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 논설위원이 간다] 확 바뀐 부동산 시장, 악재는 손잡고 온다
강남 등 가격 하락 두드러져
급매물 나와도 매수자 없어
실수요 아니면 대출 어렵고
경기 침체도 본격화 조짐
"내년에도 조정 계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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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대책 50여일 … 현장은
미래의 자산 가격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시장의 흐름을 보고 가격을 전망할 뿐이다. 9·13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50여일이 지났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정중동(靜中動)’이다. ‘미친 집값’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팔려는 쪽도 사려는 쪽도 모두 시계 제로 상태다. 앞으로 시장을 지배할 변수는 여러 가지다. 돈줄이 조여질 강도는, 공급 대책은,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보유세 부담은…. 여기에 거시 경제의 침체도 무시할 수 없다.
“9·13 대책 전에는 가격이 하루에 1억원씩 올랐어요. 지금은 눈치만 봅니다. 당분간 오르기는 힘들 것 같고. 단기간 급등하면 조정을 받습니다. 얼마 전 한 고객이 들러 가격을 얼마 낮추면 팔릴 수 있을지 물어봤는데…” 지난 5일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단지 인근 상가.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중개사는 “한 달 만에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이 단지는 한때 3.3㎡당 1억원에 거래됐다는 소문이 났던 곳이었다.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지난 8월에 전용 84.97㎥의 실거래가는 30억원에 신고됐다.
부동산 시장을 굴러가게 하는 세 바퀴는 돈·세제·수급이다. 여기에 인구구조 및 산업구조가 영향을 미친다. 인구는 장기적인 변수다. 세제는 중기 변수다. 보유세가 늘면 시간이 갈수록 집 소유자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중기적으로 가격 흐름에 영향을 준다. 집은 당장 공급할 수가 없다. 집을 지어 입주하기까지는 3년 이상 걸린다. 수급도 중기 변수인 까닭이다. 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건 유동성이다. 돈줄을 풀면 마땅한 투자 수익처를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린다. 여기에 불안 심리가 가세한다. “이번에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영영 무주택자가 되는 것 아닌가…” 시장은 그렇게 뜨거워진다. 반대로 돈줄을 조이면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줄면서 시장은 서서히 식어 간다.
지난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은 지난해에 3.41%(전년 대비)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10월까지 7.21% 뛰었다. 강동구는 10.43%, 용산구는 10.52%, 송파구는 9.57% 올랐다. 왜 올랐나. 시중에 1100조원이 되는 돈이 풀렸다. 투자자들은 기준금리 인상 등의 시기를 보면서 관망했다. 글로벌 경기도 좋았다. 서서히 시장이 달궈졌다. 기준금리 인상 기미가 없고,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분기들어 투자 심리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불안해하던 수요자들이 추격 매수에 들어가면서 가격은 폭등했다.
관심은 앞으로의 시장추이다. 이달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크다. 다주택자 대출 규제는 강력하다.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계획도 추진 중이다.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세법 개정안은 국회에 올라가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악재다. 악재는 손잡고 함께 오는 법이다.
경기침체의 먹구름도 짙어진다. 심교언 교수는 “경기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상황에서 부동산만 뜨거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췄다. 내년은 더 하향 조정해 2.6%로 전망했다. 이미 일자리 증가 폭은 참사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득은 늘지 않는다.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급격한 냉각기가 올 것인가.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관건은 조정의 속도와 폭인데 급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무주택자들의 심리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96.3%(2016년 기준, 국토교통부)다. 자가 보유율은 48.3%(2017년 기준, 서울시)에 그친다. 수도권의 대기 수요까지 합하면 서울 집에 대한 잠재 수요는 여전하다. 무주택자가 다시 불안해하면 시장은 요동칠 수 있다.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분명한 신호를 꾸준히 보내야 무주택자들이 믿고 기다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종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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