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회사 따라 이사하다 '똘똘한 한채' 마련했어요"

윤아영 입력 2018. 7. 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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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성공기 (20)
서울 대치동 일대 아파트 단지. 한경DB


결혼 25년차인 김정연(49·여)씨는 결혼 후 이사를 3번 했다. 직주근접을 중요시 여기다보니 회사를 옮기거나 회사 사무실이 이전할 때마다 따라서 이사했다. 김 씨 가족의 마지막 종착지는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다. 내 집 마련을 하고 정착한지 15년만에 이룬 결실이다.
  
김 씨의 신혼집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백마마을 전용면적 59㎡ 아파트였다. 파주에 살던 시댁이 1994년 당시 조성됐던 일산신도시의 새 집을 신혼집으로 마련해줬다. 매매가격은 8500만원. 제법 큰 돈이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게 문제였다. 출퇴근에 왕복 2시간이 걸렸다. 남편 회사도 친정도 여의도였다. 마침 첫 아기를 임신했다.

결국 2년 만에 서울로 진출했다. 일산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여의도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왔다. 신도시라 일산의 아파트 값이 계속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산 아파트 가격은 조금씩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반면 여의도 아파트는 벌써 준공후 20년이 넘었다. 낡은 아파트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전세를 선택했다. 이미 집 한 채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한 채를 더 산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여의도에서 4년을 살던 중 이직하게 됐다. 옮긴 회사는 광화문에 있었다. 마침 집주인이 집을 빼달라고 했다. 1998년 즈음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사업을 하던 집주인이 사정이 안좋아졌다. 다른 자산을 다 처분하고, 그 집에 다시 들어와 살려는 계획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했다. 
 
이번엔 서대문의 오래된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다. 외환위기를 맞아 전국의 집값이 폭락했다. 매매는 꿈도 못꿀 시기였다. 내집 마련을 준비하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매매 대신 전세를 택했다. 남편은 부동산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불안해서 일산 아파트도 처분하고 싶어했다. 중개업소에 내놓았지만 몇 달간 매수자가 없어서 못팔았다. 내 집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 뿐 서대문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회사도 가까웠고, 칼퇴근이 가능해 두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좋았다.
 
변화는 신규 사업부로 발령이 나면서 찾아왔다. 사무실이 강남 대치동의 한 빌딩이었다. 마침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어서 교육에 고민이 클 때였다. 김 씨는 대치동 학원가가 가까운 아파트를 알아봤다. 발품을 팔아보니 대치동 아파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쾌적한 데다 유해 환경이 없었다. 

고민은 집을 사느냐 전세로 사는냐였다. 김씨는 매입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자녀 교육을 마치려면 최소 10년은 대치동에 거주해야 했다. 전세로 사는 것은 불안했다. 남편은 반대했다. 부동산으로 돈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이었다. 김 씨는 대치동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주변의 성공 사례도 들었다. 대치동으로 이사한지 2년만에 집 값이 오르고, 딸이 원하던 과학고에 진학한 지인 얘기였다. “더이상 전세를 전전하기 싫다”는 말에 남편은 결국 매입에 동의했다. 

2003년 강남 부동산시장은 뜨거웠다. 대치동 대단지 전용 84㎡ 매매가는 5억원에 가까웠다. 일산 아파트를 정리하고 대단지 옆에 붙은 1개동짜리 아파트(전용 84㎡)를 4억5000만원에 샀다. 강남 아파트는 불패였다. 매년 집 값이 올랐다. 금융위기가 한차례 찾아왔지만 그때도 끄떡없이 지나갔다. 대치동 아파트는 현재 15억원을 호가한다.

김 씨는 대치동 아파트값 추이를 보면서 안정적인 부동산은 위기에도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자돈을 모아 다른 부동산 투자에 나선 이유다. 맞벌이 부부라 대출을 받기도 쉬웠고, 자금 모으기도 수월했다. 김 씨는 홍대 인근의 꼬마빌딩을 샀다. 매달 월세가 꼬박꼬박 나오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면서 퇴직 후 노후대비도 미리했다. 집을 사지 말자고 투덜거리던 남편도 김 씨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돌이켜 보면 사무실이 강남으로 이전한 게 재테크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주변을 둘러봐도 회사 위치에 따라 재테크의 희비가 갈린 사례가 많다. 일산에 터를 잡은 강북 직장인들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분당에 자리잡은 강남 직장인들은 어깨에 힘주고 다닌다. “저는 운이 좋아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내집 마련을 할 때 직장 출퇴근 편의성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직장 근처에 전세를 살더라도 능력이 된다면 내집마련은 내재가치가 높은 곳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치 대비 저평가된 곳, 향후 가치가 크게 올라갈 곳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리=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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