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전세자금대출, 또 다른 '가계빚 뇌관' 될까

하현옥.황의영 2018. 6. 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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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전세대출 72조원으로 급증
주택담보대출 옥죄자 '풍선효과'
변동금리 비중 높아 채무자 위험 커
한은 "시장 충격은 크지 않을 것"

길이 막히면 돌아가기 마련이다. 가계부채도 닮은꼴이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과 대출 규제를 도입하며 주택담보대출을 틀어쥐자 전세자금대출이란 우회로가 넓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1분기 말 가계부채는 1468조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의 관리 목표치에는 부합했다. 증가 속도가 늦춰졌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가계 빚의 새로운 양상이 드러나서다.

올해 들어 가계 빚 증가를 주도하는 건 전세자금대출이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1분기 전세자금대출은 72조2000억원이다. 2014년(35조원)보다 2배로 늘었다. 지난 1~3월 증가액만 6조3000억원에 이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은행은 “아파트 신규 입주 증가 등으로 인해 전세보증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금융기관이 전세자금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건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분석된다. 각종 규제를 비껴가는 우회로이기 때문이다.

우선 빚을 낼 수 있는 액수가 주택담보대출보다 많다. 이남수 신한은행 서초PWM센터 PB팀장은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쏟아내면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의 40%까지 빌릴 수 있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 도입된 대출 규제장치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전세대출에는 느슨하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땐 원리금이나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 기존 대출을 모조리 고려해 대출 한도를 구하는데 전세대출만 예외적으로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반영한다. 대출 금리도 주택담보대출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4월 고시금리를 기준으로 14개 은행의 대출 상품을 단순 평균한 결과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연 3.4%로 비슷했다.

전세자금대출은 대부분 한국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서울보증보험 등 공적 기관이 보증을 해야 나간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정 시 적용되는 위험가중치도 주택담보대출보다 낮다. 게다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 국면에서 은행의 수익성 제고에도 유리하다. 은행들이 영업에 적극적인 이유다.

전세자금대출의 가파른 증가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2일 공개된 5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은행이 다른 가계 대출보다 전세자금 대출의 위험관리를 덜 한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대출은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성격의 대출이지만, 주택담보대출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만큼 채무자의 위험은 크다”고 말했다.

다른 변수도 있다. 전셋값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전세 자금을 대출받은 차주가 빚을 갚기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전세보증금 중 전세자금대출이 70%를 넘는 경우가 전체의 42%나 된다. 2013년 21%에서 2배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말부터 전셋값 하락세는 뚜렷하다.

한국은행은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세 임대인과 전세자금을 빌린 차주의 신용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에서 고신용(1~3등급) 차주 대출 비중은 81%였고, 다중채무(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경우)자는 25%에 불과했다.

변성식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안정총괄팀장은 “전세자금 대출 차주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차주보다 고신용자 및 다중채무자 비중이 작아 가계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황의영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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