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분양계약이나 부동산매매계약에 있어서 당사자 표시는 오랜 관행상 “갑”과 “을”로 표시하는 게 상례로 돼 있습니다.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쓰기 보다는 편의상 명칭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아파트 분양계약에서도 아파트를 분양하는 시행. 시공사는 “갑”(매도인)으로 표시하고, 분양을 받는 수분양자는 “을”(매수인)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입주했거나 입주중인 신규아파트치고 원활하게 입주를 마친 아파트단지가 한 곳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시겠지요?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앞으로 1-2년 사이에 입주할 아파트도 예외는 아닐듯하니 이에 잘 대비하셨으면 합니다.
분양이 됐음에도 입주가 되지 않거나 입주를 거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 살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갑”(건설사)은 2007년도 하반기부터 실시됐던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미리 사업승인을 받아 놨던 사업장을 다소 높은 분양가로 분양을 했었습니다. 그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을”(수분양자)은 인근주택시세에 비해 분양가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입주를 거부하며 당초 분양가에서 20-30%를 깎아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갑”이 설사 분양가를 깎아줬다 하더라도 기존주택시장에 거래가 두절되는 바람에 “을”은 살던 집을 팔지 못하고 있으므로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새 아파트의 계약을 해제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갑”은 공사도중 자금사정에 부딪치자 당초 분양광고에 미치지 못한 질 낮은 품질을 내놨고,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적당히 공사를 마무리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을”은 “갑”의 과대광고에 의한 사기분양을 거론하며 계약해제는 물론, 손해배상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갑”과 “을”이 싸우는 원인은 부동산시장 침체 때문-
“갑”과 “을”이 싸우는 원인은 뭘까요? 바로 부동산시장의 침체와 거래두절이 아닐는지요? 손해를 보건 이익을 보건, 거래만 된다면 지금처럼 싸우면서 소송에 이르지 아니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4년째 부동산시장은 값이 반 토막 난 채 거래는 실종되었습니다. “갑”이 분양한 아파트나 상가, 기타 건물들은 모두 미분양 되었거나 그나마 분양이 되었어도 입주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DTI제도나 분양가상한제는 지금까지 남아있고,
빚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빚만 남게 되었다는 하소연입니다.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워크아웃제도도 없어져 버렸기에 이제는 막 바로 법원에 기업회생신청을 해야 할 지경이라 “갑”은 오늘도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고 하더군요.
“을”의 처지는 어떨까요? 종자돈 몇 푼 털었거나 옆집에서 돈을 빌려 몇 천만 원으로 분양을 받아 놨습니다. 입주할 처지가 안 되면 분양권으로 팔아야 하는데 살던 집도 안 팔리고, 분양권도 안 팔리니 아파트가 웬수라는 하소연을 아니 할 수밖에요. 시행. 시공사에서 입주독촉 편지가 오거나 중도금대출 은행에서 문자가 오면 “화롯불 위에서 엿 녹아내리듯” 애간장이 녹는다고 합니다.
