흐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59㎡ 아파트 평균 전세금 추이.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답십리동의 청솔우성1차 아파트(2000년 3월 입주) 59㎡ 전세는 작년까지만 해도 3억원 안팎에 거래됐다. 올 4월에는 2억65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되는 등 크게 하락했다. 작년 말 4억5000만~4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답십리동 래미안위브(2014년 8월 입주) 59㎡ 전세도 올 5월엔 4억원, 4억2000만원에 각각 거래됐다. 길음동의 D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새 아파트 입주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전세금 하락 폭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80% 웃돌던 전세가율 60~70%대로 폭락

성북구 길음뉴타운과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아파트 전세가율 추이. /부동산114


답십리동과 길음뉴타운은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워낙 높았던 지역이어서 전세금 하락 속도와 폭도 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평균 아파트 전세가율은 작년 말63~65% 정도였는데, 답십리동은 78%, 길음동은 82%로 서울 최고 수준이었다. 고공행진하던 전세가율도 불과 6개월여만에 7~8%씩 급락했다.

■“향후 2년 매매·전세 약세…물량 소화 시간 필요해”

길음뉴타운과 답십리동 일대 주택시장에선 전세금 하락세가 집값 하락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길음동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2000가구가 넘는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입주가 본격화하는 연말쯤이면 기존 아파트 집값도 아무래도 떨어지지 않겠나”며 “집주인들은 전세도 걱정이지만 집값 하락을 더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통상 전세금 시세는 매매 시세의 선행지표 역할을 해왔다. 보통 전세금 하락 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매매가 하락 현상이 나타났다. 이 지역의 전세금이 하락하면 다(多) 주택자들이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매물을 하나둘씩 시장에 내놓기 시작해 가격 하락세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편이다. 공급 증가 가능성은 높지만 각종 규제 정책으로 주택 수요가 늘어날 요인은 거의 없다.

연도별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금 상승률 추이(연도말 기준. 단위:%). /국민은행


전세금 하락은 세입자에게 주거비 부담 감소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미 세들어 살던 전세 세입자는 ‘위험’ 요인이 커진다. 집값과 전세금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 전세’가 우려되는 탓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답십리나 길음뉴타운의 아파트 전세금과 매매가는 적어도 2년은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다만 서울은 인구 밀집도가 높고, 이 지역 역시 ‘입주 폭탄’ 수준으로 물량이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전세금이나 집값이 급락 수준까지는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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