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손전화 흔하지만 인터넷은 불통..과학자 위한 고층빌딩 '눈길'

입력 2018. 7. 21. 14:16 수정 2018. 7. 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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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김한정 의원의 3박4일 평양 방문기

[한겨레]

지난 18일 낮 평양의 냉면 전문점인 옥류관 건물 앞에서 평양의 한 여성이 양산으로 해를 가린 채 휴대폰 통화를 하고 있다. 김한정 의원 제공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김홍걸 대표상임의장과 김한정 집행위원장(민주당 의원) 등 일행 3명은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남북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위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후 남한의 고위인사가 평양을 방문해 며칠간 머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겨레>는 이들의 방북 이전에 김한정 의원에게 체류기를 써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김 의원은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글을 보내왔습니다.

7월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남북 민간 교류를 재개하기 위한 민화협 차원의 방북이었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한 지 18년 만이다. 그때는 대통령 전용기로 1시간 걸리던 길이 베이징을 거쳐 가다보니 1박2일이 걸렸다.

16일 아침 일찍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은 뒤 정오쯤 서우두 공항에서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베이징에서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는 비행이었다. 18년 전과 달리 평양 순안공항은 현대식 새 건물이었다.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보안 요원이 휴대전화와 카메라 안에 든 사진과 동영상까지 점검했다.

“방문목적이 무엇입니까?” “북측 민화협과 남북간 교류협력사업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자, 더 묻지 않고 비자에 스탬프를 찍어줬다.

평양의 공기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18년 만의 평양 방문은 감회가 새로웠다. 2000년 평양방문 당시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전 예고 없이 공항에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평양 백화원 초대소로 향하는 도로에는 50만 명이 넘는 평양 시민들이 늘어서서 대대적인 환영을 해줬다.

지난 17일 저녁 평양 보통강호텔 회담실에서 김홍걸 대표상임의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김한정 집행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우리쪽 민화협 대표단이 북쪽 대표단과 회담을 하고 있다. 김한정 의원 제공
18일 저녁 대동강의 유람선인 <무지개봉사호>가 환히 불을 밝히고 있다. 김한정 의원 제공

전화 로밍도 인터넷도 불통

이번에는 북측 민화협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왔다. 인사를 나누고 준비된 차량으로 평양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향하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차가 많지 않아 30여분 만에 숙소인 보통강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와 커피숍에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는데, 중국 관광객보다는 중동, 중앙아시아 쪽 사업가들이 많았다.

호텔 도착 직후 일정을 협의할 때 나는 김일성대학과 시내 호프집 등을 방문해서 평양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북측은 상부와 협의해보겠다 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다음 기회에 추진해보자는 답이 왔다. 대신에 평양교원대학을 가기로 했다.

방북 이틀째 이동하는 차 안에서 거리를 촬영하자, 동승한 북측 관계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으나 제지하지는 않았다. 김일성광장을 지나는데 광장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 70주년 퍼레이드 연습에 한창이었다.

평양 거리에는 곳곳에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차 있어 최근 수년간 평양의 건설 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책공대 주변에는 과학자, 교수, 연구원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북측 관계자는 “유엔의 제재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의 노력으로 북한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면서 “제재가 없다면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거리마다 선전구호는 넘쳐났지만, 반미구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과의 오랜 대치 과정에서 거친 언사와 표현이 일상화되어 왔지만, 이번 방북기간 북측 인사의 대외 비방 언사는 전혀 없었다. 김일성 수령, 김정일 장군, 김정은 원수를 찬양하고, 단결하자는 구호는 곳곳에 수없이 걸려있고, 호텔식당과 공공건물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실내 공간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은 드물었다.

평양 거리에는 새로운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아파트 상가의 건강식품 판매소와 결혼식 식당 등이 눈길을 끈다. 김한정 의원 제공
지난 17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모인 학생들이 북한정권 수립일인 9·9절에 선보일 퍼레이드 준비를 하고 있다. 김한정 의원 제공

360만 대가 넘는 휴대전화(손전화라고 부른다)가 보급돼 있는 평양 거리에서는 휴대전화 통화를 하면서 분주히 걷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접속은 안 됐다. 인터넷은 따로 신청서를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제전화 로밍도 안 됐다. 중국 전화기를 들고 온 사람들은 국제통화가 가능했다. 호텔 내에서건 밖에서건 신용카드도 안 통했다. 국제 제재 때문이기도 했고, 내부 통제 탓도 있다. TV는 러시아와 영어 방송, 알자지라 방송, 중국 CCTV와 NHK 위성방송, 그리고 사극 위주 영화와 북한 가요 채널뿐이다. CNN이나 BBC 등 서방 채널은 없었다.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라 정치 정세에 대한 대화는 서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에둘러 묻지 않았다. “제재 때문에 북이 대화에 나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반박이 나왔다. “수십 년 간 제재 속에 살아왔고, 최근 몇 년 간은 물샐 틈 없이 죄는 압박에도 견뎌왔습니다. 당치 않은 말입니다. 핵 무력을 완성했으니 경제 발전에 집중하자는 국무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과학기술전당엔 곳곳에 장애인 배려