“갑”은 연체이자고 뭐고 어찌하든 “을”이 입주해 주기만을 학수고대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상사병을 이기지 못해 “동동거리는 가슴을 쓸어안고 뽕밭에 숨어 눈이 빠지도록 과수댁 기다리는 홀아비”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을”은 아파트고 나팔이고 “나는 돈 없어 못 들어가겠으니 계약을 해제하던지, 아니면 내 배를 째든지 맘대로 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있다나요? 입주해 주기를 기다리는 착각은 “갑”의 자유라고 하면서,
건설사와 수분양자들이 위와 같이 싸우는 일은 우리나라 부동산 역사상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해결이 되려면 어느 쪽이던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밤새도록 치고받고 싸우던 부부의 얼굴은 긁히고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군요. 그러나 아침에 서로 웃고 나오는 걸 봤습니다. 부부싸움이 하룻밤 사이에 풀려난 원인은 뭘까요?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지금이라도 부동산시장에 거래가 있게 되고 어느 정도 시세가 회복된다면 “갑”과 “을”의 싸움은 부부싸움보다 더 빨리 끝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부부간에는 정이 있어야 하겠고, “갑”과 “을” 사이에는 어서 부동산시장이 살아나야 되겠군요. 하하,
-“갑”과 “을”에게 모두 잘못은 있다-
우선 “갑”의 잘못을 짚어 봅시다. 2007년 이전까지 건설사들은 아파트 말뚝만 박아 놓게 되면 재미를 좀 봤습니다. 그러자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설사 미분양이 나더라도 순차적으로 팔릴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분양을 감행했던 것이고, 고가로 분양을 한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또 분양 당시에는 세계가 벤치마킹할 아파트라고 광고를 했었으나 중간에 자금사정이 어렵게 되자 10년 전에 나왔던 아파트처럼 적당히 마무리 해 버린 후 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신청을 해 버린 회사도 있습니다. 누가 그런 아파트에 입주하려 할까요? 도덕적으로 봐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분양자들은 어떤가요? 충분한 자금계획도 세우지 않고 옛날처럼 막연히 아파트는 사놓으면 오른다는 생각으로 덥석 분양을 받았으나 시장이 얼어붙게 되자 “갑”의 약점만 들추어내면서 “나는 못 들어간다.”라고 버티는 일도 온당하지 못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에는 책임도 따라야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미분양이 많이 남아있거나 수분양자들이 입주를 거부하게 되면 건설사는 살아날 길이 없게 됩니다. 앞으로 부동산시장이 회복단계에 이를 것이므로 순차적으로 입주거부의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믿습니다만, 그리되기까지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갑”의 입장에서는 빠른 결단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언젠가는 계약해제만이 정답이다-
“을”의 첫째 요구는 계약해제입니다. 시집가기 싫다는 처녀 억지로 가마에 태울 수는 없는 일이지요. 과감하게 해제를 받아 주고 해제분과 미분양 물량을 모아 공매처분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함이 오히려 회사가 사는 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입주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으로도 뾰쪽하게 대처하는 길이 없습니다. 계약서에 보면 매매대금 10%배상뿐인데 그도 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 연유 때문에 입주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 백 채 미분양을 안고 있고, 수 백 채가 입주를 거부하는 아파트가 있게 된 것입니다.
미분양이나 입주거부 물량을 회수하여 전세로 돌리게 되면 대출금에 대한 이자부담으로 회사 재정이 어려울 수도 있으므로 과감한 잔금유예대책이 오히려 “갑”의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고, “을”도 3년 정도의 잔금유예를 받을 수 있다면 그동안 살던 집과 새 집의 시세도 오르려니와 거래도 있게 되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피가 말라가는 “갑”과 애가 타는 “을”의 사이에서 재미를 보는 측이 있습니다. 챙길 것 다 챙겨가는 은행 말입니다. 입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으름장까지 놓는다면서요? 신용불량자 만들겠다고~?
그러나 중도금 이자 안 낸다고 신용불량자 만들지 못하고, 재산에 가압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협박이 지나치거든 점잖게 찾아가서 조용히 타이르십시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여 주십시오. “곧 부동산시장 회복되면 입주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글을 맺습니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9부 능선에 와 있습니다. 대책이 어찌됐건, 정책이 어찌됐건 폭발하는 화폐 앞에서 시장은 터지게 돼있습니다. 우리들보다 못한 중동도 터지는데 한국의 부동산시장이 언제까지 막혀 있겠는지요?
부동산을 구입할까 말까, 망설이시는 분들께 권고 드립니다.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물 빠진 조개 밭”입니다. 바구니에 먼저 주어 담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잠시 후 물이 차게 되면 다시는 주어 담을 수 없을 것이고, 물위에는 갈매기만 오락가락할 것입니다.