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40만명 살 수 있는 용산기지터에 공원이 최선입니까?"

황인표 기자 입력 2018. 11. 12. 11:54 수정 2018. 11. 1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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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114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용산 미군기지를 다녀왔습니다. 기지 내부는 정말 한적했습니다.

녹지공간이 넓고 차고를 갖춘 단독주택이 띄엄띄엄 있다보니 영화에서 보던 미국 중산층 도시 같았습니다.

골프연습장과 초중고교, 호텔과 함께 한 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컸다는 식료품점까지 다 갖춰져 있어 하나의 도시라고 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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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기지터 면적은 약 243만㎡, 80만평입니다. 여의도 면적 80% 정도라고 하면 감이 오실 겁니다. 이 땅을 놓고 “국가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이미 지난 2005년에 나왔습니다. 관련법이 만들어졌고 추진단도 운영 중입니다.

◇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이 땅에 “아파트를 더 만들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80만평이면 도대체 아파트 몇 세대를 지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몇몇 건설사에 물어봤습니다. 서울의 아파트 층수 마지노선인 35층까지 짓는다면 무려 10만 세대까지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4명씩 한 집에 산다면 40만명이 살 수 있습니다. 신도시 서너개가 거뜬하게 생기는 겁니다.

투기 광풍이 불거라고요? 분양주택은 아예 짓지 말고 임대주택만 지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청년이든 신혼부부든 저소득층이든 여기서 딱 10년 동안 살면서 목돈 마련할 기회를 주고 다음 세대에게 또 임대를 해주면 됩니다.

무엇보다 "서울 어디에 새 집을 만드느냐?”를 놓고 싸울 필요가 없어집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린벨트를 해제하네 마네’ 아웅다웅할 일도 사라집니다.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서울에 10만호의 새집이 생기면 다른 지역의 집값도 안정되지 않을까?' 

입지로 보면 용산은 서울 한 가운데 땅입니다.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 등 어디든 이동이 용이합니다.

지하철도 없고 도로 인프라도 부족한 경기도 외곽에 공공주택을 지었다고 국토부가 욕먹을 일도 사라집니다.

북쪽 서울역(또는 회현역)과 남쪽 사당역만 연결해주면 강남북 간 대중교통 접근도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물론 용산 전체를 아파트로 빽빽이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절반, 아니 반의 반만 임대주택을 세워도 상당수 서민의 주거안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용산에 임대주택을 짓자"는 청와대 청원은 이미 수십 건 올라와 있습니다.

◇ ‘버거운 서울살이’ 목소리 귀 기울여야

하지만 이날 김현미 장관과 박원순 시장 모두 임대주택에 대해선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박 시장은 “뉴욕을 대표하는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이 서울시민에게도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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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은 공원을 들어선다고 해도 도봉이나 강동, 은평, 구로 등 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주민들이 용산공원을 얼마나 자주 찾게 될까요? 차라리 그 지역에 더 많고 넓은 공원을 만들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여름과 겨울 그리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공원 찾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센트럴파크'급 공원이 들어서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근처에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이겠죠. 내 집 앞에 80만평 공원이 생겼으니 집값이 제대로 뛸 겁니다. 지난번 용산 개발 계획 가능성이 나왔을 때 처럼요.

공원 말고 집만 짓자고 말씀드리니까 ‘낭만(?)’ 없게 보이나요? 그런데 낭만을 찾기엔 서울살이가 최근 들어 버거워진 게 현실입니다. 강남 아파트값은 평당 1억원을 바라보고 마포·용산·성동 등 인기지역 소형 아파트는 10억원이 넘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10월까지 10% 올랐습니다.

지난 9일 새벽,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로 안타까운 사상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상자 대부분이 40대 이상인 것처럼 일부 고시원은 일용직 등 저소득층의 주거공간이 된지 오래입니다. 전국 1만1000여개 고시원에 사는 사람만 1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주거 공간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우리 주위엔 아직 많습니다.

그럼에도 고민은 남습니다. 인구는 정체 수준이라는데 그렇게 또 많은 아파트를 지을 필요가 있을까? 서울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지역 경기가 더 어렵게 되지 않을까? 녹지공간이 부족하다는 서울이 더 갑갑해지진 않을까? 미래 세대가 활용도를 찾도록 이 정도 공간은 남겨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등입니다.

개방된 용산기지터의 활용을 놓고 때마침 정부와 서울시도 시민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방향이 좋을지 차분한 논의가 다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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