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오른다" 믿음 깨진 일본의 부동산 사용법

이상빈 기자 2018. 6. 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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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방한한 일본 부동산 전문가들이 땅집고와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마츠다 타카유키 하세코 라이브넷 이사, 나카야마 요시오 자이맥스 부동산종합연구소 대표, 요시무라 류이치 자이맥스 트러스트 대표. /젠스타 제공


“일본이 지난 20년 동안 배운 교훈은 부동산에서 시세차익보다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1991년 버블(bubble)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며 불황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부동산 과잉 공급과 지방 산업 약화, 인구 고령화 등에서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일본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지금부터 투기보다 투자로 마인드를 바꾸고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높이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땅집고는 지난달 25일 국내 부동산관리업체 ‘젠스타’와 ‘메이트플러스’가 공동 주최한 일본 부동산 시장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일본 부동산 기업 임원단을 만났다. 일본 최대 부동산 자산·시설관리 회사인 자이맥스 산하 자이맥스 부동산종합연구소 나카야마 요시오 대표와 요시무라 류이치 자이맥스 트러스트 대표, 일본 임대주택 시장 선두 업체인 라이브넷의 마츠다 타카유키 하세코 이사였다. 세명 모두 일본 부동산·금융업계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부동산 전문가들이다.

1980년~1990년대 초반 일본 공시지가 변동률. 1991년 공시지가가 하락세를 보이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다. /조선DB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 ‘잃어버린 20년’은 어떤 의미이며, 얻은 교훈은?

▶나카야마(이하 나): 1991년 일본 버블 붕괴는 큰 사건이었다. 그 전까지 일본 경제는 고도 성장했고 부동산 가격 역시 급등했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 1983~1991년까지 3.5배 올랐던 일본 부동산 가격은 그 이후 20년 가까이 하락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사람들의 가치관과 ‘부동산 사용법’도 달라졌다.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이 바뀌었다. 버블 붕괴 전엔 어떤 부동산을 살 것인지 고민했다면 그 이후엔 부동산을 통해 어떻게 부가가치를 올린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츠다(이하 마): 버블이 있었을 땐 사람들이 부동산을 살 때는 ‘시세차익’(capital gain)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만 하다 보니 가격도 실제로 올랐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토지 신화’라고 불렀다. 하지만 버블 붕괴 이후엔 그 믿음이 깨졌다. 그러다 보니 개발할 때도 차익보단 수익을 생각하게 됐다.

그 전엔 일본도 부동산을 이용한 정교한 산업이나 비즈니스를 발전시키지 않았지만 버블 이후엔 그런 고민도 크게 늘었다. 부동산을 거래할 때 판단하는 방식이 정교해졌고 부동산 금융 시장에서도 시세 차익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일본 부동산 산업은 부동산에 어떤 산업을 접목하고, 어떤 돈을 벌 수 있을지 다양하게 평가하는 종합적인 비즈니스로 발전했다.

▶요시무라(이하 요): 차익보단 수익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기 때문에 일본에선 오피스든, 임대주택이든 수익성을 평가하는 방법론이 보편화됐다. 디플레이션 사회여서 물가나 임금이 오르지 않아 부동산 임대료 역시 상승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수익성을 높일까를 고민하는 버릇이 생겼다. 부동산 금융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주택 임대·매매 광고가 내걸린 일본 도쿄 거리를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불황을 겪다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제공


-일본 사람들에게 부동산 투자가 갖는 의미는 어떻게 변화했나?

▶나: 현재 일본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중장기적인 투자처다. 10년에서 20년 정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을 내려고 투자한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이 배운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투자를 더 세련된 형태로 하고 있다.

▶마: 일본은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한국과 다른 것 같다. 투기하고 싶은 사람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한다.

잡초가 무성한 도쿄 도심의 빈땅. 바로 옆 주택도 빈집이다. 인구구조 변화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일본 땅값은 199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빈집도 늘었다. /조선DB


-일본이 불황에서 배운 부동산 사용법이란?

▶나: 부동산 시장은 크게 이익 볼 수도 있지만, 언젠가 크게 실패할 수도 있다. 경제 성장 없이는 부동산 시장 성장도 없다. 경제가 나빠지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다. 따라서 부동산을 오래 보유하려면 귀중히 다뤄야 하기에 청소도 깨끗이 하고, 설비나 유지 보수 등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요: 부동산 투자뿐만 아니라 부동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배우고 있다. 수익률을 잘 내려면 건물이 깨끗해야 하고, 어떤 임차인이 들어와야 건물의 가치를 가장 극대화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산업 전반의 트렌드도 생각해야 한다. 산업 전반에 대한 연구가 부동산 투자에 꼭 필요한 셈이다.

요시무라 류이치 자이맥스 트러스트 대표는 일본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요인 20개를 뽑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이맥스 부동산 제공


-건물 가치 극대화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요: 임차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2020년 도쿄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춰 기존 건물을 숙박 시설로 바꾸는 사례도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저출산·고령화, 지방균형 발전, 스마트 시티, 여성의 사회진출 등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거시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 일본은 임대주택 시장이 발달돼 있다. 임대주택은 같은 입지라도 건축 후 경과 연수가 변화하면 수익률도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래된 주택이라도 관리를 잘하면 노후화 현상을 늦출 수 있다. 수선이나 청소 경비를 지출하면서 관리를 철저히 한 건물은 장기적으로 보면 수익성이 높아진다. 건물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건물 공급이 많고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건물을 그냥 공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수요를 파악해야 한다. 오피스 시장의 예를 들면, 사람들은 휴식 공간을 배치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춘 오픈된 회의 공간이 있는 건물을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오피스 평면도 입주자 선호를 반영해 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의 부동산 산업이 지역의 작은 중개업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 기업 중심의 비즈니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나카야마씨는 “한국의 부동산 산업이 부동산 관리(PM), 시설 관리(FM) 등 기법에서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정교화돼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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