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꿈꾸다 둘로 쪼개진 잠실주공5단지

이지은 기자 2018. 8.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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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취임 후 처음으로 50층 재건축 승인 받은 단지
조합 나뉜 뒤 내분 격화..사업 예정대로 추진될지도 미지수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조선DB


“50층으로 지을 수 있도록 서울시 허가 받은 이상 최대한 빨리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재건축은 속도가 생명이다”

“그런 설계로 아파트 단지 지어봐야, 그저그런 아파트가 돼 사업성이 별로 없다.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짓는게 낫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아파트 단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재건축이 사업이 혼돈에 빠졌다. 재건축 사업 추진 주체가 둘로 갈라져 갈등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잠실주공 5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층고 제한(35층)을 넘는 50층 재건축이 가능한 아파트 단지다. 50층 이상 승인을 받은 덕에 올 상반기만 해도 집값이 급등했고, 주민 기대도 컸다.

하지만 불과 2~3개월 만에 분위기가 급전직하했다. 사업 추진 주체가 둘로 쪼개지면서 내분이 격화되면서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될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 국제현상설계 공모 대상지./조선DB


당초 잠실주공 5단지는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층고도 35층 이하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재건축 조합측은 이 지역을 ‘광역중심지역’으로 인정받아 단지 내에서 잠실역과 가까운 모서리 부분을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최고 50층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50층 재건축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일부 부지에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채택된 설계안을 적용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서울시 주도로 국제공모전이 진행되던 중 설계안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조합원 간에 내분이 시작됐다. 서울시 설계안에 반대하는 조합원 1100여명은 ‘잠실5단지 주민회’를 따로 만들면서 반발하고 있다.

땅집고는 잠실 주공 5단지의 재건축 설계안을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취재했다.

■단지 양분하는 도로와 학교 부지 이전으로 조합원 불만 커져

공모전 당선자인 조성룡 건축가가 제시한 잠실주공5단지 조감도. /UBAC조성룡도시건축
토문건축이 제시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감도./ 토문건축


현재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첫번째 쟁점은 국제공모전 당선작 자체에 대한 불만이다. 당초 주민들과 서울시는 ‘서울의 랜드마크 아파트’라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막상 공모전 당선작을 본 일부 주민들은 “랜드마크는 고사하고 성냥갑 아파트가 될 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반대 주민들은 “서울시가 국제공모한다고 해서 대단한 작품이 나올 줄 알았더니 비 전문가 눈으로 봐도 수준이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연결된 '민주적으로 열린 공공마당'이 자칫 시위 장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UBAC조성룡도시건축


두번째 쟁점은 ‘잠실 광장’이다. 서울시가 당선작으로 뽑은 설계안에서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맞닿은 단지 남동쪽 광장에 ‘민주적으로 열린 공공마당’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주민들 사이에선 “아파트 단지에 ‘민주 마당’이 뭐냐”며 “박원순 시장이 시민단체 출신이어서 아파트 단지에도 시위 공간을 만드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형 아파트 단지 설계에서 흔히 등장하는 여유 공간인데, 서울시의 ‘좌파 코드’를 맞추기 위해 공모전에 응모한 건축가가 ‘이념형’ 설명을 붙이면서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주민들은 4차로 도로가 3종 일반주거지역(빨간선 위쪽)과 준주거지역을 양분하는 설계안에 반대한다. /UBAC조성룡도시건축


주민들이 가장 문제시하는 대목은 3종 일반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을 양분하는 단지 내 4차로 도로다. 3종 일반주거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잠실역으로 가려면 이 도로를 반드시 지나도록 설계해 불편함은 물론 안전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반대 주민들은 “안전과 경관을 위해 아파트 단지에 있는 도로도 없애는 것이 요즘 추세인데, 단지 안에 4차로 도로를 만드는게 황당하다”고 했다. 도로를 설치하려면 신천초등학교를 이전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서울시는 4차로 도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측은 “준주거지역 내 상업시설에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 간선도로가 막혀 방문객 불편을 유발하기 때문에 우회 출입구로 4차로 도로를 만든 것”이라며 “지하철역 접근성이 문제라면 횡단보도를 여러 개 놔 주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설치를 요구한 4차로 도로가 신천초등학교 부지를 지나면서 조합은 학교 이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UBAC조성룡도시건축


학교 부지의 경우 조합측이 약 2300억원(가구당 약 4500만원)을 들여 신천초등학교 부지를 교육부로부터 매입하고, 교육부가 단지 서북쪽에 초등학교 2개와 중학교 1개를 신설하는 방식을 추천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재건축 과정에서 학교 부지를 굳이 이전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투자예산심의 절차가 복잡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당선작 두고 찬반 갈려…내분 겪는 조합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단지 곳곳에 서울시가 제안했던 국제설계공모전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잠실주공5단지 주민회 제공


모든 조합원이 국제공모전에서 당선된 설계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 추진위원회 운영진은 50층 층고 완화 특혜를 받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재건축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복문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장은 “서울시 설계안은 나중에 얼마든지 변경 가능하며, 다른 단지 평균 용적률이 300%인 반면 잠실주공5단지는 323%로 사업성이 높은 점을 생각하면 빨리 추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조합원들은 “당선작 디자인 변경이 가능한 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재건축이 늦어지더라도 조합원끼리 충분히 논의해 만든 설계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당선작 발표 일부러 미뤘나…절차상 문제 지적

조합은 서울시 측에 공모전 당선작에 대한 정보를 수 차례 요청했다. /잠실주공5단지 조합원 제공


‘서울의 랜드마크’를 꿈꾸던 아파트 단지 조합이 이렇게 둘로 쪼개져 갈등을 겪게 된데에는 서울시 책임이 크다. 우선 조합은 찬반으로 갈렸지만 양측 모두 국제설계공모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건축주인 주민들 요구 사항을 제대로 접수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공모절차를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당선작 발표 절차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는 원래 지난 3월 30일 공모전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이때 당선작 설계 내용도 당연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날 당선작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당선작 응모 번호만 공개했다. 서울시는 조합 총회를 2주 앞둔 지난 5월 19일에서야 조감도와 설계도를 전달했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6·13 지방선거를 의식해 논란이 될 수 있는 발표 결과를 일부러 늦게 발표했다”는 말도 돌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실거래가 추이. 작년 9월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이후 매매가가 올랐다. /국토교통부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민간 아파트를 짓는데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공 아파트 단지가 아닌 이상 지자체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인허가 여부만 결정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서울시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사유지에 짓는 아파트 단지 설계까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불필요한 갈등과 분란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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