그러나, 제재는 분명히 평양의 곳곳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관광객이 급감했다고 했다. 물자 유통도 차질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사회는 평온해 보였다. 거래가 불편하고 수입도 원활하지 않지만, 길거리에선 차가 분주히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가로등은 어둡지 않았다. 쌀값 등 생활물가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는 전언이다. 신기할 정도였다. 길거리 시민들의 옷차림은 단정하다. 양산을 든 세련된 모습의 여성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제재는 북한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다. 제재 지속 상태로는 북한이 바라는 경제 집중, 과학기술 강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외자 유치도, 경제 특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북경협도 앞으로 못 나간다. 북의 엘리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북과 남이 화해협력을 힘 있게 해나가야 할 때 남쪽은 제재 국면을 이유로 들면서, 말로만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철도도 도로도 제재 때문에 연구와 준비만 하자고 말합니다. 연구와 준비는 이미 되어 있습니다. 북측과의 경제사업도 남쪽이 사실상 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불만이 많습니다.” “최신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려 해도, 최신 컴퓨터도 못 들여오고 우리 자체 기술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북 적대를 안 하고 관계 개선을 하겠다면 제재를 마땅히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측은 남쪽이 교류협력 사업들을 미루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평양의 서점 중 하나인 ‘종로학생책방’ 앞거리를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차림새로 걸어가고 있다. 김한정 의원 제공

17일 우리 일행은 평양교원대학과 과학기술전당을 둘러봤다. 평양교원대학은 유치원과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 교원을 배출하는 3년제 대학이다. 남한처럼 여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학장은 자부심 가득한 어조로 “올해 1월 국무위원장께서 친히 방문해주시고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며 “증강현실(VR) 등 고급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여 가상수업을 하고, 3D기술을 활용한 교재를 개발하는 등 디지털활용 수업법을 개발하고, 적용해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실에서는 마침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법을 실습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중학교부터 기초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평양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과학기술전당은 2016년 건립된 초대형 건물이다. 8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지열로 난방하고,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첨단 녹색건축물이라고 해설자는 소개했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정책의지가 반영된 시설이다. 전체 열람석의 80퍼센트는 디지털열람시설로 되어 있고, 어린이와 학생들의 과학 탐구심을 북돋는 각종 체험시설과 모형이 갖춰져 있다. 대형 회의시설과 4D상영관도 들어서 있다. 20층이 넘어 보이는 부속건물은 과학자와 연구자들을 위한 호텔형 숙박시설이었다. 이외에도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등 과학자를 위한 시설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전당에는 장애인을 위한 특별열람실이 있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프린트도 구비되어 있었다.

지난 2016년에 완공된 평양의 과학기술전당은 새로운 랜드마크이다. 과학 연구와 실험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열람실도 따로 있었다. 과학기술전당 건물 중앙에 전시된 북한의 장거리 로켓인 은하3의 모형. 김한정 의원 제공

“민화협이 민간교류 가교역할을”

17일 오후 국가선물관(북한 내부와 해외에서 보내온 각계각층의 선물을 주로 전시)을 찾은 데 이어 18일 오후에는 우리의 국회의사당격인 만수대 의사당을 방문했다. 만수대 의사당은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북측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김영대 의장을 만났다. 그는 80이 넘은 고령인데도 건강했고 목소리도 짱짱했다. 김 의장은 김홍걸 남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의 역사적 성과를 거론하며, “새로운 평화시대에 민족단합을 이루어 나가는 데 도전 요인도 잘 파악해서 극복해나가자”고 말했다. 북측과 남측 민화협은 4·27 판문점 공동선언으로 조성된 남북화해협력시대에 민간 교류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자는데 합의했다. 앞서 16일 저녁 만찬 때 양철식 북한 민화협 부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에게 각별한 예를 표했다.

3박4일 방북 기간 북측 인사들과 오찬과 만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마다 북측 인사들은 '우리민족끼리 잘 해나가자'고 힘주어 말했다. 비핵화 북미대화와 협상이 순탄치 않음을 반증하는 말이지만,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는 미-북 뿐 아니라 남북간도 신뢰를 쌓아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평화는 남쪽에도 절실하지만 북의 생존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방문 때는 안내원 없이 내 발로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맥주집에서 평양의 청년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19일 오전 순안공항을 떠났다. 글·사진 김한정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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